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드르륵~.” 몽골 빈데르 마을 숲에 울려퍼지는 ‘드러밍’ 소리가 탐조객을 유혹했다. 딱따구리과 새가 자기 영역을 알리고 짝을 찾기 위해 나무를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드러밍이다. 먹이를 찾거나 둥지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쪼아댈 때 나는 소리와 차이가 있다.
드러밍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우리나라와 몽골의 조류도감을 참고해 사전에 조사한 서식지 정보에 따르면 세가락딱따구리(세딱)일 가능성이 제일 컸다. 백두산 삼지연 같은 북쪽 고산지대에서 번식하는 세딱은 희한스럽게 발가락이 3개다. 수컷 정수리는 노란색이다. 딱따구리과 새는 대부분 나뭇가지에 달라붙어 몸을 지탱하기 좋도록 발달한 뒤쪽의 발가락을 포함해 4개의 발가락을 가지고 있다. 수컷은 머리 꼭대기가 붉다.
쇠딱(쇠딱따구리), 오딱(오색딱따구리), 큰오딱(큰오색딱따구리), 청딱(청딱따구리), 아물쇠(아물쇠딱따구리)로 줄여 부르기도 하는데 모두 관심 가지면 우리 주변 숲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딱따구리과 새다. 이들을 포함해 딱따구리과 새는 우리나라에만 11종이 있다(전세계 딱따구리과 새는 236종이다). 이 중 개미잡이와 붉은배오색딱따구리는 북쪽 번식지로 이동하는 봄가을에 드물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크낙새는 1993년 경기도 광릉숲에서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한에서 멸종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아주 소수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북한에서 발표된 신빙성 있는 최신 자료가 없는 실정이다. 크낙새와 비슷하게 생긴 까막딱따구리는 산림이 울창한 지역에 드물게 산다. 쇠오색딱따구리 역시 세딱처럼 우리나라 조류도감에 등재됐는데, 한반도 남쪽에서는 여태 관찰 기록이 없는 종이다.
드러밍 소리를 따라 숲으로 들어갔다. 시베리아잎갈나무와 전나무, 자작나무와 황철나무가 자라는 숲에서 나무 사이를 헤치고 파도치듯 날아온 새가 이번엔 황철나무에 와 앉았다. 새는 나뭇가지 위를 타며 부리질에 바쁘다. 덩치로 봐선 딱따구리과 새 중 가장 작은 쇠딱과 비슷했다. 또 등 가운데 뚜렷한 흰색 무늬는 아물쇠로 착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얼굴과 배, 가슴에 갈색 무늬가 있는 아물쇠와 달리 뺨과 배, 옆구리가 숲의 자작나무처럼 희다. 책에서만 본 쇠오색이었다.
<한국의 새>(LG상록재단)를 쓴 박진영 박사(국립생물자원관 연구부장)는 백두산과 몽골은 서식 환경 차이가 커서 몽골에서 본 쇠오색으로 백두산 쇠오색의 생태적 특성을 추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쇠오색은 유럽부터 동아시아까지 넓은 지역에 고루 흩어져 살고 있어요. 희귀종은 아니고 정상적 분포권에서 본 겁니다.”
전문가의 냉정한 가치판단에도 예상도 못한 새를 봤다는 흥분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남과 북이 서로 일방적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시기라 더 보기 힘든 `북한의 새’를 머나먼 몽골의 숲에서 처음 만나다니. 남북관계가 다시 좋아지면 달려가 꼭 만나고 싶었던 새가 아닌가.
울란바토르(몽골)=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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