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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끈 긴’ 사람들은 어떻게 강남 아파트를 샀나

1970년대 중산층 지식인 사회에 불어닥친 투기 열풍 다룬 박완서 ‘낙토의 아이들’
등록 2024-05-10 16:50 수정 2024-05-17 13:03
한강변의 강남 아파트 단지와 강북을 가르는 한강의 모습. 국가기록원.

한강변의 강남 아파트 단지와 강북을 가르는 한강의 모습. 국가기록원.


부동산 열풍에 휩싸인 1970년대 서울 강남의 모습을 그린 박완서의 ‘낙토(樂土)의 아이들’은 스물다섯 쪽에 불과한 짧은 소설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풍성합니다. 개발 정보 빼돌리기나 분양권 전매와 같은 고전적인 투기의 모습뿐 아니라 미시적 차원의 다양한 사회적 현상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소위 복부인으로 표현되는 투기에 뛰어든 주부들의 모습과 강남의 왜곡된 교육열, 강남·북 사이뿐 아니라 강남 내부의 계층 분화까지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요즘엔 ‘임장’, 과거엔 ‘답사’

소설의 화자는 대학 강사인 남편이고 주인공은 아파트 투기에 나선 그의 아내입니다. 1970년대 초반 결혼 3년차에 이들은 무릉동의 평민 아파트로 이주했습니다. 아직 강남 열풍이 본격화하기 전이라 대금을 20년에 걸쳐 나눠 낼 수 있도록 특혜를 줬음에도 신청이 분양 가구 수에 미달해 무추첨 당첨됐습니다. 남편은 변두리로 밀려온 느낌에 부끄러워하는데 정작 아내는 이 지역이 내뿜는 ‘이상한 활기’에 취해 오히려 생기발랄해지고 당당해졌습니다. 무릉동은 가상의 지명으로 지금의 강남구와 서초구를 포괄하는 영동지구개발 사업 현장이니 반포에서부터 신사동, 압구정을 거쳐 삼성동에 이르는 지역 중 한 곳입니다. 평민 아파트도 공식 명칭이 아닙니다. 대형 고급 ‘맨션아파트’와 대비되는 소형 평수의 저층 아파트를 작가가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노인들이 소일거리 삼아 하던 복덕방을 대신해 야망에 찬 청년들도 개발의 열기와 함께 부동산중개업이라고 부르며 강남에 진출했습니다. 아내가 ‘선견지명이 있는 젊은이’로 높게 평가하는 탁 사장이 그중 하나입니다. 대학에서 부동산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고 강의하며 교수님이라고 불립니다. 아내는 탁 사장이 극비리에 빼낸 각종 개발 정보를 믿고 간 크게 빚까지 내서 여러 채의 아파트 분양권을 사들이고 공식 발표가 나서 가격이 폭등하면 전매하는 방식으로 돈방석에 올라섰습니다. 사는 집도 평민 아파트에서 무릉동에서 가장 호화로운 50평 맨션으로 옮겼습니다.

소설은 “답사 갔다 올게요”라고 통보한 아내가 탁 사장과 함께 파란 승용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내다보는 남편의 복잡한 심사로 시작됩니다. 잘 정비된 아파트 단지와 상업단지를 지나 새로운 투기판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부동산을 사기 전에 ‘현장에 직접 가서 살핀다’는 의미로 임장(臨場)이라는 말이 유행인데, 당시에는 답사라고 했던 모양입니다.

지질학자인 남편 입장에서 답사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 하는 순수한 학술 여행입니다. 그러니 집 장사들이 투기 대상을 찾아다니며 ‘답사’라는 말을 쓰니 들을 때마다 역겹습니다. 아내는 반대로 남편의 답사에 대해 ‘열 번에 한 번이라도 석유를 잡든지, 하다못해 노다지를 잡든지 해야지. 맨날 허탕만 치는 답사’라고 비웃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교수 부인’이라는 호칭에 애착이 있어 ‘돈도 안 되는 일 때려치우라’고 몰아세우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1980년대 초 강북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근 고등학교에 배정받던 시절입니다. 동기 중 여럿이 당시 저는 존재조차 모르던 강남의 고등학교에 배정받은 것을 보고 ‘이건 뭐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8학군이라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들의 명문 학교 진학을 위해 진작부터 부모가 강남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주소를 옮겨놓은 경우였는데 교사, 교수, 의사, 변호사 등 가방끈 긴 지식인이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주인공이 투기로 큰돈을 벌었으면서도 별것 아닌 ‘교수 아내’라는 호칭에 그토록 애정을 갖는 게 이해가 갔습니다.

‘복부인’ 뒤에 숨은 남성의 이중적 욕망

‘복부인’이라는 단어가 부동산 투기를 일삼는 중산층 이상의 주부들을 경멸적으로 일컫는 유행어로 자리 잡은 것은 부동산 투기가 본격적으로 대중화하기 시작한 1978년 전후라고 합니다(전봉관, ‘주거의 투기화, 투기의 여성화’). ‘낙토의 아이들’이 발표된 바로 그해입니다. 당시 언론에 비친 전형적 복부인은 ‘양장을 입고 굵고 큰 테의 안경을 낀 30∼40대, 학력이 높고 남편의 사회적 지위도 상층이며, 콧소리를 내고 삿대질하며 자신만만한’ 여성입니다.

복부인이 강남 개발과 아파트 투기의 핵심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개발을 주도한 고위공직자와 대형 건설사의 의사결정자는 모두 잘나가던 남성이었습니다. 여성학자 최시현이 복부인 담론을 ‘과잉 도시화한 수도권에서 대중이 느끼는 피로감과 상대적 박탈감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여 감정적 쾌락을 만드는 정치 공학적 산물’(<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역사적 타당성이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아내’야말로 ‘강남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고 성공한 중산층 여성’인 전형적인 복부인입니다. 차별 의식으로 찌든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에 오히려 자부심이 있고, 교수 부인이라는 허영도 있습니다. 하지만 박완서는 투기를 남성이 아닌 여성의 문제로 인식하지는 않습니다. 복부인이라는 단어를 쓰지도 않습니다. 복부인과 남성 부동산업자가 함께 투기를 주도할 뿐만 아니라, 투기에 냉소적인 남편 역시 공범이라는 인식을 갖습니다. 남편은 ‘답사’라는 단어가 능욕당하고 투기꾼이 부동산학이라는 천박한 학문의 ‘교수님’ 소리를 듣는 것에 배알이 꼬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아내를 담대하고 탁월한 사업가라고 평가하고 자신에 대한 한탄과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투기로 장만한 안락과 풍요가 주는 안일함에 빠져 있습니다.

심지어 박완서는 다른 작품에서, ‘누구 망신을 시키려고 복부인 노릇을 하느냐’ 야단치면서도 자기들끼리 술잔을 기울이면서는 ‘요샌 복처처럼 큰 처복도 없다’고 키득거리는 남편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서울 사람들’).

중산층의 속물근성 극복하려 한 박완서

강남 개발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현장입니다. 경제 구조 측면에서도 중요하고 굵직한 사건들과 비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황석영은 <강남몽>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강남 개발과 건설업자의 비리, 조직폭력배와 룸살롱 등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는데, ‘낙토의 아이들’에는 그런 큰 서사가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가 극히 일부 거물의 노름판을 넘어서서 중산층의 삶과 의식에도 깊숙이 확산해 있다는 것 역시 이 시기를 규정하는 결정적 요소 중 하나입니다.

박완서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골수 중산층이라는 걸 잘 알고, 중산층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에는 언제나 승복한다’고 인정하면서 ‘중산층의 허위의식, 안이한 태도, 속물근성, 기회주의적 속성 등을 극복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낙토의 아이들’은 작가의 이런 인식을 잘 구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박완서 <낙토의 아이들>은?

박완서는 1931년 경기도 개풍군에서 태어나고 2011년 서울에서 사망한 작가입니다. 서울대 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졸업하지 못했고, 40살이 다 돼가던 1970년 <나목>이 <여성동아>에 당선돼 소설가로 등단했습니다. 일생 수많은 장단편 소설을 발표했고,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국내의 거의 모든 주요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낙토의 아이들’은 1978년 <한국문학>에 게재됐고, 문학동네에서 펴낸 박완서 소설집 <배반의 여름>(1999)에 수록돼 있습니다.ㅂ

 

박완서 작가. 한겨레 자료사진. 

박완서 작가. 한겨레 자료사진. 


 

*일반인이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동시에 경제와 금융 종사자가 소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연재입니다. 2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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