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스스로 불타오른 곳은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이었지. 그가 떠나고 꼭 50년이던 날, 많은 노동자가 그 자리에 모여 똑같이 외쳤단다. 그 소리에 놀랐을까, 너희가 한꺼번에 날아올랐지. “우리는 닭이 아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었을까. 2020년 서울 평화시장 앞.
한때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지금은 ‘날아다니는 도시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따르면, 아주 옛날 하느님은 썩어빠진 세상을 쓸어 없앨 마음을 먹었다. 미련이 남았던 걸까. 600살 노아를 불러 가족과 함께 동물 한 쌍씩을 배에 태우라고 귀띔한다. 40일 동안 폭우가 쏟아지고 150일이나 대홍수가 이어지자 세상의 생명은 절멸한다. 홍수가 끝날 무렵 날려 보낸 비둘기가 올리브나무 가지를 물고 돌아오자 노아는 재앙이 끝났음을 알아챈다. 그로부터 비둘기는 중요한 소식을 나르는 메신저로 통하기 시작했다.
비둘기의 뛰어난 방향감각과 귀소본능, 장거리 비행 능력은 전쟁 통에 진가를 발휘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에서 독일군에 포위됐던 미군 308보병연대는 비둘기 ‘셰르 아미’를 날려 구조를 요청한 끝에 겨우 살아 돌아왔다. 셰르 아미는 프랑스 전쟁영웅에게 주는 ‘크루아 드 게르’ 훈장을 받았고, 1919년 임무 중 전사했다. 그의 사체는 곧바로 박제돼 국립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자유의 대가: 전쟁터의 미국인들’ 부문에 오늘까지도 전시 중이다. 전사가 전시로 이어진 셈이다. 사망 100주년을 맞아 미국 의회는 ‘전쟁과 평화, 동물용맹훈장’을 셰르 아미에게 수여했다. 제1, 2차 세계대전 중 비둘기의 활약상은 대단했다. 참전국 대부분이 비둘기 통신부대를 운영했다. 영국군은 날아다니는 통신병을 25만 마리나 키울 정도였다. 비둘기는 전쟁 무기였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데는 피카소 덕이 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비둘기를 사랑했다. 미술교사이던 아버지가 먼저 비둘기를 그렸고, 피카소는 9살 때부터 비둘기를 그렸다. 1901년 스무 살에 그린 ‘비둘기를 안은 아이’는 그의 청색시대를 여는 대표작이다. 이 그림은 영국에서 오랜 세월 사랑받았으나, 2012년 경매에서 868억원에 카타르에 팔리자 반출금지령까지 내려가며 모금운동을 벌였지만 그림을 되사는 데 실패했다. 피카소의 또 다른 비둘기 대표작은 1949년 공산당이 주최한 파리 세계평화회의 포스터 그림이다. 쏟아지는 찬사에 즐거웠던 피카소는 같은 해 태어난 딸에게 ‘팔로마’(Paloma)라는 이름을 지었다. 스페인어로 비둘기라는 뜻이다. 평화회의 포스터의 성공은 ‘비둘기=평화’라는 공식으로 이어졌다. 소련·중국 등 거의 모든 공산권 국가에서 포스터, 깃발, 우표 등으로 재생산됐다. 1981년 소련에서는 이 그림을 넣은 피카소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가 발매됐다. 그의 비둘기 그림들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촉구하는 수많은 곳에서 여전히 사랑받는다.
하지만 내 기억 속 ‘비둘기와 평화’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으로 날아간다. 전두환에게 88올림픽은 피로 얼룩진 학살을 가려줄 절호의 기회였다. 자신의 통치 아래 평화로운 서울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성화가 점화되면 일제히 날아오를 평화의 비둘기를 2400마리나 준비했다. 그러나 성화 점화식은 비둘기 화형식이 되고 말았다. 2012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역대 최악의 올림픽 개막 행사로 88올림픽을 꼽은 까닭이다. 팔팔하던 평화를 태워 죽였으니.
사진·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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