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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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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되기’의 괴로움

등록 2013-10-24 17:43 수정 2020-05-03 04:27


벌써 오래전의 일이지만, 한때 유럽의 한 나라에서 지낸 적이 있다. 학업을 계속해보겠다는 게 핑계였다. 햇수로도 짧지만은 않은 기간이었다. 먼 이국땅에서 지냈던 젊은 시절의 기억도 세월이 흐르며 하나둘 옅어지고 지워져 사라졌지만, 여전히 가끔씩 떠오르는 일이 있다. 특별한 일회성 사건이라기보다는, 몇 차례 되풀이되며 겹겹이 쌓인 에피소드의 퇴적물에 가깝다. 그곳에서 나는 당연히 법적으로 ‘외국인’이었다. 정해진 외국인 체류비자 기간이 만료되면 체류 허가를 얻기 위해 증빙서류를 갖춰 시청 담당 공무원을 찾아야 했다. 외국인인 나로서는 응당 피할 수 없는 숙제였다.

굳이 충격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당혹감을 안겨준 일이 더러 있었다. 어쩌면 외국인으로선 그나마 처지가 상대적으로 나은 내가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를 터이나, 대체로 그 나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나름의 ‘규칙성‘이 엿보였다. 그들이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거론할 때 으레 등장하는 표현은, 첫째 자기 나라 사람이거나, 그다음 유럽인이거나, 혹은 미국인 또는 일본인, ‘그도 저도 아니면’ 맨 마지막이 외국인이었다. 신문에 실린 일반 독자들의 투고 글이나 TV 프로그램에 나와 일반인들이 장광설을 풀어낼 때 유독 심했다. 말하자면, 평범한 그 나라 사람들도 미처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일상 의식의 심층을 지배하는, 그들 나름의 탄탄한 편가르기 방식이었던 셈이다.

이번주 마감 작업에 매달리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옛일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여러모로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한다는 소리를 듣곤 하는 유럽대륙 한 나라의 사정이 이럴진대, 우리 사회의 현주소는 어떨까? 이번호엔 지난 980호부터 연재해온 ‘국민과 난민 사이’ 기획 연재 마지막 기사가 담겼다. 그간의 세 편이 한국 땅에서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방인의 현실에 눈길을 줬다면, 이번호에선 너무도 평범한 한국인이 자발적으로 외국 난민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추적해봤다. 애초 이번 기획 연재의 의도가 단순히 이 땅에 살고 있는 이방인들에게 따뜻한 온정의 시선을 보내려는 데 있지 않은 까닭이다. 오히려 이 시대 ‘국민되기’란 말의 온전한 뜻을 근본적으로 되새겨보고 싶었다는 게 진실에 더 가깝다. 국민과 외국인이라는 낯익은 편가르기는, 사실 엄밀한 법적 구분 이전에, 우리의 의식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강력한 차별 기제의 최전선이다. 태어나고 자라난 땅을 자발적으로 등지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는 현실은 국민과 외국인, 국민되기와 소외되기라는, 근대사회의 포섭과 배제 원리가 그 밑바탕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의 현실에 거듭 눈길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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