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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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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에 권력을

등록 2014-01-02 10:38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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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습니다. 2014년입니다. 넉넉한 마음을 담은 따뜻한 덕담이 오고 갑니다. 올해 주고받는 덕담 속엔 유독 ‘안녕’이란 단어가 많네요. 지독히도 안녕치 못한 2013년을 견뎌왔다는, 새해엔 제발 안녕하고 싶다는 심리가 작용했겠죠. 하지만, 그렇습니다. 안녕엔 엄연히 ‘조건’이 필요합니다. 안녕이란 우리가 주문을 건다고 우리 곁을 성큼 찾아오는 천사가 아닙니다. 저리도 꽉 막힌 광신정권의 사고방식과 몸놀림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도 만무하려니와, 설령 그들의 행태가 다행히도 바로잡힌다 한들 솔직히 우리가 부대끼고 사는 세상이 얼마나 크게 변할까 싶네요.
어떤 조건이 우리를 안녕하게끔 만들어줄까요? 은 2014년을 여는 신년호를 준비하며 거리상으로나 정서상으로나 ‘먼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봤습니다. 정작 출장을 떠난 취재기자들은 타지에서 끊이지 않는 해프닝에 고생했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 그곳은 가히 별천지에 가까웠습니다. 낯선 땅에서 찾아온 가난한 이주민들을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배척하는 세상, 탐욕에 눈먼 개발과 철거의 무자비한 논리가 소중한 삶터를 지키려는 몸짓을 불길에 앗아가는 세상, 평화롭게 낚시를 즐기던 낚시꾼을 내몰고 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70대 노인을 감옥에 가둬버리는 이곳 세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평화의 땅, 평등의 땅, 자유의 땅이라 이름 붙일 만했죠. 그곳에선 사람들이 ‘유토피아’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는군요.
물론 ‘다른’ 세상 이야기입니다. 우리와는 역사적 배경이나 처한 현실이 전혀 딴판이죠. 기껏해야 사나흘 머물다 떠난 이방인의 눈에 천국처럼 비칠지언정, 그들 나름의 고민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들은 가장 중요한 ‘조건’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상상력과 실험정신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 그리고 우리가 갖지 못한 딱 한 가지입니다. 다른 세상의 싹은 다른 생각과 행동에서만 움틀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진리를 거침없이 거꾸로만 달려가는 우리 사회에 던져봅니다.
2014년은 여러모로 뜻깊은 해입니다. 느닷없이 울린 총성 한 발이 20세기 세계 질서를 태동시킨 제1차 세계대전의 신호탄이 된 지 꼭 100년째 되는 해입니다. 이른바 ‘통킹만 사건’으로 남한 정부 수립 뒤 베트남전쟁에 참여한다는 명분 아래 우리나라 군대가 나라 밖으로 처음 나선 지 5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0년이 되는, 1000호를 발간하는 해입니다.
영국의 토머스 모어가 란 명저를 처음 쓴 게 1515년이라죠. 어림잡아 500년 전 그가 그렸던 유토피아는 얼마만큼 우리 곁에 뿌리를 내렸을까요? 이제는 사이언스픽션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소셜픽션’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스무 살 은 올 한 해 이 땅을 정녕 안녕한 세상으로 만들 ‘리얼 유토피아’를 꾹꾹 써 내려가렵니다. 꿈과 머리, 마음과 발걸음을 모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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