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 (1989) 등 1980년대를 풍미했던 걸개그림을 그린 작가 최병수(58)씨. 회화·판화부터 솟대 등 설치미술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 시대의 아픔과 현실을 녹여온 현장미술가다. 남해 바다를 품은 작은 섬, 전남 여수 백야도에서 작업에 열중하는 최병수 작가를 만났다. 14살에 집을 나와 중국 음식점 배달원을 시작으로 목수와 배관공으로 일했던 그는, 1980년대 민주화를 향한 혼돈의 시기를 거치며 미술을 만났다. 소년 노동자의 얼얼한 마음을 온전히 간직한 채 미술가로 변모했다.
그는 시와 꿈을 품고 강정마을이 있는 제주 바닷가, 4대강 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빠진 낙동강 모래톱, 산업단지가 있는 여수 앞바다, 방조제로 죽어가는 새만금 갯벌 등 전국을 누볐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환경운동 현장, 이라크의 반전평화 캠페인 등 현장예술이 필요한 곳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1986년에 시작했죠. 목수일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서울 신촌에 벽화를 그리게 사다리를 짜달라는 거예요. 사다리를 짜준 뒤 그림이 지워지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그게 왜 지워지지? 예쁜데. 그리고 통일에 대한 얘긴데…. 친구들이 약이 오르니까 또 다른 곳에 벽화를 그린 거예요. ‘너도 같이 그려라’ 해서 꽃 몇 개 그렸죠. 한데 경찰이 이념화된 그림이라며 그걸 또 지우는 거예요. 그래서 대치하다가 경찰차에 끌려 들어갔죠. 성북경찰서로 갔는데, ‘직업이 뭐냐?’ ‘목수다.’ 그랬더니 ‘화가들하고 끌려왔기 때문에 직업을 화가로 해야 한다.’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꽃 몇 개 그냥 그렸는데 화가라니 말이 되냐?’ 하니까, 잠깐 그림을 그리고 있던 제 사진을 내밀더라고요. 그리고 직업란에 ‘화가’라고 적더군요. 그래서 갑자기 화가가 됐죠.”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미술가의 길을 고민했다고 한다. “잘할 수 있는 건 목공이고, 전시장은 사람들이 와서 봐야 하지만 이슈가 있는 현장에 뭔가를 세우면 더 파급력이 크지 않을까? 현장 일을 하면서 먹고살아왔기에 현장미술과 잘 맞아떨어진 거죠.”
화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 그는 걸개그림이라는 분야에서 민주화와 노동, 반전과 환경 운동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 학교교육으로 미술을 배우진 않았지만, 그의 작품에는 독특한 세계가 담겨 있다. 세상의 밑바닥을 지나온 경험을 바탕으로 진정성이 담긴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작품에 솟대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답한다. “전통적인 솟대는 오리를 많이 세웠는데, 그건 솟대를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매개물로 생각한 거예요. 우주와 교신한다는 의미로도 쓰고. 문자도 소통 수단의 하나죠. 해서 한글을 솟대화해서 만들게 된 거죠.”
학업을 못 마칠 정도로 가난했던 어릴 적 경험이 현장미술가로 사회운동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는 그는, “삶의 어둠과 밝음도 작품의 재료 같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 쇠로 자모 솟대를 만들고 있다. “환경문제건 사회문제건 따지고 보면 연결되지 않은 게 없죠. 인류 역사도 톱니바퀴처럼 굴러왔어요. 한데 점차 개인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어우러져 살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음으로 치열하게 작업해온 최병수 작가. 그의 작품은 세상의 변화와 함께했다. 미술이라는 그릇 속에 세상을 녹여냄으로써 더불어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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