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 내가 왔어.”
아프가니스탄 (AFP) 통신 카불지국 수석 사진기자 샤 마라이(41)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시지다.
지난 4월30일 아침 8시께(현지시각) 아프간 수도 카불의 국가안보국(NDS) 건물 인근에 오토바이를 탄 자폭테러범이 폭탄을 터뜨렸다. 첫 번째 테러 직후 교통 상황 때문에 현장에 접근하지 못해 애태우던 같은 회사 동료에게 샤 마라이는 ‘와츠앱’ 메신저로 이 말을 전했다.
폭발 현장 주변에 취재진과 긴급구호 인력이 모여들자, ‘폭탄 조끼’를 입은 두 번째 테러범이 기자증을 목에 걸고 기자로 위장해 현장에 접근해 또 자폭했다. 현장에서 사진과 영상을 찍던 마라이는 이 폭발로 목숨을 잃었다. 마라이를 포함해 아프간 방송 의 카메라맨 야르 모하마드 토키, (RFE) 아프간 지국 기자 3명 등 언론인 9명이 무참하게 희생됐다. 아프간 경찰 4명 등 모두 29명이 숨지고, 49명 이상이 다쳤다. (AP) 통신에 따르면, 이슬람국가(IS)는 이번 카불 테러에서 아프간 정보기구를 목표로 공격했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아프간에서 태어난 마라이는 19살 때인 1996년, 탈레반이 아프간 정권을 잡은 해에 《AFP》 카불 지국에서 운전기사로 처음 일했다. 사진기자들을 태우고 현장을 다니던 마라이는 기자들 옆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군의 아프간 공격을 취재한 뒤 2002년부터 전업 사진기자로 일하게 됐다.
그는 2015년 작성한 사내 프로필에 “사진을 독학했다”며 “지금은 내 사진이 세계에 보여진다”고 적었다. 일부다처를 허용하는 이슬람 관습에 따라 부인 2명과 자녀 6명을 둔 마라이는, 2016년 “아침마다 출근할 때 ‘저 차에 폭탄이 실렸을 수 있다’ ‘군중 속에서 자폭테러범이 뛰어나올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한다”며 블로그에 두려움을 밝히기도 했다.
다둥이 아빠답게, 그가 사선을 넘나들며 기록한 사진들에선 아이들을 향한 진한 사랑과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이후 마라이를 포함해 가장 많은 언론인이 희생된 테러 현장과 그가 생전에 기록한 사진들을 살펴본다. 역사의 증인으로 살다 너무 일찍 스러져간 그의 영전에 연대와 경의의 촛불을 밝힌다.
글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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