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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24살 이하는 처음 겪는 세계사적 사건

강도·예측 불가능성·정책 대응, 세계사적 사건이 될 이번 인플레이션의 세 가지 특징
등록 2022-07-12 15:05 수정 2022-07-13 02:40
2022년 6월28일(현지시각)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가한 나라 정상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있다. 정상들은 회의 뒤 러시아에 “농업과 운송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무조건 중단해 우크라이나 항구에서 농산물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REUTERS 연합뉴스

2022년 6월28일(현지시각)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가한 나라 정상들이 원탁에 둘러앉아 있다. 정상들은 회의 뒤 러시아에 “농업과 운송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무조건 중단해 우크라이나 항구에서 농산물이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REUTERS 연합뉴스

2022년 7월5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과 비교해서 6% 상승했고, 이는 외환위기 한복판이던 1998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인플레이션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인플레이션은 여러 측면에서 세계사적 사건이 될 가능성이 큰데, 그 특징을 살펴보자.

미국은 41년, 독일은 49년 만에 물가상승률 최고값

첫째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인플레이션의 강도이다. 한국 물가상승률도 3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다른 국가들은 우리보다 더 심각하다. 미국과 독일의 5월 물가상승률은 각각 8.6%와 7.9%로 미국은 41년 만에, 독일은 49년 만에 최고값을 경신했다. 일본만이 예외적으로 인플레이션율이 2.5%(5월)로 낮은 수준이지만, 이 역시 일본의 고질적인 디플레이션을 헤치고 물가가 서서히 상승하는 것으로 전환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수십 년 만에 강도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다보니 장년 이상을 제외한 인구 대부분에게 생전 처음 경험하는 현상이 되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준다.

인플레이션은 현재 상태도 중요하지만 향후 예상(기대인플레이션)도 각 경제주체의 소비, 저축, 투자 등에 직접 영향을 미치므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 미시간대학이 장기에 걸쳐 미국인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예상을 조사했는데, 향후 1년간 기대물가상승률이 5.4%(3월)에 이를 것이라 집계됐다. 이 역시 1981년 이후 가장 높은 값이다. 우리는 이보다는 덜하지만 한국은행이 조사한 향후 1년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3.9%(6월)로 10년 만의 최고치이다.

이번 인플레이션의 둘째 특징은 예측 실패다. 장기에 걸쳐 인플레이션이 낮게 유지되다보니 경계가 느슨해졌기 때문일까. 2021년 하반기 이후 인플레이션이 목전에 도래하고 본격화하기 시작한 이후에도 많은 경제학자가 이를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거나 무시했다. 언론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경제학자들에게 ‘어떻게 아무도 몰랐죠?’라고 질타했던 것을 인용하며, 경제학자들의 인플레이션 예측 실패를 비꼬았다.

2021년 미국 4분기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년 전에 견줘 6.7% 상승했는데, 미국 국채시장에 반영된 전문 거래인들이 3월 예측한 상승률은 2.7%에 불과했다. 인플레이션의 또 다른 척도인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상승률도 실제로는 4.5%였는데, 그보다 몇 달 전 경제전문가들의 평균 전망은 2.3%였고 심지어 미국 인플레이션과 통화정책의 최종 책임기관인 연방준비은행 의사결정자들의 예측도 2.2%에 불과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하버드대학의 경제학자 제이슨 퍼먼은 1월 미국경제학회에서 이를 지적하며 ‘왜 아무도 인플레이션 도래를 보지 못하였는가’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반성을 촉구했다.

지속적인 문제일까, 일시적인 문제일까

인플레이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셋째 논점인 정책 대응 문제와 연결되고 2021년부터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빌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하버드대학의 래리 서머스는 ‘인플레이션은 이미 지속적인 문제가 됐으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모두 인플레이션 억제를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뉴욕타임스>에서 ‘인플레이션은 팬데믹 발생과 극복 과정에서 나타난 일시적인 문제일 뿐 인플레이션을 잡겠다고 성급하게 나서는 것은 부작용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사실 서머스와 크루그먼은 최근 입장이 갈려 논쟁을 벌였지만 몇 년 전까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성급한 대응이 경기를 냉각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공유했다. 2015년 서머스는 ‘인플레이션의 눈동자가 보일 때만 금리를 올려라’라는 칼럼을 <파이낸셜타임스>에 발표했다. 칼럼 제목은 미국 독립전쟁 시기 벙커힐 전투에서 미국 사령관이 ‘적의 눈동자가 보일 정도로 가까이 오기 전까지는 쏘지 말고 총알을 아껴라’라고 한 명령에서 따왔다. 인플레이션이 멀리서 올 것처럼 보여도 섣부르게 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취지로, 크루그먼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이 표현을 그대로 썼다.

재미있는 것은 인플레이션 대책에 대한 과거의 전통은 이와 반대였다는 사실이다. 1955년 당시 미국 연준 의장 윌리엄 마틴은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면서 연준의 역할은 ‘파티가 흥청망청해지기 전에 술통을 치워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1970년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이 문장은 ‘금리 인상은 너무 늦어서는 안 돼’라는 전세계 중앙은행가들의 금과옥조가 됐다.

이후 장기에 걸쳐 낮은 인플레이션이, 심지어 일본의 디플레이션까지 지속되면서 ‘금리 인상, 너무 성급해서는 안 돼’라는 반론이 주류가 됐고, 지금 유례를 찾기 힘든 인플레이션이 다시 도래하면서 ‘너무 늦어서는 안 돼’라는 진영이 급속히 대세가 되고 있다. 논쟁에서 물러설 줄 모르는 크루그먼 역시 인플레이션에 대한 자신의 예측이 잘못됐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과도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이 경기침체를 야기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국내서도 ‘금리 인상’ 필요하다는 주장 확산

지금 국내에서도 경제학자들 사이에 급속한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국내 인플레이션을 봐도,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봐도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도 동시에 침체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경제정책 당국의 실력이다. 미국 정부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성적표가 나올 것이고, 한국에서도 지금 논쟁이 되는 지엽적인 이슈는 곧 사라지고 물가와 경기라는 메인 경기장에서 정부와 한은이 평가받을 것이다. 국민 모두를 위해 건투를 빈다.

신현호 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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