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 청룡부대가 쏜 총에 옆구리를 맞아 쏟아진 장기를 부여잡고 도망쳐 간신히 살아난 당시 여덟 살 아이가 다시 대한민국을 상대로 법정에서 다퉈야 한다.
1968년 2월12일 응우옌티탄은 베트남 꽝남성 퐁니마을 마당에서 아이들과 놀다가 총소리를 들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은 작은 동굴에 숨었지만 금세 한국군에 발각돼 총격을 받았다. 언니는 집 부엌에서 살해됐고 다섯 살배기 남동생은 얼굴에 총을 맞아 입이 날아간 채 숨졌다. 엄마는 마을 들머리에서 다른 주검들과 뒤엉켜 발견됐다. 태어난 지 열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던 이모도 아기와 함께 희생됐다. 이날 퐁니·퐁넛 마을 주민 74명이 한국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한국군이 떠난 뒤 마을에 진입한 미군에 구조된 응우옌티탄은 10개월가량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 그리고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면 어머니에게 ‘나도 데려가달라’고 기도하며 전쟁고아로 살았다.
2020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학살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한 응우옌티탄은 2023년 2월7일 꿈같은 소식을 듣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이날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3천만1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배상소송의 최소 신청금 3천만원에 100원만 더해 청구한 원고 쪽의 완전한 승소였다.
“학살당한 영혼들도 이제 안식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무도 기쁩니다.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라는 그의 기쁨이 채 가시기 전, 3월9일 대한민국 정부는 항소 방침을 밝혔다. “전쟁을 치르는 국가들은 교전 중 행위가 면책된다는 점, 베트콩의 신분과 게릴라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순수 민간인과 베트콩을 구분하기 원천적으로 어려웠다는 점” 등을 적은 항소이유서를 7월7일 법원에 제출했다. 항소심 첫 공판은 2024년 1월19일 열린다.
항소심 공판을 앞두고 2023년 12월5일 퐁니마을 학살위령비를 찾은 응우옌티탄은 가족 이름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지난 재판에서 이긴 건 무척 기뻤지만, 이미 일어난 일들은 너무 슬퍼요. 제 몸과 마음에는 여덟 살 때 새겨진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이곳에 와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와 증인들도 그대로 있습니다. 한국 언론과 시민들이 저와 피해자들을 지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령비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 옆에 출생연도가 촘촘히 적혀 있다. 태어난 지 한 달여 밖에 안 된 1968년생 갓난아기 1명, 1967년생 한 살배기가 3명, 1966년생 두 살배기도 3명이다. 1955년 이후에 태어난 열세 살 이하 어린이가 35명에 이른다. 대한민국은 이들에게 게릴라 혐의를 씌워 법으로 다퉈볼 터인가.
꽝남성(베트남)=사진·글 이정우 사진가*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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