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옷장은 아직 빈틈이 있습니까.
사계절이 있어 철마다 다른 옷을 입어야 하는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섬유 강국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수많은 상표를 단 새 옷들이 한 철 앞서 쏟아져 나온다. 소비 중심이 온라인으로 바뀌어, 퇴근길 직장인들은 택배상자를 집어든 채 문을 열고 들어간다. 모니터로 보고 산 옷들은 색상이나 질감, 맵시 등을 이유로 몇 차례 걸치지 못하고 옷장을 가득 채운다. 본전 생각에 미루고 미루다 새 옷에 밀려난 옷들은 의류수거함으로 던져진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제구실을 다하지 못한 옷들이 재기의 기회를 노리는 곳이 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외곽, 서울~문산 고속도로 사리현 나들목 주변 도로를 가운데 두고 46곳(2022년 12월 기준)의 창고형 구제의류 매장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선 옷뿐 아니라 모자, 신발, 허리띠, 핸드백, 지갑 등 각종 장신구도 새것보다 훨씬 싼 값에 살 수 있다. 매장 이름도 구제천국, 명품구제, 도깨비구제, 보물창고, 득템#, 대박이네 등 다채롭다.
취업에 성공한 26살 아들과 함께 2023년 5월12일 이곳을 찾은 60대 아버지는 꼼꼼히 양복을 고른다. 여러 패턴의 양복 윗옷을 입어보는 아들을 지켜보며 혼잣말을 되뇐다. “아래위 한 벌 정장이 많지 않은 게 아쉽네.” 매장 직원 이남일(38)씨는 손님이 사간 옷이 빠진 자리를 다른 옷으로 채워넣느라 다림질에 여념이 없다. “아무래도 절약 습관이 몸에 밴 50대 이상 손님이 많았죠. 유명 브랜드 코너가 생긴 뒤로 젊은 고객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라고 그가 귀띔한다.
패자부활전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옷들은 부피를 최소화하려 압축포장된다. 그리고 대형 컨테이너에 실려 세계 30여 나라로 수출된다. 이곳에서 가장 큰 업체인 기석무역은 한 해 1만5천t을 재활용 처리한다. 끝내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한 옷은 산업체에서 걸레로 쓰인다. 그마저도 어려운 옷들은 소각장에서 불살라져 열에너지를 만드는 것으로 소임을 마친다.
고양=사진·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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