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옹지구는 2002년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궁평항에서 우정읍 매향리까지 바닷물 9.8㎞를 막아 만들었다. 4482㏊의 농지와 1730㏊의 담수호가 생겼다. 천수만 간척지보다 20년 늦게 물막이 공사를 마쳤다. 처음 가경작을 시작한 2006년 무렵, 땅은 소금기를 잔뜩 머금고 있었다. 천수만 초창기 모습처럼 황량하고 벼가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담수호(화성호) 주변에 자연적으로 생긴 내륙습지에 시끄러운 방조제 공사로 떠났던 새들이 돌아왔다. 생태계가 다시 살아나는 듯 보였다. (제1489호 ‘우연히 깃든 천수만, 나그네새가 철새로’ 참조)
장다리물떼새는 화옹지구에서도 번식을 시도했다. 2019년 봄, 모내기를 앞둔 논에서 열일곱 개 둥지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물을 댄 논에서 바닥을 고르고 흙덩이를 잘게 부수려던 참이었다. 환경단체가 나서서 어렵사리 찾아온 귀한 손님이니 새와 둥지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영농인과 한국농어촌공사 화안사업단이 농사를 포기하고 둥지가 지어진 땅을 새에게 양보했다. (<한겨레> 애니멀피플 “올해 농사는 장다리물떼새에게 양보합니다” 기사 참조) 그해 장다리물떼새 번식지 주변에서는 보기 드문 호사도요 두 쌍과 붉은발도요, 쇠제비갈매기도 어린 새를 키워냈다.
하지만 양보는 딱 한 번뿐. 과거 천수만의 비극은 화성호에서도 되풀이됐다. 일부 영농인은 새둥지가 농사에 성가시다고 여겼다. 아예 둥지를 만들지 못하도록 논에 물을 미리 대지 않으려 했다. 또 새에게 단 한 뼘의 흙더미도 주지 않으려는 듯 곱게 써레질을 해댔다. 새가 논 귀퉁이 마른 흙에 만든 둥지는 써레질로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써레질에 뭉개지는 둥지와 알을 다시 보고만 있을 순 없죠.” 둥지가 뭉개지는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옛 천수만 지킴이 한종현 버딩투어코리아 대표는 2023년 봄, 새를 위해 다시 흙무더기를 쌓았다 . 한 대표와 정기양(연세대 의대 교수), 조규태(퇴직교사), 곽경근(언론인)은 ‘장다리둥지 건축사무소’ 라는 모임을 만들어 장화를 신고 직접 논으로 들어갔다. 새가 둥지를 만들도록 물을 댄 논에 삽으로 흙을 쌓아 물 위로 둥지 터가 드러나게 했다. 새에게 만들어주는 ‘소도’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농어촌공사가 이번에도 농사가 시작되지 않은 간척지 땅 한 귀퉁이를 내줬다. 하지만 2023년 봄 둥지 터는 갑작스럽게 불어난 빗물에 모두 잠겨버렸다. 논이 물 수위를 조절할 수 없는 ‘물맹지’였다.
장다리둥지건축사무소의 바람은 ‘번식기 무논(물이 괴어 있는 논) 조성을 통한 조류 생물다양성 제고 방안’으로, 2023년 10월 국가생물다양성 전략 국가정책 아이디어로 채택되기도 했다. 대규모 간척지에서 논습지 일부를 도요·물떼새를 위한 서식지로 제공하자는 안이다.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만드는 데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 널리 아이디어를 구한 국가가 사람의 작은 양보와 행동으로 생물다양성 강화를 위한 토대를 쌓을 수 있을까.
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ks@hani.co.kr
*‘진버드’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김진수 선임기자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장다리물떼새는 화옹지구에서도 번식을 시도했다. 2019년 봄, 모내기를 앞둔 논에서 열일곱 개 둥지가 한꺼번에 발견됐다. 물을 댄 논에서 바닥을 고르고 흙덩이를 잘게 부수려던 참이었다. 환경단체가 나서서 어렵사리 찾아온 귀한 손님이니 새와 둥지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영농인과 한국농어촌공사 화안사업단이 농사를 포기하고 둥지가 지어진 땅을 새에게 양보했다. (<한겨레> 애니멀피플 “올해 농사는 장다리물떼새에게 양보합니다” 기사 참조) 그해 장다리물떼새 번식지 주변에서는 보기 드문 호사도요 두 쌍과 붉은발도요, 쇠제비갈매기도 어린 새를 키워냈다.
하지만 양보는 딱 한 번뿐. 과거 천수만의 비극은 화성호에서도 되풀이됐다. 일부 영농인은 새둥지가 농사에 성가시다고 여겼다. 아예 둥지를 만들지 못하도록 논에 물을 미리 대지 않으려 했다. 또 새에게 단 한 뼘의 흙더미도 주지 않으려는 듯 곱게 써레질을 해댔다. 새가 논 귀퉁이 마른 흙에 만든 둥지는 써레질로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써레질에 뭉개지는 둥지와 알을 다시 보고만 있을 순 없죠.” 둥지가 뭉개지는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옛 천수만 지킴이 한종현 버딩투어코리아 대표는 2023년 봄, 새를 위해 다시 흙무더기를 쌓았다 . 한 대표와 정기양(연세대 의대 교수), 조규태(퇴직교사), 곽경근(언론인)은 ‘장다리둥지 건축사무소’ 라는 모임을 만들어 장화를 신고 직접 논으로 들어갔다. 새가 둥지를 만들도록 물을 댄 논에 삽으로 흙을 쌓아 물 위로 둥지 터가 드러나게 했다. 새에게 만들어주는 ‘소도’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농어촌공사가 이번에도 농사가 시작되지 않은 간척지 땅 한 귀퉁이를 내줬다. 하지만 2023년 봄 둥지 터는 갑작스럽게 불어난 빗물에 모두 잠겨버렸다. 논이 물 수위를 조절할 수 없는 ‘물맹지’였다.
장다리둥지건축사무소의 바람은 ‘번식기 무논(물이 괴어 있는 논) 조성을 통한 조류 생물다양성 제고 방안’으로, 2023년 10월 국가생물다양성 전략 국가정책 아이디어로 채택되기도 했다. 대규모 간척지에서 논습지 일부를 도요·물떼새를 위한 서식지로 제공하자는 안이다.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만드는 데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려 널리 아이디어를 구한 국가가 사람의 작은 양보와 행동으로 생물다양성 강화를 위한 토대를 쌓을 수 있을까.
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ks@hani.co.kr
*‘진버드’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김진수 선임기자와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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