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가을에 이따금 거쳐 가는 줄 알던 장다리물떼새 둥지가 1998년 처음 충남 서산 천수만에서 확인됐다. 나그네새에서 여름철새로 ‘신분’이 바뀐 순간이다. 소금기가 채 가시지 않은 천수만에서 어미 새는 알을 품고 있었다. 1982~1984년 물막이 공사를 하고 조성한 서울 여의도 면적의 12배가 넘는 땅은 간척 초기에 염분기를 머금어 벼도 채 여물지 않았다. “한 가마니 넣어 한 말을 걷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모내기할 엄두를 내지 못할 광활한 논으로 비행기에서 볍씨를 직접 뿌리기도 했다. 농약도 비행기로 쳤다. 봄 써레질을 끝낸 뒤에도 물 밖으로 솟아 있던 흙더미가 새들의 둥지 터가 됐다. 주변에 직파한 벼가 자라면 새들이 번식하던 야생 습지와 비슷했다. 장마로 큰물이 나기 전까지 논물 수위가 일정한 것도 번식에 도움이 됐다.
물막이 전 천수만은 수초가 풍부한데다 조류가 약한 곳이었다. 해양생물의 산란장으로 수산물이 풍부하다. 간척으로 땅을 얻은 대신 어민들은 황금어장을 잃었다. 잃은 게 있으면 얻는 게 있는 걸까.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갯벌을 메우며 쌓은 제방을 넘어서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와 기러기가 날아들었다. 드넓은 농지와 담수호에 먹이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간척지에는 새를 보려는 탐조인도 점차 늘었다.
하지만 ‘인혜’(인간이 만든 혜택)의 철새 도래지 천수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천수만 농지를 조성한 현대건설이 2000년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그 피해가 애꿎은 장다리물떼새까지 미쳤다. 현대건설은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서산 간척지를 분할해 일반인에게 매각했다. 간척지를 분양받은 새로운 농부들은 곱게 써레질한 논에 줄 맞춰 모를 심기 시작했다. 비행기 파종도, 초대형 로터리 기계가 들어올 일도 없어지면서, 장다리물떼새가 둥지 삼을 거친 흙더미도 사라진 것이다.
논은 우리나라 습지 가운데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물에 푹 잠긴 논은 둥지 터를 찾는 새에게 ‘불임의 장소’일 뿐이었다. 2006년부터 한동안은 단 한 쌍의 장다리물떼새도 번식에 성공하지 못했다. 가을에 낙곡도 크게 줄어 채식지로 이동하는 새의 행태도 불규칙해졌다. 새들은 이제 먹이를 찾아 더 먼 거리를 비행해야만 했다. 간척지에 오는 개체수와 종도 매해 변동이 심해졌다.
장다리물떼새와 야생 조류는 소금기 가득한 거친 간척지 땅에서 살아남았다. 철새 도래지 천수만을 세상에 알리는 데도 이들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천수만의 새로운 주인들은 새가 둥지를 틀 단 한 뼘의 흙더미도 허락하지 않는 셈이다.
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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