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사이 경쟁은 자본주의의 숙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1888∼1896년 미국에서 벌어진 ‘전류 전쟁’(Current Wars)만큼 극적인 사례는 역사적으로 찾아보기 힘듭니다. 개별 상품이 아니라 발전과 송배전부터 가정과 공장의 전기 활용까지 미국 경제와 사회를 완전히 새롭게 하는 거대한 싸움이었습니다. 승자는 미래의 지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도 초호화판이었습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모두가 다 아는 영웅으로 당시에도 마법사로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상대인 조지 웨스팅하우스도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에 공기 브레이크를 발명해 철도 시스템을 혁신한 천재였습니다. 니콜라 테슬라는 한동안 잊혔지만 2003년 이후 그의 이름을 딴 주식회사 테슬라가 세계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면서 지금은 테슬라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1980년 이래 최근까지 퍼스널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인터넷과 모바일 컴퓨팅에 이르는 정보기술(IT) 혁명의 승자가 되기 위해 싸웠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의 경쟁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레이엄 무어의 장편소설 <밤의 마지막 날들>은 치열했던 전류 전쟁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는데, 흥미롭게도 주인공은 천재 발명가들이 아니라 이십 대의 햇병아리 변호사 폴 크라배스입니다. 전류 전쟁이 특허를 둘러싼 법률 전쟁으로 진행된 것도 이유이고, 다른 한편 크라배스도 법률 서비스 산업을 혁신한 천재(물론 에디슨, 웨스팅하우스, 테슬라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였기 때문입니다.
1886년 컬럼비아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크라배스는 뉴욕시의 저명한 변호사 월터 카터의 도제(Apprentice)로 선발돼 훈련받고 카터-휴스-크라배스 법률사무소의 파트너로 변호사 일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다른 파트너들이 활약하는 동안 크라배스는 단 한 명의 고객도 끌어오지 못해 낙담합니다. 심지어 크라배스보다 한 살 어린 찰스 에번스 휴스가 대형 철도회사를 상대로 소송해 자존심에 상처를 받습니다(휴스는 이후 뉴욕 주지사, 국무부 장관과 대법원장을 역임했고, 우드로 윌슨을 상대로 대통령선거에 나서기까지 한 인물입니다).
어느 날 크라배스는 피츠버그 외곽의 웨스팅하우스 저택에 초대받아 기차를 타고 방문합니다. 웨스팅하우스 개인의 전용 열차일 뿐 아니라 역에서 집까지 10㎞ 가까이 연결된 철도 자체도 그의 전용 노선일 정도로 웨스팅하우스는 거부입니다.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과의 소송에 맞서기 위해 크라배스를 변호사로 선임하고 ‘에디슨의 악랄함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첫 고객이 거대 기업이니만큼 그는 뉴욕의 법조계와 월스트리트에서 단연 화제의 인물이 됩니다.
전구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하자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가 자신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전방위적으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웨스팅하우스의 회사와 자회사는 물론이고 거래처들까지 망라한 312건의 소송에 금액은 무려 10억달러입니다. 크라배스는 웨스팅하우스로 하여금 윌리엄 소여와 앨번 맨으로부터 구입한 별도의 전구 특허를 이용해 에디슨을 맞고소하도록 합니다. 다른 한편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가 협력하면 상호 이득이 될 것이라며 타협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에디슨은 눈도 끔쩍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술이 더 우월하다 생각하고, 회사 규모도 열 배나 더 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금융왕 제이피(J.P.) 모건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기 때문입니다(모건은 에디슨 회사의 지분 60%를 소유한 최대 주주였습니다).
크라배스는 동유럽 출신의 또 다른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에디슨의 회사에서 근무하다 의견 충돌로 모욕을 받고 쫓겨났다는 것입니다. ‘에디슨의 적은 누구나 웨스팅하우스의 친구’라는 생각으로 테슬라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미국 전기학회 주최로 개최된 특별 강연에서 테슬라가 ‘교류 체계’를 발표하는 것을 듣고 그를 영입합니다. 그간 공상처럼 여겨졌던 교류 시스템이 테슬라에 의해 현실화한 것입니다. 특허 분야의 전설적 변호사 레뮤얼 세릴이 테슬라를 대신해 계약하는데, 7만달러를 선지급하고 웨스팅하우스가 테슬라의 기술을 이용해 판매한 모든 기계에 대해 1마력당 2달러50센트를 추가 지급하는 조건이었습니다.
이제 싸움은 ‘전구 특허’ 문제에서 ‘직류와 교류라는 전기 시스템 전체’로 확대됐습니다. 직류 체계의 선두 주자였던 에디슨은 테슬라-웨스팅하우스 진영의 교류 체계를 죽이기 위해서 이번엔 특허가 아닌 여론과 금융을 동원합니다. 회사 주식으로 신문사 사주들을 매수해 ‘교류는 대중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내모는 위험천만한 기술인데도 안전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가증스러운 기업이 이를 채택했다’고 웨스팅하우스를 비난하는 논설로 모든 신문을 도배합니다. 심지어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치인들을 회유해 웨스팅하우스에서 제작한 교류 발전기를 사형 도구로 사용하도록 합니다.
직류에 비해 기술적으로 우월한 교류 시스템이 확산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에디슨과 싸우느라 현금이 점차 말라 기진맥진 상태입니다. 설상가상으로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와 불화가 생겨 사라집니다. 크라배스는 테슬라를 찾아다니는 한편 웨스팅하우스의 자금 유치를 위해 나서지만 금융기관은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에디슨은 웨스팅하우스에 정보원을 심어 놓아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웨스팅하우스 쪽에서 금융기관과 약속을 잡으면 에디슨에게 바로 보고되고 모건이 나서서 금융 지원을 봉쇄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크라배스는 웨스팅하우스가 에디슨과 맞서 싸워서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타협책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디슨을 상대하지 않습니다. 에디슨의 회사 역시 막대한 지출을 하고 있음에 착안해 에디슨의 돈줄인 모건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양사가 합병하면 막대한 이익을 낼 것이라고 설득합니다. 모건이 솔깃해하면서도 에디슨이 반대할 것이 뻔하다고 주저하자, 크라배스는 더 나아가 에디슨을 제거하라고 부추깁니다. 그리고 크라배스의 계획대로 양사는 합병하고 에디슨은 축출됩니다. 에디슨은 회사 명칭에서 자신의 이름만이라도 남겨달라고 요청하지만 이들은 이마저도 거절합니다.
크라배스는 악랄한 에디슨과 싸워 이겼지만 그 역시 악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한밤중에 상대의 사무실에 몰래 침입해서 서류를 훔치고, 자신의 고객과 동료 파트너들을 속이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테슬라의 변호사 몰래 테슬라를 만나 공익에 부합한다며 막대한 로열티를 아무 대가 없이 포기하도록 회유했습니다. 나중에 크라배스의 아내가 되는 애그니스 헌팅턴조차 이를 두고 ‘천벌을 받을 짓’이라고 크라배스를 비난할 정도였습니다.
또 크라배스는 ‘파트너-어소시에이트’ 체제를 로펌에 처음으로 도입한 인물입니다. 그 이전까지 변호사 업계는 기본적으로 ‘스승-도제’ 관계였는데, 크라배스는 로스쿨을 갓 졸업한 변호사들을 급여를 받는 어소시에이트로 고용해 분업에 활용했습니다. 당시에는 급여를 받는 변호사란 없었고 어소시에이트란 표현도 없었습니다. 크라배스는 어소시에이트가 성공하면 파트너로 승진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가차 없이 해고했습니다(Up or Out). 발명가의 논리로 기업이 운영되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한 그가 로펌 역시 냉정한 기업 논리로 운영되도록 한 것입니다. 이를 크라배스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이후 법조계뿐 아니라 회계업, 컨설팅업 등에서도 표준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제일 앞에 박혀 있는 ‘크라배스, 스웨인 앤 무어’는 지금도 세계 최고 로펌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그레이엄 무어는 1981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난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입니다. 데뷔작 <셜로키언>(2010) 이래 발표한 세 권의 소설이 모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2014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고, 2022년 그가 감독한 영화 <아웃핏>도 호평받았습니다. <밤의 마지막 날들>은 2016년 출간됐고, 국내에서는 2018년 강주헌의 번역으로 교보문고에서 출간됐습니다. 최근에는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운 미국 재무부 경제 관료들의 활약을 그린 소설 <그림자의 부>를 출간해 다시 한번 화제가 됐습니다. 그의 장기는 역사를 픽션으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극적 효과를 위해 허구를 가미했는데, 책 말미에 이를 구분하여 독자가 오해하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일반인이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동시에 경제와 금융 종사자가 소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연재입니다. 2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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