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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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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알랴줌?! 알랴줌?!

등록 2013-08-20 17:57 수정 2020-05-03 04:27

이번호 지면 제작 마감일인 8월16일, 사무실에서 각자 기사 마감에 몰두하며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던 기자들은 연신 술렁거렸다. TV에선 국회의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가 생중계되고 있었다. TV 화면을 타고 소란을 유도한 주인공은 이른바 ‘원판’이라 불리는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두 사람이다. 이날 두 사람이 국회에서 보여준 행태는 두고두고 기록에 남을 역사적 명장면 중의 하나일 듯싶다. 애초 예정일이던 8월14일 출석을 거부해 동행명령서까지 발부됐던 두 사람이 선보인 비밀병기는, 말 그대로 ‘안 알랴줌’과 ‘알랴줌’의 절묘한 조화. 공 배합과 제구력, 타이밍 모두 만점에 가까웠다.
스타트는 김 전 청장이 끊었다. “헌법·법률에 있는 기본권인 방어권 차원에서 선서를 거부하면서 법률에 의해 거부 소명서를 읽겠다.” 오후에 출석한 원 전 원장 역시 동일한 장면을 연출했다. “법에 따라 선서하지 못함을 양해해달라.” 두 사람은 야당 의원들의 거듭되는 질타에도 흔들림 없이 ‘답변하지 않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안 알랴줌!
물론 가끔씩 구종에 변화도 줬다. 김 전 청장은 시작부터 “증언은 하되 선서는 거부하는 것이냐”라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원칙적으로 (증언도) 거부하지만 질의 성격에 따라 답변하겠다”며 ‘그때그때 다르게 대처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터다. 실제로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이 쏟아질 때마다, 두 사람의 입에선 “공소장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다” “선거법 위반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소신 발언이 쏟아졌다. 특히나 중간중간 새누리당 의원들이 ‘추임새’를 넣어줄 때마다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알랴줌!
알려야 할 건 입 닫고 엉뚱한 것만 늘어놓은 두 증인과 달리, 975호는 몇 가지 뉴스를 담았다. 973호 표지이야기로 다룬 ‘철거왕 이금열’ 이야기의 후속 기사도 그중 하나다. 첫 보도에서 철거용역 업계의 대명사, 다원이란 이름의 한 철거업체가 15년 새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으로 커가는 과정에서 저지른 온갖 불법·탈법 행위에 초점을 맞췄는데, 후속 취재 결과 다원그룹 계열사 4곳이 추가로 드러났다. 재개발·철거 과정에서 전기·수도·가스를 분리 작업하는 방식으로 이윤을 부풀리는 구조도 흥미롭다. 전국의 재개발 현장이 여전히 이 철거업체의 젖줄이 돼주고 있으며, 검찰 수사가 정·관계 로비를 규명하는 데까지 확장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하나. 지난주엔 브라질 노동검찰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가 현지 노동법을 위반한 혐의를 잡고 수사에 착수했으며 노동검사가 삼성전자 쪽에 피해보상금으로 약 1200억원을 청구했다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대부분의 국내 언론이 침묵한 이번 사건의 배경은 무엇인지, 삼성전자 현지 공장에선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알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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