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해야 하네요. 순발력!”
뿔종다리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탐조 모임 대화방에 불이 났다. “어제 나오지…ㅠㅠ” 오늘은 새를 보러 갈 수 없다는 탄식이 나왔다. “(뿔종다리가 나타난 것은) 14년 만인데, 내일은 모릅니다.” 방장의 재촉에 경기도 부천시 대장동 들녘으로 급히 차를 몰았다.
경험상 이런 경우 바로 달려가도 허탕 치기 일쑤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처럼 갈색 깃털에 등과 가슴에 짙은색 줄무늬가 있는 새를 찾아내기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덩치도 딱 참새만 하다. 다행히 꺼먹다리 옆 산책로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카메라나 쌍안경을 손에 든 사람들은 큰 횡재라도 한 듯 놀란 기색이다. 뿔종다리가 길고 뾰족뾰족한 머리 깃을 세울 때마다 카메라 셔터 소리도 요란하게 울렸다.
새는 몰려든 사람에게 아랑곳하지 않는다. 연신 부리를 쪼며 먹이를 찾거나 무심히 앉아 깃털 매무새만 신경 쓴다. 한동안은 시멘트로 포장된 산책로와 도로 경사면에 자란 잡풀 사이를 맴돌았다.
토종 텃새인 뿔종다리는 국내에서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초에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다시 나타난 건 2001년 충남 천수만 간척지에서다. 채석장이던 간척지 내 대섬에서 8년 동안 둥지를 틀어 새끼를 키워냈다. 뿔종다리는 개활지나 풀밭처럼 주위가 툭 터진 곳을 좋아한다. 간척사업이 끝나면 사라질 채석장 운명처럼 힘겹게 번식하던 새도 2008년을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았다.
귀한 ‘가을 손님’은 다음날 아침 잠시 모습을 드러낸 뒤 사라졌다. 부천시 대장동 들녘은 3기 신도시 부지로 곧 대규모 공공택지 공사가 시작될 것이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지저귀는 ‘뿔 달린 노고지리’(종다리의 옛 이름)를 이 들녘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매력적인 새를 사진으로 오랫동안 담아온 김진수 선임기자가 다양한 새의 모습과 그 새들이 처한 환경의 소중함을 사진과 글로 전합니다. ‘진버드’는 김진수와 새(bird), 진짜 새를 뜻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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