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을 포함한 공공부문은 지난 10여 년 동안 줄곧 ‘개혁’의 대상이었다. 정권 성격과 경제 환경에 따라 개혁 목표는 달랐지만, 한결같이 갈등만 부추긴 채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시도했으나 곳곳에 파열음이 인다. ‘사태’란 말이 따라붙을 정도로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 업무 담당자들의 정규직 전환은 사회적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취업난, 임금 격차, 고용 불안정 등 간단치 않은 쟁점이 떠오르고 가라앉았다. 모두가 공감할 해법은 도출되지 못했다. 외려 그런 해법이 있겠느냔 의문이 든다. 왜일까. 공기업 개혁의 필요성은 모두 인정하지만 동시에 공기업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청년 임금 깎아 일자리 늘리려 한 이명박 정부
공공부문 개혁이 핵심 국정 과제로 등장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다.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집권을 시작한 이명박 정부에서 공공부문 핵심 이슈는 ‘청년 일자리’였다. 민간기업들이 금융위기 여파로 있는 사람도 내치는 때였다. 취업에 발을 동동 구르는 청년을 품을 수 있는 곳은 공공부문밖에 없다는 게 정부 인식이었다. 청년(15~29살) 실업률이 1년 만에 7.1%에서 8.0%(2009년)로 단숨에 뛰었으니 청와대에 비상이 걸리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공공부문 신입사원 초임 삭감’이었다.
일반공기업, 준정부기관, 금융공기업 등 100여 개 공공기관이 대상이었다. 기본 개념은 ‘고통 분담’ ‘일자리 나누기’였다. 신입사원 초임을 30% 정도 깎아서 줄어든 인건비로 인턴을 뽑아 공공부문 총고용을 확대하려는 전략이었다. 금융공기업을 중심으로 공공부문의 높은 임금수준과 고용 안정성에 대한 사회적 불만 여론을 고려한 측면도 있었다. 공공기관들이 ‘신의 직장’ 혹은 ‘신도 모르는 직장’으로 불리기 시작할 때였다.
그럴듯해 보였지만 해괴한 일이었다. 같은 회사에 다른 임금 테이블을 가진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청년 실업률은 그 뒤에도 치솟았지만 ‘공공부문 신입사원 초임 삭감’ 정책이도입 2년 만에 폐기된 데는 이런 불합리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정책에 대한 반발이 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양대 노총은 반대 성명을 내긴 했으나 반대하는 시늉에 그치는 듯했다. 왜 그랬을까. 이 정책은 ‘진입한 자’와 ‘진입할 자’를 갈랐기 때문이다. 진입할 자는 조합원이 아닌 ‘취준생’(취업준비생)인 터라 정부가 부담을 느낄 대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학교 도서관이나 서울 노량진 학원가에 웅크리며 취업 공고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직되지 않은 개별적 존재다. 진입한 자도 ‘미래의 후배’를 위해 싸울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비겁하지만 공공기관 종사자와 노동조합의 이해관계를 절묘하게 비집고 들어간 책략이었다.
‘내부자들’과 충돌한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도 공공부문 개혁의 중심에 청년 일자리를 놓았다. 이명박 정부 때 자원외교 등으로 불어난 공공부문 부채를 줄이는 게 핵심 과제였으나, 일자리 관련해선 여전히 청년이 문제였다. 청년 실업률은 10% 안팎에서 오르내렸다. 박근혜 정부는 ‘임금피크제+신규 채용 확대’ 패키지 방안을 마련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퇴직 전 노동자들의 보수를 줄여 그 재원으로 청년 채용을 늘린다는 구상이다. 공기업은 호봉제를 채택하는 터라, 정년에 가까운 노동자의 임금을 절반으로 줄이면 청년 2명을 채용할 여력이 생긴다. 정부는 ‘부모가 자녀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홍보 포인트를 잡았다. 청년의 보수를 깎아 청년을 채용하려 한 이명박 정부 방안과 비교하면 정공법이라고 할 만하다.
이 방안은 추진 단계부터 공공부문 노조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신규 채용 간의 상관관계는 없다’는 터무니없는 논리까지 횡행했다. 임금피크제로 확보한 여력을 신규 채용에 쓰는 ‘패키지’ 방안은 임금피크제 도입과 고용 관계를 따져본 과거 연구와는 전제조건이 달랐기 때문이다. 짐작하다시피 ‘진입한 자’의 노동조건에 변화를 불러오기에 반발이 거세졌다. 이 정책은 결국 흐지부지됐다. 이명박 정부는 진입한 자를 회피했고 박근혜 정부는 진입한 자에 맞서려다 밀려나는 수순을 밟았다.
문재인 정부는 ‘진입한 자’와 취준생의 충돌은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공공부문 개혁이나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 차원에서 추진된 방안이 아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위해 공공부문이 앞장서야 한다는 관점에서 출발했다. 과거 정부와 시작점이 달랐다. 더구나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화는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더불어 20년 가까이 진보세력이 지지해온 원칙이다. 당연히 해야 할 조처를 한 것뿐인데 느닷없는 역풍에 맞닥뜨렸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더라도 정규직의 근로조건엔 변화가 없다’는 사려 깊지 않은 해명에 정부의 당혹감이 읽힌다. 총인건비 관리에 묶인 공기업의 현실을 아는 ‘진입한 자’들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어서다. 진입한 자들도 영어 점수, 연수 경험, 출신 대학 등의 스펙을 열거하며 ‘보상 심리’를 여과 없이 분출한다.
과거 정부와 형세가 다른 이번 충돌은 자연스레 고용시장에서 공기업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 어쩌면 그 ‘위치’에 빛깔 다른 개혁 방안이 좌초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공기업은 민간기업에 견줘 고용 안정성과 임금수준이 높다.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에 희귀한 일자리다. 이런 안정성과 임금의 원천은 직원들의 노동이 아니라 독점적 사업자라는 공기업 특유의 지위에 있다. ‘지대 이익’이 직원들에게 배분되는 모양새다. 일은 쉽고 보상은 달콤하니 입사 재수·삼수생이 많고 과잉 스펙자가 넘쳐난다. 재수·삼수·고스펙은 누구나 누리기 어려운 특권이다.
예상 못한 반발과 마주한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는 의도치 않게 공공부문 일자리의 근본 모순과 맞닥뜨렸다. 비정규직 문제 해소나 청년 일자리 창출이란 차원에서 한발 더 들어갈 계기가 생겼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일자리’, 그러나 ‘특수한 몇 명만 누리는 일자리’ ‘보상의 원천이 노동이 아니라 지대에 있는 일자리’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가 던지는 질문이다.
김경락 <한겨레>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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