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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의 각주 경제

첨단기술과 신산업의 ‘낮과 밤’

‘구산업’ 방식으로 인공지능·신재생에너지 등에 목소리 높이다

제1346호
등록 : 2021-01-11 21:48 수정 : 2021-01-1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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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1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서 열린 ‘판교 자율주행 모빌리티쇼’에 참여한 자율주행차가 거리를 달리고 있다. 류우종 기자

2020년 봄 <한겨레21>에서 3주 간격으로 연재되는 짧지 않은 글을 청탁하며 알려준 고정 칼럼명은 ‘각주 경제’였다. 16년간의 취재기자 생활을 접고 <한겨레> 산업팀 데스크 일을 보게 된 터라 무슨 ‘뉴스’(새소식)를 쓸 수 있겠냐며 손사래를 치다가 덥석 제안을 문 건, 칼럼명과 콘셉트 때문이었다. 뉴스는 쓰지 못해도 뉴스와 뉴스 사이에 묻힌, 뉴스의 홍수 속에 가려진 이야기는 쓸 수 있겠다 싶었다. 3주란 짧지도 길지도 않은 호흡도 안성맞춤이었다.

그간 쓴 11편의 글이 <한겨레21>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갔는지 모르겠다. 부족하지만 챙겨 읽어주신 독자가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마지막 회는 필자의 고백 내지 자아비판이 깃든 주제를 다루려 한다. 각주를 달고 싶은 주제였으나 그럴 정도의 내공이 되지 않아 다루지 못한 주제들이다.

① 신산업의 용틀임
2020년을 관통하는 열쇳말이 ‘코로나19’라는 데 이견은 적을 것이다. 경제 영역도 마찬가지다. 뒤집어 생각해봤다. 코로나19가 없었다면 경제 분야 열쇳말 1위는 무엇이었을까? 다수는 ‘신산업’을 꼽을 듯싶다. 필자도 그렇다. 전기자동차·배터리·빅데이터·인공지능·바이오·신재생에너지·플랫폼 등 관련 기술과 산업, 금융시장이 덩실 춤을 췄다. 코로나19라는 암울한 현실 탓에 각 영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기술과 이로 무장한 기업에 소비자와 투자자는 열광했다. 신기술 영역 기업의 시가총액이 두세 배는 너끈히 불어났다.

신기술이 암담한 현실을 바꿔낼 ‘희망’의 지위를 꿰찬 한 해였다. 정부도 ‘디지털뉴딜’ ‘한국판 뉴딜’ ‘그린뉴딜’이란 그럴싸한 문패를 달고 신기술·산업 육성의 고삐를 틀어쥐었다. 그러다보니 신기술에 가려진 이면을 짚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필자 역시 이런 전개에 정색하고 토 다는 글을 충분히 쓰지 못했다. ‘각주 경제’에서 전혀 다루지 못했다.

자율주행차가 과속하면 과태료는 누가 내야 하나
2021년 1월5일치 <한겨레>에 자율주행차와 관련 법·제도를 다룬 기획 기사가 실렸다. ‘자율주행차가 과속했을 때 과태료는 누가 낼까?’란 단순한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자율주행 기술에 앞선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표준은커녕 공감대도 형성돼 있지 않았다.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 산업에 쏠린 드높은 관심에 견주면 가장 기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어느 국가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각국의 정부나 국회가 산업 육성과 소비자 보호라는 전통적 딜레마에 빠져 있기 때문이리라. 과태료를 내야 할 주체를 자동차 제조사로 둔다면 해당 산업이 쉬 발전하기 어려울 듯하고, 반대로 운전자(인간)에게 과태료를 부담케 한다면 형용모순(운전자인 듯 운전자 아닌 운전자 같은 인간)에 빠지는 모양새가 된다. 운전은 인공지능이 했는데 운전석에 앉아만 있었던 죄로 과태료를 내야 하는 상황을 납득할 이는 드물 것이다. 산업사를 살펴보면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하고 성장 가능성이 큰 영역에서는 ‘경쟁적인 (친기업적) 규제 완화’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상당한 희생이 발생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② 기술 디스토피아와 우리의 현주소
신산업 모두는 이런 딜레마에 직면했다. 흩어진 데이터를 한데 모아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빅데이터’ 산업은 어떤가. 데이터 수집, 관리, 처리, 가공 과정에서 얼마든지 개인의 기본권이 훼손될 수 있다. 2014년 신용카드사의 고객정보 대량 유출 사고처럼 우리 사회는 빅데이터는커녕 정보의 기본 관리에서도 허술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빅데이터에서 비롯된 수익의 공정한 배분도 언젠가는 크게 불거질 사안이다.

신재생에너지도 그렇다. 한국 정부를 비롯한 세계는 끔찍한 기후 위기를 막자는 대의 속에 탈탄소 사회로 발걸음을 떼고 있다. 이런 방향에는 토를 달기 어렵지만 적정 전환 속도만큼은 정답을 찾기 어렵다. 특히 전환 비용의 배분은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이 과제를 논의할 때 유념해야 할 부분은,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그 속에서 기회를 모색해가는 주체는 언제나 한 사회의 강자였다는 사실이다. 약자는 발전의 희생물이거나 고작 강자가 나눠주는 떡고물을 받아먹는 데 만족해야 하는 존재였다. 신산업 시대에도 적자생존 원리가 지배한다면, 기술은 진보했을지언정 문명의 진보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tvN 드라마 <낮과 밤>은 신기술의 음울한 뒷배경을 노래한다. 노화를 막고 건강을 유지하는 신약 개발에 희생된 어린아이 중 생존자 몇 명이 살아남아 복수에 나서는 스릴러물이다. 김창완이 연기한 개발자 공일도 박사는 어린아이들을 ‘실험체’라고 말한다. 인격이 거세된 사람, 다시 말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윤리의 파괴다. 인류의 거대한 발전을 위해선 희생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호통친다. 시청자는 안다. 공일도 박사의 신념은 허위라는 것을, 신약 개발의 귀결은 공 박사가 복무하는 ‘재단’의 이익이라는 것을. 거대한 거짓말은 언제나 그럴듯한 ‘포장된 공익’을 양념으로 쓴다. 신기술·산업의 현장이 드라마보다 덜 나쁘다고 볼 근거는 없다.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지적했다고 해고하는 게 첨단 기술기업의 현주소다.

사려 깊은 정부, 뛰어난 전문가, 성숙한 시민은?
신산업이 공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발전해가려면 사려 깊은 정부(국회 포함)와 뛰어난 전문가 집단, 성숙한 시민사회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현주소는 어떤가. 대통령이 청사진을 던지고 관계 부처가 일사불란하게 정책을 내놓는 장면이 2020년 여러 차례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기업을 찾아 신산업의 기수 행세를 하는 정치인, 규제를 강화할라치면 무턱대고 ‘발목잡기 행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도 여럿이다. 신산업을 노래하나 그 방식은 흡사 구산업 시대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이런 장면이 누적되면 언젠가 누군가는 ‘각주 경제 시즌2’에서 ‘신산업을 향한 조사(弔詞)’를 쓸지 모르겠다.

김경락 <한겨레>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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