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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리스크 그 자체

등록 2014-06-24 15:19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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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은 말을 앗아간다. 극단의 공포는 일상의 언어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부여한다. 17년 전 벼락과도 같이 우리 곁에 찾아든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도 그랬다. 오랜 세월 익숙했던 세상의 이치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뒤, 사람들은 낯선 언어에 점차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이전엔 들어보지도 사용하지도 않았던 낱말들이, 평범한 일상 속으로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주인인 양.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로 ‘리스크’(risk)를 꼽을 수 있다. 리·스·크. 좀체 정확한 말뜻을 헤아리기 힘든 존재다. 주류 경제학 교과서에선 여러 조건과 경우를 들어가며 그 의미를 전달하려 애쓰지만, 실은 이론의 권위를 좀더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가공의 언어 놀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제 우리는 쉴 새 없이 리스크라는 낱말을 입으로 내뱉고 귀로 빨아들인다. 그 일을 추진하는 데 리스크는 없을까?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 따른 리스크는 얼마나 되지? 그 사람과의 결혼이 안겨다줄 리스크를 잘 따져봐…. 어쩌면 그 낱말의 참뜻을 우리가 온전히 헤아리지 못할수록, 우리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정체 모를 불안감을 리스크란 낱말에 더욱 꾹꾹 담아 뱉어내는지도 모른다.
낱말은 낱말을 낳는다. 한국이란 토양에선 더 쉬운 일이다. 한동안 리스크는 ‘총수’라는 또 다른 낱말과 잘도 어울려 다녔다. 이름하여, 총수 리스크. 어느 기업이나 경영을 책임지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행보가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겠으나 우리의 경우엔 단순한 최고경영자(CEO)가 아니라 그 ‘위’에 앉아 있는 총수의 영향력이 가히 절대적이다. 우리가 쌓아올렸으나 아직 허물지 못한 재벌체제의 숙명이다. 사업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이 순항하던 대기업이 한순간에 몰락하는 일은 허다하다. 경쟁업체와 피 말리는 경쟁을 치러가며 벌어들인 돈이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총수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다가 결국엔 사달이 난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총수 리스크란 ‘한국적’ 파생어 속엔, 전횡을 일삼는 총수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 기업과 임직원, 그 가족은 물론이려니와 협력업체의 눈물이 새겨져 있다. 재벌체제가 존속하는 한, 언젠가 찾아올지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세상은 쉼 없이 변화한다. 단언컨대, 이제 우리 사회는 대통령 리스크라는 또 다른 시험대에 올라섰다. 국정의 골간을 이루는 시스템은 허무하게 붕괴됐고, 불행히도 우리 눈앞의 대통령에게선 시스템 붕괴를 막을 의지도, 무너진 시스템을 다시 튼튼하게 일으켜세울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되풀이되는 인사 참극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듯, 가리려 해도 더 이상 가릴 수 없는, 누구나 다 아는 ‘진실’이다. 오래전 박근혜라는 이름의 정치인이 정치 전면에 나섰을 때, 사람들의 인물 품평은 대체로 이랬다. “콘텐츠는 없지만 진지하다.” 사실이다. 애초 품격과 신뢰로 포장한 박근혜라는 상품의 매력은, ‘싼티 나는’ 이명박 정권 5년과 대척점에 서 있었다. 하지만 진지함이 오만과 독선을, 품격이 절대 권위의 선민의식을 가리는 화장술이었음이 까발려진 뒤, 대통령은 이제 리스크 그 자체가 돼버렸다. 헛다리 짚기를 일삼던 이명박 대통령은 그저 조롱의 대상이었다. 차라리 다행이다. 이제 사람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넘어 아예 불안하다. 애국심 투철한 대통령 시대에, 정작 모두가 때아닌 나라 걱정을 하는 아이러니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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