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2017 김포매향문화제’가 6월3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휴전선 앞에서 열렸다. ‘생명·평화·통일’이라는 주제로 열린 문화제에는 평양이 고향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가 함께했다.
평생 고향을 그리워한 길원옥 할머니의 낡은 신발, ‘위안부’ 피해자로 한집에서 같이 사는 김복동 할머니의 눈물 젖은 손수건, 시민들의 희망과 염원이 담긴 소원목(나무 조각)이 목함에 담겨 김포에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조강 나루터에 묻혔다. 이날 묻은 목함은 통일이 되면 꺼내 그 간절함을 되새길 예정이다. 또 길원옥 할머니의 신발은 고향 땅에 옮겨 묻는다.
길원옥 할머니는 이날 75년 전 헤어진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었다.
“엄마. 엄마 품에 안겨본 게 언제인지, 그 품속으로 달려가봅니다. 열세 살 그때 일본 군인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내게 달려들어도 엄마 생각하며 이겨냈어요. 집을 떠난 지 어느덧 75년이 지났습니다.”
구순을 바라보는 길원옥 할머니는 부축을 받아 고향 쪽을 바라볼 수 있는 군 철책 앞에 섰다. 고향은 보이지 않는데 눈망울이 붉어진다. 푸르렀던 어린 나이에 끌려가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상처에 세월의 더께가 앉아 곪았다. 일본의 법적 배상과 진정한 사과로 상처를 달래는 일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하지만 상처에 앉은 더께만큼은 남북이 털어줄 수 있다. 고향 땅을 밟아보는 일. 그 다리를 놓아줄 ‘귀인’을 길원옥 할머니는 기다린다.
길원옥 할머니가 북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_ 길원옥
“엄마, 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눈을 감으면
어느새 나는 내 고향, 평양 집 마루에 앉아 있습니다.
아 달콤한 냄새, 기분 좋은 바람, 해가 산꼭대기로 넘어가려는데,
머리 위에 잔뜩 물건을 이고 장사하러 나간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느덧 어둠이 우리 집 마당을 덮기 시작합니다.
그 어둠 앞에 엄마 모습 희미하게 보입니다.
“원옥아~” 아, 정말 내 엄마입니다.
“엄마~!” 엄마 품에 안겨본 지 언제인지, 그 품속으로 달려가 봅니다.
그런데 엄마는 금방 어둠 속으로 안개처럼 흩어져 버리고
열세 살 어렸던 원옥이는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손등에 주름이 서려 있는 90세 할머니가 홀로 어둠 앞에 서 있습니다.
“엄마, 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열세 살 그때 일본 군인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내게 달려들어도 엄마 생각하며 이겨냈어요.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에
나는 살고 싶어 버둥거렸어요.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일본 군인들에게 내 몸 수십 번, 수백 번 빼앗기며 울고 또 울었던 그 날들을 엄마에게 토해내며 실컷 울고 싶었어요.
엄마 품에 안겨 울기만 해도 내 아픔 다 나을 것 같았어요.
그러나… 엄마 나는 지금 길을 잃어버렸어요.
집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렸어요.
“집을 떠난 지 어느덧 75년이 지났습니다.”
그 무섭고 끔찍했던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되었다네요…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이 이다지도 멀까요?
아직도 나는 해방을 기다려야 하나요?
그래도 엄마,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집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일본 정부에게 해결을 바라며,
70년 동안 하루하루를 쉼 없이 달려왔어요.
“나 올해는 꼭 집으로 돌아갈 겁니다.”
나 올해는 꼭 일본 정부에게 사죄를 받을 것입니다.
나 지금 비록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엄마… 우리 곧 만나요.
*길원옥 할머니의 육성 편지는 ▶이곳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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