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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발해는 우리 역사… ‘발해 1300호’ 기억하자”

국내 유일한 범선 ‘코리아나호’, 경북 울진에서 14시간 항해해 독도 도착
등록 2024-06-28 10:47 수정 2024-07-03 02:29
(메인 사진) 괭이갈매기들이 범선 코리아나호를 따라 섬을 돌며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독도에서 나고 자라는 괭이갈매기는 이 섬의 터줏대감이자 진정한 주인이다.

(메인 사진) 괭이갈매기들이 범선 코리아나호를 따라 섬을 돌며 손님맞이를 하고 있다. 독도에서 나고 자라는 괭이갈매기는 이 섬의 터줏대감이자 진정한 주인이다.


“배가 출항하기도 전부터 언제 도착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요. 느긋하게 대자연에 자신을 맡기면 광활한 바다와 같은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국내 유일의 범선 ‘코리아나호’의 정채호(78) 선장은 승객과의 첫 만남에서 협동심과 느긋한 마음, 모험심, 도전 정신을 강조했다.

‘2024 범선 타고 독도 가자' 탐사대원들이 동도 부두에 도착한 뒤 서도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가운데 우뚝한 봉우리가 독도에서 가장 높은 대한봉(168.5m)이다.

‘2024 범선 타고 독도 가자' 탐사대원들이 동도 부두에 도착한 뒤 서도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가운데 우뚝한 봉우리가 독도에서 가장 높은 대한봉(168.5m)이다.


2024년 6월18일 오후 4시20분, 41m 길이의 범선 코리아나호는 ‘끝나지 않은 항해, 발해 1300호’란 깃발과 ‘우리는 하나다’란 글귀가 쓰인 한반도기를 매달고 경북 울진군 후포항을 떠났다. 연극인, 파주시민, 대학생 등 20대부터 80대까지 탐사대원 31명과 선원 6명을 더해 총 37명이 한 배에 탔다. 범장에 매여 휘날리는 깃발에는 26년 전 좌초된 ‘발해 1300호’ 대원들의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겠다는 다짐과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범선에 내걸린 ‘끝나지 않는 항해, 발해 1300호' 깃발. 이번 탐사는 26년 전 뗏목을 타고 발해 옛 항로 재현에 나섰다가 숨진 ‘발해 1300호’ 대원들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됐다.

범선에 내걸린 ‘끝나지 않는 항해, 발해 1300호' 깃발. 이번 탐사는 26년 전 뗏목을 타고 발해 옛 항로 재현에 나섰다가 숨진 ‘발해 1300호’ 대원들을 기억하기 위해 마련됐다.


‘발해 1300호’란 발해 건국 1300년을 맞아 1997년 12월31일 장철수(당시 나이 38살) 대장과 이덕영(당시 나이 49살) 선장, 이용호(당시 나이 35살)·임현규(당시 나이 27살) 대원으로 꾸려진 4명의 탐사대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출발해 발해의 옛 해상 항로 재현에 나설 때 사용한 뗏목 이름이다. 이들은 출발에 앞서 “발해는 고구려의 옛 영토와 바다를 통해 국가의 경영을 이룩한 해양국가였다. 우리가 찾으려는 발해의 옛길 항로는 해류를 통해 해상 활동을 했던 발해인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으로, 발해사 복원에 작은 기여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물푸레나무로 만든 15m 길이의 뗏목에 몸을 싣고 오직 바람과 해류에 의존해 항해에 나선 대원들은 25일 만인 1998년 1월24일 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일본 오키섬 앞바다에서 뗏목이 난파되어 최후를 맞았다.

범선에서 맞이한 황홀한 해넘이. 어둠이 짙어지면 망망대해는 별 천지로 바뀐다.

범선에서 맞이한 황홀한 해넘이. 어둠이 짙어지면 망망대해는 별 천지로 바뀐다.


6월 독도에서는 괭이갈매기들이 태어난다. 갓 태어난 아기새가 어미새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르고 있다.

6월 독도에서는 괭이갈매기들이 태어난다. 갓 태어난 아기새가 어미새에게 먹이를 달라고 조르고 있다.


동도 망양대 탐방로 옆에 섬괴불나무가 빨간 열매를 달고 있다. 해풍에 강한 섬괴불나무는 세계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동도 망양대 탐방로 옆에 섬괴불나무가 빨간 열매를 달고 있다. 해풍에 강한 섬괴불나무는 세계적으로 울릉도와 독도에서만 자생하는 특산식물이다.


후포항에서 국토의 동쪽 끝 독도까지는 약 230㎞. 돛과 바람만 있으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범선은 선원 부족으로 돛 대신 엔진을 이용해 시속 16㎞로 동해의 심장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선상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고, 적막한 밤바다에 〈홀로 아리랑〉 노래가 울려퍼졌다.

탐사대원들이 우리나라 최동단, 동도 망양대에서 트럼펫 연주에 맞춰 〈홀로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탐사대원들이 우리나라 최동단, 동도 망양대에서 트럼펫 연주에 맞춰 〈홀로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14시간이 넘는 항해 끝에 독도에 도착한 시간은 6월19일 아침 7시. 애초 해돋이 시간에 맞추려 했으나 ‘8시 이후 입도해달라’는 울릉군청의 요청을 따라야 했다. 이제 범선은 괭이갈매기 떼의 환영을 받으며 보행 속도로 동도와 서도, 89개의 부속 섬, 암초로 탐사대를 안내했다. 독도 지도를 만들기 위해 2005년부터 90여 일간 독도에 머물며 조사, 취재한 안동립 선생의 설명이 곁들여졌다. 460만 년 전 해저화산이 솟아 생성된 미지의 섬 독도는 보는 위치에 따라 신비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독도 탐사를 주관한 ‘영토문화관 독도’의 안재영 관장은 “잃어버린 발해 역사와 동해 영토를 찾으려는 발해 1300호 대원들의 정신을 기억하고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글·사진=박경만 <고양신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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