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 100가지’ 따위의 목록을 만든다고 해보자. 아마 ‘아마추어 야구팀의 매니저 되기’가 꽤 상위권을 차지할 것이다. 이유는? 내가 팀의 일원으로 야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니까. 그렇다면 30년 동안 그 일을 하지 못한 이유는? 여기서 잠깐 만화 H2나 (야구팬이 아니라면 )를 떠올려보자. 매니저 노릇이란 예쁜 얼굴에 단발머리를 하고 때로 짧은 운동복 반바지를 입은 채 루키를 상대로 어장관리를 하며 에이스와 사귀는 거다. 필수품은 미소와 눈물, 어휴, 말을 말자.
일본 소설가 이와사키 나쓰미는 이런 매니저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연히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의 라는 책을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탓이다. 그는 ‘만약 고교야구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이라는 상상을 했고, 그 제목 그대로 첫 소설을 썼다.
‘매니저의 근본적 자질은 진지함’이라는 드러커의 말대로, 소설의 주인공 미나미는 지나치게 진지하다. 그는 별 볼일 없는 도립고등학교 야구부를 고시엔(甲子園·전국고교야구대회)에 진출시키려 애쓴다. 드러커의 책을 성서처럼 여기며. 그 결과는?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던 에이스 투수, 선수들에게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감독, 성실하고 머리가 좋지만 야구 실력은 바닥이던 모범생, 늘상 실책을 범해 팀을 패배로 이끌던 외야수, 기타 등등이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실력을 발휘한다. 이 학교의 매니저는 감독과 새로 영입한 문제아들을 포함해 7명으로 늘어난다. 말로는 어렵다던 문제들이 드러커의 말에 따라 착착 해결되는 것을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다. 그래도 참고 읽다 보면 당신이(미나미의 말에 따르면 고교야구의 ‘고객’이) 원하는 풋풋한 감동이 뒤따라온다.
마이클 루이스의 책 (최근 개봉한 브래드 피트의 동명 영화 원작)은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이 야구계에서 가장 적은 돈을 받으면서도 프로야구 체제의 문제를 돌파하고 4년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킨 과정을 그리고 있다. 빌리 빈은 고교 시절 모든 스카우터들이 꿈꾸던 완벽한 선수였으나, 뉴욕 메츠에 지명된 뒤 마이너리그 선수로 추락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성공은, 사람들이 결코 알아보지 못해 버림받는 훌륭한 선수들을 알아보는 것으로 이뤄졌다. 야구기자의 전설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 구단은 구단주의 소유물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만 바라면서 종전처럼 박수나 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빌리 빈은 올바른 선택을 했다. 드러커가 폭넓게 정의한 ‘매니저’의 역할이란, 한국의 어느 게으름뱅이의 의욕을 샘솟게 할 정도로 대단하다.
대한민국의 ‘매니저’ 양반들(누군지 알겠지?)에게 이 두 권의 책을 권하고 싶다. 아무래도 그들은 매니저가 아니라 스스로가 구단주이고, 이 나라가 그들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게다가 올바른 선택을 할 줄도 모른다.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보다 진지함이 결여돼 있으며, 심지어 예쁘지도 않… 어휴, 말을 말자.
김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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