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로가 일주일여 지난 2023년 10월16일 저녁 아파트 불빛이 휘황한 경기도 고양시 식사동 들녘에서 황금빛 벼 이삭이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다.
올벼(제철보다 일찍 여무는 벼)를 찧어 지은 밥을 조상님께 바치는 추석이 한참 전이고, 찬 이슬이 맺힌다는 한로(10월8일)도 지났다. 철든(‘계절을 아는’이란 말에서 유래) 농부라면 가을걷이를 마쳤어야 했다. 서리가 내리는 상강(10월24일)을 앞두고 2023년 10월16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 들녘에 누렇게 농익은 벼 이삭이 낟알을 잔뜩 매단 채 마음 바쁜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고 섰다.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아파트 창에선 돌아온 가족을 맞이한 불빛이 하나둘 흘러나와 콘크리트 상자에 색을 입힌다. 인구 백만을 넘어설 정도로 도시화가 진행돼 특례시로 지정된 고양시는, 본디 비옥한 토양 덕에 벼가 무르익는 곡창지대였다.
1991년 일산 신도시 개발 당시 고양군 송포면 대화4리 가와지마을에서 아주 오래된 볍씨가 발견됐다. 개발 대상지의 문화유적 발굴조사 중 식물 유해가 퇴적된 토탄층에서 12톨의 볍씨가 발굴된 것이다. 연대 측정 결과 무려 5020년 전 신석기시대에 농경 목적으로 ‘재배한 벼’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른바 한반도 최초의 재배 볍씨로 공인받아 ‘가와지볍씨’라 이름 붙였다.
수천 년 전통의 농토에서 수십 년째 논농사를 짓는 85살 농부는 한사코 이름 밝히길 사양했다. “농사밖에 배운 게 없어 여태 이러고 있는데, 이름은 뭐 하려고요.” 이제는 힘에 부쳐 두 아들과 함께 농사짓는단다. “농사란 게 본래 해마다 날씨 따라 수확량이 다르지만,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길어 작황이 좋지 못하다”며 한숨이다.
도시에 사는 이들이 귀촌하고 귀농도 하는 시대다. 하지만 그들이 떠난 도시에선 농사를 천직 삼아 땅을 지키던 이들의 집과 들이 아스팔트에 포위된다. 새로 들어선 단지마다 외래어 이름표가 달린 고층 아파트의 휘황한 불빛이 소박한 기와지붕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에서 까치들이 농부가 흘린 낟알을 찾고 있다.
귀농한 새내기 농부들은 대개 밭농사나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는다. 규모와 경륜이 필요한 논농사는 토박이 농부들 몫이다. 2022년 쌀값이 폭락하자 정부는 논에 벼 대신 논콩·가루쌀 등을 심으면 지원금을 주는 ‘전략작물직불제’를 시행해 쌀 재배면적을 축소했다. 폭염과 폭우 등 이상기후까지 더해 2023년 쌀 생산량은 8만t 정도 줄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올해 쌀값은 80㎏당 20만원 선을 회복했다. 그럼에도 쌀농가는 소득이 줄었다는 푸념이다. 생산량 감소에 국제 유가와 비룟값 등 생산비용이 늘어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서둘러 가을걷이를 끝낸 빈 들엔 까치떼가 날아와 ‘낟알 줍기’를 한다. 까치들은 논두렁보다 더 지척인 대로를 질주하는 차량의 기척과 굉음에 하릴없이 날아올랐다 내려앉길 거듭한다. 편치 않은 도시 속 농토의 삶이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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