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비서(그냥 비서가 아니라 총비서)에게 근사한 선물을 보냈다. 일흔두 살 블라디미르 푸틴이 마흔 살 김정은에게 돈독한 우정의 선물을 보냈다. 늙은 사자가 젊은 사자에게 사자를 보냈다. 독재자가 독재자에게, 1999년 러시아 대통령 권한대행에 오른 이래 25년째 철권을 휘두르고 있는 시베리아의 왕이 1945년 조선노동당 창건 이래 무려 삼대 세습의 위업을 잇고 있는 백두의 왕에게 초원의 왕을 선물했다.
악명 높은 보안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인 푸틴은 툭하면 상남자 티를 낸다. 한겨울에 웃통 벗고 얼음물 속에 뛰어들거나, 온갖 운동기구를 쥐락펴락하며 근육을 자랑하고, 훌쩍 말에 올라 들판으로 사냥을 나간다. 이런 짓은 왕을 빛내는 장식이요, 이를테면 수사자의 갈기다. 그가 동물보다 사람을 더 많이 사냥했다는 사실이 비밀일 수 있는가.
김일성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이래, 백두의 눈바람 속에 그 아들 김정일이 태어난 이래, 백두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성지가 됐다. 그들 가족은 이른바 ‘백두혈통’이라 불린다. 김일성도 사냥을 즐겼다. 김정일은 영화를 좋아했다. 김정은은 스포츠와 놀이를 좋아한다. 셋 다 말타기를 좋아했고, 백마 탄 자신의 모습을 선전에 활용했다. 인민들은 흰 말을 타고 눈보라를 헤치며 백두산에 오르는 지도자 동지의 모습에 그저 울었다. 백두산 호랑이에 능히 필적할 인물은 오직 수령님이 아닌가. 걸핏하면 동물의 왕이라 불린다는 점에서 호랑이와 사자는 같다. 주석궁의 사람 사자도 크렘린궁의 사람 사자만큼이나 사람 사냥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 사자들이 얼마 전 동물 사자를 주고받은 것이다.
2024년 11월20일 모스크바에서 날아오른 러시아 수송기가 사자와 불곰, 야크, 앵무새, 꿩, 원앙 등 70여 마리의 동물을 싣고 평양에 내렸다. 관심은 단연코 아프리카 사자에게 쏠렸다. 마푸샤라는 암사자의 이름만이 알려졌다. 흔한 꿩 따위가 어떤 이름으로 불렸는지 누가 알려주려/알려고 한단 말인가. 비좁은 상자에 실려 와 평양 중앙동물원 사자 우리에 다시 갇힌 마푸샤 앞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께 푸틴 대통령이 올린 선물”이라는 큼지막한 안내판이 달렸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란 없다는데, 하물며 공짜 사자가 있을까. 늙은 사자가 젊은 사자에게 보낸 진짜 사자는 피의 대가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를 위해 북한이 정예부대를 파병했다. 1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2만 명이라는 설도 있으며, 이미 많은 수가 전투에 투입돼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인민을 총알받이로 내어주고 받은 사자였다. 북한은 한 마리 사자와 함께 헤아릴 수 없는 전사자를 갖게 될 것이다. 사자와 전사자 사이에 흐르는 깊고 차가운 강을 어떻게 건너야 할까. 어느 날, 아빠를 잃은 아이들이 소풍 삼아 놀러 온 동물원에서 마푸샤를 만난다면, 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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