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되지 않은 이영춘씨에게도 내란음모 사건의 트라우마는 계속되고 있다. 언제 구속돼 다른 이들처럼 중형을 받을 지 모른다는 생생한 공포를 이 사건에 대한 법원 선고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다산인권센터 제공
아파트 입주자대표 회장이던 그는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일(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이 있고 나서 사람들은 그가 멀리서 보이면 피해서 지나간다. 말 거는 사람은 “안 잡혀가셨어요?”라는 인사를 하기도 한다. 아직 잡혀가지 않은 사람, 이영춘씨는 기소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잡혀간 사람이다. 익숙한 것이 하루 새벽에 낯설어졌다. 날선 칼과 창으로 등 뒤에 비수를 맞은 느낌이라 할까. 그는 살아오던 방식과 꿈꿔오던 미래가 모두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둠으로 빨려 들어간 자신의 삶을 말했다.
빨갱이의 얼굴을 원하는 언론그가 조사받는 날, 언론은 출석 시간을 알고 있었다. 언론은 빨갱이 얼굴을 원하고 있었다. 국가정보원 정문에 진을 친 기자들을 피해서 들어갔다. 그러나 ‘내란음모 지방의원’이라고 보도되기 시작한 아내는 마녀사냥을 피할 길이 없었다.
“저기 찍히면 마녀사냥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변호사랑 연락하고 미리 만나서 들어갔어요. 기자들 없는 곳에서. 안 찍히려고. 한번 언론에 얼굴이 노출되면 온갖 마녀사냥 대상이 되는 거죠. 그런데 아내는 피할 길이 없었어요. 우리 집은 아내도 조사 대상이거든요. 시의원인 아내의 인터넷 블로그에 입에 담을 수 없는 댓글이 달리고 휴대전화에 이상한 문자가 오기 시작했어요.”
광고
국정원 조사는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는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창문 없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끌려가고 다시 불 꺼진 긴 복도를 지났다. 조사실 안에 있는 화장실의 새하얀 욕조와 세면대는 박종철과 김근태를 떠올리게 했다. 물리적 공간의 구성은 1985년 남영동으로 그를 불러들였다.
“제가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조사에 응하지 않자 국정원 조사관 윤아무개씨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내가 지금 열받아서 잠깐 쉬었다 해야겠으니 기다려라’는 거예요. 그러고는 한참 동안 안 들어와요. 들어와서는 ‘내가 마음을 식히고 들어왔으니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자’며 중간중간에 옛날 같으면 어쩌니 저쩌니 하는 뉘앙스의 말을 해요. 화가 나면 다시 ‘내가 어떻게 할지 모르니 다시 나갔다 오겠다’고 해요. 옆에 화장실을 봤는데 남영동 대공분실과 비슷해요. 변기가 있고… 이런 식으로 그대로 있는 거죠. 상황 자체가 심리적으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나를 어디로 끌고 가는 게 아닐까,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유발되죠….”
국정원은 증거에 의한 조사보다는 회유와 협박으로 사건을 조작하던 1970~80년대 방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조사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회유와 협박을 시도하며 피해자 간 반목을 유도하고 가족관계까지 부정했다.
“부인과의 관계도 RO다”“‘네가 총책이냐, 아니면 ○○○이 총책이냐’ 이런 식으로 질문하죠. ‘뭔가 대답을 하면 네가 빠져나갈 수 있다’는 식으로 회유하는 질문도 해요. 두 번째 조사에서는 ‘네가 아닌 걸 안다. 그러니 ○○○이 했다고 이야기를 해라’라고 하더군요. ‘당신은 RO다. 당신과 당신 부인 관계도 RO다. 부인과 결혼한 것도 혁명을 일으키기 위한 거 아니냐?’ ‘부인과 공부를 하는 것도 그런 혁명과 주체사상을 위한 게 아니었냐’라고 했어요. 감옥에 있을 때 쓴 편지를 두고 ‘부부가 어떻게 이런 얘기를 하냐, 박근혜 정부가 어떻고 이명박 정부가 어떻고… 부부관계에서는 할 수가 없다. 이것은 무슨 혁명조직 관계이기에 할 수밖에 없다.’ 인신공격을 계속하고 ‘부인이 구속되면 어떻게 하겠냐’…. 집에 가면 도청이 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늘 있죠.”
광고
지난 2월17일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1심 재판 결과는 모두 유죄였다. 조사 중인 그와 아내의 입장에서 재판 결과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구속자 중 김홍렬 위원장은 문제 되는 ‘5월 정세강연회’에서 사회를 봤다는 이유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마치 폭탄 제조 증거라는 듯이 보도된 니트로글리세린은 판결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폭탄 없는 사건에서 폭탄 제조자만 유죄로 구속된 느낌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1심 판결문을 봤는데 주된 내용은 내란을 음모했다는 직접적 증거는 없지만 일단 상황을 봐서 판단한다는 거예요. 법 용어인 것 같은데, 추단이래요. 추론한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추정해서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12년을 선고한다 이거예요. 12년이면 살인 및 사체유기가 12년인데, 여기 나와 있는 피고인들에 대해 아무 증거도 없고 쪽지 하나도 없는 그런 사람에게 12년을 선고해요. 그러니까 이게 그냥 재판이 아니고 정치재판이구나 하는 거죠. …근거를 가지고 하는 재판이라기보다 죽이기 위해서 재판이 이용된 게 아니냐 하는 의심이 들어요.”
그는 ‘사법살인’이며 ‘사법 암흑의 날’로 불리는 1975년 4월9일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이 일어난 시간으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했다. 40년이 지났지만 또 다른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다시 만들어진 것이 아니냐고 자신의 심경을 설명했다.
아침 일어나 집 밖부터 확인하는 나날“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세수하고 양치하는 게 아니라 집 밖을 내다보고 검은 차가 와 있는지 확인부터 해요. 아침에 오면 같이 가야 할 수밖에 없잖아요. 같이 갑시다, 하면 같이 가야 하잖아요. 이런 신세죠. 아침에 현관문 앞을 걸어다니는 구두 소리만 들어도 불안해요. 나가서 확인하게 되고… 누가 왔는지. 특히 아침에 우편물이 와서 벨이 울리면 용수철처럼 튀어서 일어나는 거죠. 벨소리가 트라우마가 되어서 아침에 들리는 모든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요. 밤에도 밖에 검은 차가 있으면 잠을 못 자요. 언제 또 그들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과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전화도 도청되는 거 아닌가 늘 생각하고요.”
광고
발신자 번호가 뜨지 않는 국정원의 전화가 울릴까, 단 하루도 편하지 않은 그의 가족에게 시간은 잔혹하게 흘러가는 중이다. 압수수색을 하는 날 국정원 조사관들은 다리를 꼬고 앉아서 그에게 “가만히 있어. 조용히 좀 해”라는 막말을 던졌다. 그와 그의 아내를 대하는 이 사회의 태도는 거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직 잡혀가지 않은 사람인 이영춘씨에게 이미 이곳은 감옥이기 때문이다.
김산 다산인권센터 활동가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산청 산불 사망 4명으로 늘어…야간 진화작업 계속
“윤석열 당장 파면” 헌재에 목 놓아 외쳤다…절박해진 광장
‘K-엔비디아’ 꺼냈던 이재명, 유발 하라리에 “어떻게 생각하시냐”
“머스크 명백한 나치 경례…미친 짓” 연 끊은 자녀도 공개 직격
산청 산불 실종자 2명도 숨진 채 발견…사망 4명으로
풀려난 김성훈에 놀란 시민사회 “법원이 내준 영장 막았는데…”
BTS 정국, 군복무 중 주식 84억 탈취 피해…“원상회복 조치”
나경원 “이재명이 대통령 되면 뼈도 못 추릴 만큼 나라 망해”
경남 산청 산불 진화대원 2명 사망…2명은 실종
한동훈 얼굴 깔고 ‘밟아밟아존’…국힘도 못 믿겠단 윤 지지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