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에서 서남쪽으로 60㎞ 거리의 시골 마을 오시비엥침(독일어는 아우슈비츠)에서 나치의 절멸수용소 해방 75주년을 맞은 1월27일(현지시각), 강제수용 생존자들과 폴란드 대통령을 비롯한 유럽 각국 지도자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 비르케나우 수용소 ‘죽음의 문’ 앞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추모식에는 이스라엘·미국·러시아·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온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 학살) 생존자 200여 명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영국·네덜란드·벨기에·스페인 왕실 인사 등 50여 나라 대표단이 참석해 희생자를 기렸다. 파키스탄 이민자 출신인 사디크 칸 런던시장 등 유명 이슬람교도들도 이곳을 찾아 종교·국가·인종을 넘어서 홀로코스트 희생을 추모했다.
18살에 절멸수용소로 끌려온 마리안 투르스키(94)는 추모행사 인사말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누군가 역사를 두고 거짓말할 때와 현재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과거를 이용하려 할 때 무관심하지 말아달라.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아우슈비츠가 우리를 덮쳐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고통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십계명에 하나를 추가할 수 있다면, ‘무관심하지 말라’다”라고 말했다.
생존자들은 외신 인터뷰를 통해 처참한 대학살의 기억을 소환했다. 바트셰바 다간(95)은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표현할 단어는 사전에 없다”며 아우슈비츠에 잡혀와 몽땅 잘려나간 자신의 머리카락이 침대 매트리스를 채우는 데 쓰였다는 걸 알았을 때의 충격을 전했다. 아우슈비츠에 함께 끌려온 어린이 5천 명 중 가장 어린 생존자였던 토바 프리드먼은 “내가 아는 많은 아이가 오븐(주검 소각로)에 들어갔을 때를 아직도 기억한다”며 “오늘 이곳에 있지 않은 모든 아이를 대표해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고 끔찍한 사연을 전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국립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0년 지어진 아우슈비츠 절멸수용소에서는 유대인을 비롯해 폴란드인, 집시, 소련군 등 약 110만 명이 학살됐다. 절멸수용소가 해방된 1945년 1월27일 아우슈비츠에서 발견된 생존자는 7천여 명이었으나, 75년이 지난 이날 추모행사에 참석한 생존자는 200여 명에 그쳤다. 15년 전만 해도 행사에 참석한 생존자는 1500여 명이었으나 빠른 속도로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수인복을 상징하는 푸른색 줄무늬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악몽의 장소를 다시 찾은 생존자들은 대부분 90살을 넘긴 나이였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끔찍한 역사의 현장을 찾았다는 생각에 “과거를 잊지 말아달라”고 연신 당부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우원식 “한덕수, ‘내란 특검’ 후보 추천 의무 오늘까지 이행하라”
[속보] 노상원 ‘계엄 수첩’에 “북의 공격 유도”… 정치인·판사 “수거 대상”
“탄핵 반대한다더니, 벌써 들뜬 홍준표…노욕만 가득” 친한계, 일침
[단독] HID·특전사 출신 여군도 체포조에…선관위 여직원 전담팀인 듯
안철수 “한덕수, 내란 특검법은 거부권 행사 않는게 맞다”
[단독] 윤석열, 4·10 총선 전 국방장관·국정원장에 “조만간 계엄”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내란 직후 임명…자격 없다” 국회 행안위서 바로 쫓겨난 박선영
롯데리아 내란 모의…세계가 알게 됐다
‘내란의 밤’ 4시간 전…그들은 휴가까지 내서 판교에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