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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 자본주의

등록 2014-05-10 17:40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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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특집호로 지난주 발행된 1009호의 표지는 흰색 바탕에 아무런 문구도 쓰여 있지 않았다. 상당한 파격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비웠으되 꽉 채웠다’는 평가를 내려주셨다. 텅 빈 백지 공간이, 역설적이게도,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모두의 한없는 슬픔을 고스란히 표현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백지의 공간에다 ‘쏟아내고 싶은’ 글귀를 손수 써내려간 분들도 많았다. 세월호 참사 직후 선보인 1008호에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충격과 분노를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도발적인 물음으로 드러냈다면, 1009호에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황망함, 미안함과 서러움, 불신과 자괴감이 한데 뒤섞인 복잡한 심정을 텅 빈 백지 공간에 쏟아낸 것이다.
끔찍한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3주의 세월이 무심히 흘러갔다. 이번주엔 슬픔과 미안함을 딛고 분노와 애도를 넘어 ‘무엇을 할 것인가’로 무게중심을 한 걸음 옮겨보고자 했다. 딱히 무엇으로 정의되지도 하나의 흐름으로 모아지지도 않는,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를 향한, 자그마한 ‘움직임들’에 눈을 돌린 이유다. 말 그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선 망각 대 기억의 커다란 싸움 한판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경과 해피아,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전 회장 일가… 질기디질긴 부패와 비리의 사슬로 한데 엮인 수많은 배역이 날마다 ‘악’의 얼굴을 한 채 성난 군중이 쏟아내는 분노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는 끝까지 밝혀내야 한다. 하지만 자칫 대상을 바꿔가며 분노의 에너지를 한순간 발산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세월호 참사의 진정한 의미가 왜곡되기 십상이다. 끊이지 않는 추모와 애도의 물결이 모두의 가슴속에 미안함과 자책감만을 키워주는 것으로 ‘순치’되어서도 안 될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실은 망각에 이르는 지름길일 테니.
세월호 참사가 던져준 과제는 또 있다. 처음 사고를 일으킨 잘못이 선장과 청해진해운에 있었다면, 사고를 참사로 키운 장본인은 분명 박근혜 정부다. 하지만 그 밑바탕엔 재앙과 ‘함께 사는’ 자본주의의 얼굴이 숨어 있을 게다. 이윤과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람보다 돈을 앞세운 체제에서 그 체제의 충직한 구성원들이 일으키는 크고 작은 재앙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자본주의는 재앙을 일으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재앙을 먹고 자라기도 한다. 이번 사고에서 실종자 구조 및 수색 작업에 참여해 널리 알려진 민간업체 언딘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혹한 재앙조차 이윤 추구의 장으로 활용하는 ‘재앙 자본주의’는 오래전부터 세계 도처에서 쑥쑥 자라나고 있다. ‘관’의 무능은 철저히 비판하되, 그 해결책을 재앙 자본주의의 식성을 더욱 키워주는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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