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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비즈니스’의 몰락

등록 2012-10-30 16:44 수정 2020-05-03 04:27
10월25일 내곡동 특검에 출석한 이명박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 이정아 기자

10월25일 내곡동 특검에 출석한 이명박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 이정아 기자

기자. 기록할 기에 놈 자를 써요. 생각해보니 ‘자’로 끝나는 직업은 많지 않아요. 노동자, 범죄자? 이건 직업이 아니지요. 펀드매니자? …미안합니다. 한 선배에게 물었어요. “학자가 있잖아!” 맞네요. 기록하는 놈과 학문하는 놈? 문자와 씨름하는 직업에 굳이 놈 자를 쓰는 이유는 뭘까, 갑자기 궁금해져요.

그렇다고 ‘사’ 자로 끝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딱히 부럽지는 않았어요. 의사, 변호사, 판검사? 참고로 ‘사’는 모두 달라요. 의사와 교사는 스승 사, 판사와 검사는 일 사. 같은 법조계지만 특이하게도 변호사는 선비 사를 쓰지요. 어쨌거나 사로 끝나는 직업을 가진 분들도 나름대로 고충이 있겠지요. 무엇보다 연봉과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으로 한 사람의 실존과 삶의 의미가 규정될 순 없다고 믿어왔어요. 나이를 더 먹더라도 이 생각만은 변하지 말자, 30대 중반의 기자는 속으로 다짐해봐요.

내곡동 특검 포토라인에 선, 준수해 보이는 이 남자. 이명박 대통령의 금지옥엽 막내아들 시형씨(사진)예요. 언론에 사진이 노출된 건 참 오랜만이네요. 그 전에 보도된 사진에선 안경을 쓰지 않았어요. 안경 하나에 인상이 확 달라졌어요. 아버지에게 배운 걸까요? 이 대통령도 2010년 백내장 수술 때문에 잠시 착용한 ‘보호용 안경’을 3년째 쓰고 있지요. ‘쓰래빠’를 끌고 히딩크 감독 옆에서 헤죽헤죽 웃던 ‘서울시장 아들’이 갑자기 뭔가 있어 보이는 ‘대통령 아들’이 된 것만 같아요.

아버지가 실소유주 아니냐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일단 공식적으로는 큰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회사에 다녀요. 직전까지는 매형이 사장인 회사에 다녔더랬지요. 친·인척과 관련된 회사가 아니면 받아주는 곳이 없었던 걸까요. 어쩌면 그는 취업난의 아이콘일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봐요. 어쨌든 시형씨는 큰아버지 회사에 2010년 과장으로 입사했어요. 1년 만에 차장, 올해는 이사가 됐어요. 이분도 ‘사’로 끝나네요. 기자보다 1살 더 많은 시형씨는 미혼이에요. 회사에선 시형씨에게 집도 사주고, 차도 사줬어요. 요즘 있는 집 자제분들은 금수저 대신 아파트, 자동차, 초고속 승진권 뭐 이런 걸 물고 태어나나 봐요.

하지만 세상엔 공짜가 없어요. ‘경제 대통령’의 매우 계산적인 경제관념은 집안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투입과 산출의 대차대조표라는 그 명쾌한 논리! 그는 아버지의 돈 심부름까지 해요. 청와대에서 빈 가방 3개를 받아서 큰아버지댁으로 향했지요. 그곳에서 현찰로 6억원을 받아 다시 청와대로 왔다고 해요. 뭉칫돈을 싣고 청와대를 오가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니. 시형씨는 다 아버지가 시킨 일이래요. 이 돈에 대출금을 더해 내곡동 사저 터를 본인 명의로 샀어요. 부동산실명제고 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거래요.

이건 어쩌면 ‘패밀리 비즈니스’의 몰락일까요. 조만간 큰아버지가 특검에 불려가요. 시형씨의 아버지·어머니가 직접 특검 조사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군요. 시형씨가 14시간 동안 조사를 받던 사무실에는 저녁 식사로 짜장면과 볶음밥이 들어갔어요. 시형씨를 대신해서 특검 관계자들께 부탁드려요. 만일 양친이 조사를 받게 되면, 특히 어머니 김윤옥씨의 식사는 한식으로 해주세요. 인근의 한식집 사장님들, 신경 좀 쓰시고요. 이런 광고판도 써붙일 수 있을지 몰라요. “대통령 부인 조사받으며 배달시켜 드신 집.” 조금이나마 매출에 도움이 될까요? 아니면 말고.

송호균 기자 ukno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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