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나무에 내려앉은 흰꼬리수리(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 천연기념물 제243-4호)의 휴식은 오래가지 않았다. 먹잇감을 찾다 지쳐 날개를 접은 지 15분쯤 지나자 불청객이 들이닥쳤다. 덩치가 훨씬 작은 큰부리까마귀 두 마리가 자기 구역에 들어온 포식자를 공격해 쫓아내려고 도착했다. 처음에는 덩치 큰 맹금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눈치였다. 몸집 차이가 너무 큰데다 어른 주먹 크기의 부리와 발톱에 공격당하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주변에서 눈치를 보며 흰꼬리수리의 신경을 건드리는 정도다. 하지만 응원군으로 열 마리 넘는 까치가 합세하자 기세가 올랐다. 떼 지어 침입자를 포위하고 주변을 휙휙 날며 위협 비행을 시작했다. 가까이 접근해 부리로 툭툭 치거나 쪼고, 또 깃털을 잡아당길 듯 겁박하기도 한다.
이들이 잡아먹힐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형 맹금류를 집단으로 괴롭히는 용기는 어디서 왔을까? 자연생태학자들은 ‘힘의 차이를 떠나 세력권을 지키려는 절실함’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설명한다. 까치와 큰부리까마귀는 이곳이 자신과 어린 새를 위해 꼭 지켜야 할 세력권이고, 맹금은 날이 따뜻해지면 여기를 떠날 철새 처지라 지키려는 절실함이 덜하다는 것이다.
열두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흰꼬리수리는 그리 당황하거나 허둥대는 것으론 보이지 않았다. 날아오르자 성조의 징표인 새하얀 꽁지깃이 선명하게 드러나 제법 어른티가 나는 개체였다. 어린 흰꼬리수리는 꽁지깃 가장자리에 흑갈색이 남아 있다. 꽁지깃이 어른새처럼 흰색으로 바뀌려면 5년여 걸린다. 이 흰꼬리수리는 경험이 많아 위기에도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나보다. 하지만 토박이들 텃세를 버티던 맹금이 번번이 자리를 뜬다. 조무래기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달콤한 휴식을 방해받아 귀찮다는 듯이.
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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