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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 조약은 불법이다”

한-일 지식인 200여 명이 한일합방 원천무효 선언한 ‘김-와다 프로젝트’의 김영호 유한대 총장
등록 2010-05-13 23:02 수정 2020-05-03 04:26

2009년 12월16일. 김영호 유한대 총장은 일본과 연락하기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상대는 일본의 대표적 진보사학자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2010년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과 한일합방 조약 체결 100년이 되는 역사적 해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지식인들이 힘을 합쳐 한일합방 조약이 불법·무효라고 선언하면 큰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김 총장은 20년 가까이 가슴속에 품어온 구상을 털어놨다. 하루키 교수의 대답은 짧고도 분명했다. “알았습니다. 논의를 시작합시다.”

한-일 과거사 문제 술술 풀리게 돼

김영호 유한대 총장.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김영호 유한대 총장. 사진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김 총장은 이틀 뒤인 12월18일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도착 즉시 진보 성향 잡지 (世界)로 잘 알려진 이와나미서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하루키 교수를 포함해 김 총장의 뜻에 공감하는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의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100여 명씩, 모두 200여 명의 두 나라 지식인들이 한-일 과거사 정리의 핵심인 한일합방 조약이 원천무효라는 것을 100년 만에 공동선언하는 ‘김-와다 프로젝트’가 가동되는 순간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후 다섯 달 가까이 한국과 일본을 수시로 오가며 공동선언문을 다듬고, 뜻을 함께할 인사들을 만나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5월10일 일본의 도쿄와 한국의 서울에서 동시에 한일합방 조약 원천무효 공동선언을 하게 됐다.

한국 근대현사를 결정적으로 운명지운 것은 1910년에 이뤄진 한일합방 조약이다. 한국은 이후 36년간 주권을 잃고 일제 식민지로 전락했고, 2천만 조선 백성은 고통에 신음했다. “만약 한일합방 조약이 합법이라면 일제 식민통치도 합법이 됩니다. 그리고 그에 항거한 조선 독립운동도 불법이 되는 것이지요.” 김 총장은 한-일 과거사 문제의 핵심은 한일합방 조약의 불법·무효화라고 힘주어 말한다. 조약이 불법임이 분명해지면 한-일 과거사의 문제가 대부분 술술 풀릴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군위안부 할머니나 원폭 피해자, 일제 군속자 등 일제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에 대한 배상 책임이 분명해진다.

한국 쪽은 그동안 강압에 의한 합방 조약은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일본 쪽은 강제는 있었지만 국제법적으로 유효하다고 맞섰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나온 식민지배에 대한 최고 수위의 사과는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다. 그러나 이 역시 조약이 불의·부당하지만 합법적이고 유효하다는 기존 선을 넘지 못했다. “일본이 식민통치를 합법이라고 보는 한 그들의 사죄는 형용사적 제스처로, 본질을 숨기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일 두 나라의 대표적 지식인 200여 명이 합방 조약이 불의·부당·불법하고 원천무효라는 것을 온 세상에 공동선언하는 것은 지난 100년간 그 누구도 못한 일을 한다는 점에서 한-일 관계와 역사에 큰 사건으로 기록될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대일 실용외교 노선을 천명하고, 정부 차원에서 경술국치 100년 행사도 외면하는 현실에서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할 수밖에 없다.

공동선언의 참여자는 두 나라의 보수·진보 진영과 학계·법조계·문화계·언론계 등 각계를 망라한다. 한국 쪽에서는 김진현 전 과학기술부 장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고은 시인,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박원순 변호사 등이 참여한다. 언론계에서는 고광헌 한겨레신문사 사장이 함께한다. 최근 10여 년간 이념적 갈등이 심해지면서 보수와 진보가 이처럼 함께 손을 맞잡은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일본에서는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와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 등 역시 보수와 진보 성향의 인사들이 두루 참여했다.

선언자들이 각자 경비 분담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경비를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기로 하면서 선언자들이 모두 분담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선언문을 합의하는 과정이었다. 수차례의 직접 회의와 셀 수 없는 전화와 전자우편 교환이 이뤄졌다. 글자 한 자를 갖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동선언문에 한일합방 조약이 왜 불의·부당하고 무효인지를 자세히 설명하다 보니, 결국 일제의 조선 합병 과정에 관한 한 편의 역사책이 쓰였다.

공동선언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 고비가 있었다. “일본 지식인들의 입장을 감안해 ‘불법’이라는 표현을 공동선언문에 안 넣은 것이 끝까지 마음에 걸렸습니다.” 김영호 총장은 고심을 거듭하다 4월30일 하루키 명예교수에게 전화하고 급히 도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엑스포 개최를 계기로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국제환경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로 나서기로 한 것도 포기했다. 예상대로 일본 쪽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일요일까지 2박3일간 김 총장은 그들을 설득하느라 씨름했다. 그리고 끝내 공동선언문에 ‘한일합방 조약은 불법’이라는 표현을 넣는 데 성공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김 총장의 눈시울은 붉게 물들었다. “누구에게 박수받자고 하는 일도 아니고, 돈이나 벼슬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직 한국인으로서 지금까지 살아온 데 대한 밥값을 하자는 생각으로 한 일입니다. 일본 인사들과의 인간적 신뢰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지요.”

경제학자로서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김영호 총장에게 한-일 문제는 오랜 인연이 있다. 1993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의 개정 문제를 공식 제기한 것으로 당시 언론에 보도됐다. 한-일 양국은 기본조약에서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표현에 대한 해석은 동상이몽이었다. 한국은 이를 근거로 한일합방 조약은 처음부터 무효라고 본 반면, 일본은 1945년 해방이나 1948년 한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무효라고 해석한다. 김 총장은 1995년 을 통해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적 지식인인 이와나미서점의 야스에 료스케(1998년 작고) 사장과 특별대담을 하면서 한-일 기본조약 개정 필요성에 뜻을 같이했다. 1993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는 1921년 일본의 주장으로 동해 표기를 일본해로 확정한 것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폈다.

김 총장은 이번 지식인 공동선언을 계기로 앞으로 한-일 두 나라 정부가 과거사 정리에 적극 나서길 기대한다. “두 나라 정부가 올해 광복절인 8월15일 이전에 합방 조약 원천무효를 공동선언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하토야마 총리가 담화 형식으로 무효를 선언할 수도 있겠지요. 일본 의회에서 결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미국 의회는 1993년 하와이 점령 100주년 때 하와이 주민에게 공식 사과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김 총장은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주장에 반대한다. “독일이 유대인 학살이라는 과거의 잘못을 적극적으로 사죄한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 청산이 없는 미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1965년 대체할 ‘한-일 2010년 체제’ 만들자

김 총장은 이번 지식인 공동선언을 계기로 ‘한-일 1965년 체제’를 뛰어넘는 ‘한-일 2010년 체제’를 제기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이 유럽 공동체 창설을 가능하게 한 것처럼, 한-일 간 진정한 역사적 화해를 통해 일본과 아시아의 역사적 화해,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의 새로운 질서의 출발점을 만들어야 합니다.”

올해로 고희를 맞은 노교수는 인터뷰 내내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려 조심했다. 인터뷰도 극구 사양하는 것을 뜻깊고 좋은 일은 널리 알려야 하고, 더욱이 과는 깊은 인연이 있는 사안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떼를 쓰다시피 해서 겨우 설득했다. 그 대신 발표에 앞서 공동선언문이나 서명자 명단을 미리 보겠다는 욕심은 접기로 했다. 5월5일 경기 부천시 소사구 유한대 총장실에서 긴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며 새삼 ‘지식인’의 의미가 가슴에 다가왔다. 돈에도 지위에도 명예에도 초연하게 우리 앞에 가로놓인 시대의 장벽을 뚫고 나가는 양심이 아닐까?

곽정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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