결국 공무원연금 개혁안이라는 폭탄이 터지고야 말았다. 애초 박근혜 정부가 집권 3년차를 맞이해 새롭게 추진할 개혁의 일환으로 제시된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무원노조 등이 반발하는 몇 겹의 어려움 속에서 간신히 협상이 진행돼왔다. 여야가 합의한 것은 ‘더 내고 덜 받는’ 형태의 개혁안에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자는 것이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국민연금이 결부된 것은 애초 공무원연금의 문제로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받는 연금이 일반 국민이 받는 연금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심각한 재정상 위기가 발생하고 사실상 사회적 박탈감이 양산되므로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축소해 재정적자를 방지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게 정부와 보수언론의 주요 논리였다.
정부와 보수언론의 논리는 역풍을 불러왔다. 공무원노조와 야권이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문제에 대해 공적연금 강화를 통한 ‘상향 평준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즉, 공무원연금을 국민연금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보다 국민연금을 공무원연금 수준으로 끌어올려서 노후보장을 철저히 하는 게 낫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보수언론은 거의 협박조로 기존 논리를 반복하며 공무원 집단을 개혁의 대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근간에는 그리스 얘기까지 나왔다. 그리스 공직사회가 부패해 공직자들이 특권을 독점한 결과 경제 문제로까지 불이 번지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다른 직종의 노동자들보다 비교적 나은 노동조건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직을 놓고 세습까지 하고 있는 그리스와 비교할 일인지는 의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당사자인 공무원들이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자기 ‘밥그릇’을 빼앗기면 화를 내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공무원에게 공무원연금은 동결된 임금과 일부 제한되고 있는 연장근무수당, 퇴직금 등이 유예 지불되는 수단으로도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공무원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 받아야 할 돈을 나중에 주겠다고 해놓고는 이를 위해 조성된 기금은 애먼 데 쓰면서 지급하기로 한 연금까지 축소하는 부조리에 노출된 처지가 되는 셈이다.
이런 여러 반발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든 여야는 합의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본회의에서 처리만 하면 1라운드가 끝날 터였다. 그러나 보수언론과 청와대가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인상에 격렬히 반발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여당 지도부가 서로 고성을 지르며 충돌하는 가운데서도 협상을 거듭해 국회 규칙 부속서류에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의 인상을 명기하자는 새로운 합의안이 만들어졌지만 여당은 그것조차 거부했다. 결국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는 실패했고 여야는 원포인트 국회를 열어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어찌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 과정을 복기해보면 합의 실패의 책임은 여당에 있다는 점이 명백한데, 보수언론은 이를 여야 모두의 문제로 치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어느 신문은 “친노 강경파가 문제”라는 상투적 레퍼토리를 다시 꺼내들었다. 이 정도면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애초 보수언론이 선도적으로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던 바를 상기하면 이렇게 행동할 일이 전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처리가 불발된 다음날 새 원내대표로 이종걸 의원을 선출했다. 어떻게 봐도 보수언론과 사이가 좋은 인사는 아니다. 좋은 먹잇감(?)이 될 확률이 크다. 이렇게 불리한 언론 환경에서 일방적으로 이뤄지는 ‘개혁’이 어떤 것일지 ‘안 봐도 비디오’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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