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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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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찾겠다, 쇠·붉·멧…숨바꼭질이라도 하려는 거니?

등록 2023-05-19 13:37 수정 2023-05-24 02:51
쇠붉은뺨멧새는 봄가을 이동 시기에 우리나라를 흔하게 통과하는 나그네새다. 초지나 농경지 주변 잡목림 등 사방이 트인 곳에서 풀씨를 먹을 때 포식자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작은 인기척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쇠붉은뺨멧새는 봄가을 이동 시기에 우리나라를 흔하게 통과하는 나그네새다. 초지나 농경지 주변 잡목림 등 사방이 트인 곳에서 풀씨를 먹을 때 포식자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작은 인기척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평생 내가 직접 본 새는 모두 몇 종이나 될까 ? 새 사진을 처음 찍은 1996 년부터 새를 찾아다닌 기억을 더듬어봤다 . 국내 조류도감인 <야생조류 필드 가이드> (2022 년 개정증보판 ) 기준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기록된 새는 모두 584 종인데 이 중 360 종 정도를 관찰했다 . 봄이면 많은 새가 섬을 징검다리 삼아 먼 거리를 이동한다 . 아직 만나지 못한 새를 보기 위해 2023년 5월2일 섬 탐조 1 번지인 전북 군산시 어청도로 향했다 . 매년 번식과 월동을 위해 이주하는 지구상 9 개의 주요 철새 이동 경로 중 ‘ 동아시아 ~ 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 (EastAsia Australia Flyway) 의 중간쯤 위치한 우리나라에서는 북상하는 여름철새와 나그네새뿐 아니라 길 잃은 새 등 다양한 유형의 새가 관찰된다 .

변화무쌍한 바다 날씨만큼 많은 새가 섬으로 날아들었다 .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1 만 마리 넘는 귀제비 , 제비 , 갈색제비 무리가 섬을 가득 메웠다 . 또 뭍에 여름을 전하는 개개비 , 꾀꼬리 , 휘파람새를 포함해 엿새 동안 섬에서 관찰한 새가 무려 102 종이나 됐다 . 예상치 못한 바람과 해무 때문에 배가 뜨지 않아 탐조 기간이 늘어났지만 , 흰등밭종다리와 검은지빠귀 2 종을 ‘내가 본 새’ 목록에 추가할 수 있었다 .

모든 새를 오롯이 혼자 힘으로 찾아낸 것은 아니었다 . 섬에서 새를 관찰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귀동냥한 새도 여럿이다 . 또 스스로 동정 ( 생물의 분류학상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일 ) 하지 못한 채 찍어둔 사진을 조류 전문가에게 확인을 부탁해 신원을 밝힌, 낯선 개체도 있었다 .

폐교를 앞둔 어청도초등학교 운동장 잡풀 사이에 숨어 있던 쇠붉은뺨멧새를 지켜보던 ‘ 나 홀로 탐조 ’의 기억도 새롭다 . 이 새는 촉새와 함께 봄에 섬 탐조 때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종이다 . 작은 인기척에 놀라 먹이 찾기를 중단하고 황급히 도망치던 덩치 작은 새들과 달리, 쇠붉은뺨멧새 한 마리가 좁쌀 같은 꽃이 노랗게 핀 잔개자리 사이에서 살짝 몸을 낮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 운동장에 새를 찍기 위해 낮춘 카메라 삼각대를 최대한 높이고 까치발을 하고서야 풀 사이로 숨은 새가 눈에 들어왔다 . 학교 다니는 아이처럼 숨바꼭질이라도 하려는 걸까 ? 속으로 외쳤다 . “ 못 찾겠다 , 쇠·붉 · 멧 ( 쇠붉은뺨멧새 ).”

사진 · 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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