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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의 각주 경제

경제정책방향 발표, 이젠 접자

아전인수식 경제상황 평가에 정책 제시도 재탕 나열에 그쳐

제1343호
등록 : 2020-12-19 23:14 수정 : 2020-12-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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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2월17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2021년 경제정책방향을 보고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에도 어김없이 정부가 ‘경제정책방향’을 내놨다. 재정·금융·산업·복지 등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줄 정책의 큰 줄기를 담았다. 정부는 매년 12월과 이듬해 여름께 연간 기준 두 번 발표한다. 여름에 나오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6개월여 전 내놓은 경제정책방향을 부분 수정한다는 의미에서 ‘수정 경제정책방향’이라고도 부른다. 두껍다. 상세 자료까지 포함하면 A4용지로 150쪽이 훌쩍 넘는다. 부처별 브리핑까지 더하면 기자 설명회도 10회 내외에 이른다. 만드는 이(공무원)의 수고가 적잖다.

정부 12월17일 발표에 반응이 미지근한 이유
수년 전에는 경제정책방향 발표 한 달 보름 전부터 ‘이런 내용이 경제정책방향에 담길 예정’이란 식의 보도와 ‘확정된 바 없다’ ‘보도에 신중해달라’는 정부의 해명 보도자료가 하루가 멀다고 나왔다. 여론을 떠보려는 정부의 욕망과 언론사들의 단독기사 경쟁이 빚은 촌극이나, 그만큼 경제정책방향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주목도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발표 전에는 자료를 전자파일로 제공하지 않는 터라 야당이나 시민단체, 전문가그룹에 속한 인사들은 정부세종청사로 내려와 자료 복사를 위해 줄 서는 일도 흔하다(정부는 기자들에게 보도 유예 기한(엠바고)을 설정해 자료를 먼저 준다). 기자들도 전문가 논평을 받기 위해 자료를 사진으로 찍어 전송한다고 부산을 떤다. 만든 이만큼이나 이를 소개·평가하는 이들의 수고를 요구하는 게 경제정책방향이다.

오늘날에는 이런 수고가 확연히 줄었다. 만드는 사람의 수고가 얼마나 덜어졌는지 단언하기 어렵지만,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 태도는 분명 바뀌었다. 우선 보도 경쟁은 눈에 띄게 줄었다. 공식 발표 뒤 하루나 이틀 정도 주요 뉴스로 다루는 게 고작이다. 만든 사람에겐 힘 빠지는 상황이나, 사실 그들 중에서도 그럴 만하다는 반응이 적잖다. 왜 그럴까. 12월17일 발표한 ‘2021년 경제정책방향’에도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이 줄어든 이유가 담겨 있다.

① 자화자찬

경제정책방향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듬해 경제 운용 계획이 담긴다. 계획이란 현재(혹은 과거)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토대로 한 반성에서 도출해야 생명력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올해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를 앞에 세우고 이듬해 정책 계획과 거시경제 전망은 뒤에 놓는다.

‘2020년 경제정책 평가’ 마지막 부분에 총평은 이렇게 적혀 있다. “2020년은 K-방역체계 구축하에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 대응을 통해 코로나 충격에 따른 경제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우리 경제의 글로벌 위상을 제고(했다).” 정책 대응이 매우 훌륭했다는 평가인 셈인데, 이런 뉘앙스는 자료 곳곳에 묻어 있다. ‘위기에 강한 경제를 다시 한번 입증’ ‘주요 선진국 대비 가장 빠르게 회복 중’ ‘세계 7위 수출국의 위상 공고화’ ‘체질 개선 노력도 착실히 진전’ ‘소득 격차 최대한 완충’….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질문이 무색할 정도의 평가다.

숨은 부실·부동산 난맥 빠진 정부 발표
올해 경제는 어떤 모습이었나. 하반기 수출 회복이 가파르게 진행되면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인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이 심화했다. 수출 부문은 돈이 넘치는데 내수 부문은 극심한 몸살을 앓았다는 뜻이다. 현재진행형이다. 대규모 유동성 공급은 가계와 정부의 부채 증가란 부작용을 낳았다. 시스템 리스크 확대다. ‘숨은 부실’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기업’도 부쩍 늘었다. 시장의 신진대사 약화다. 자산시장과 실물경제 간 괴리도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소한 부동산 정책 난맥상과 그 파장은 올해 경제정책 평가에 ‘한 줄’은 들어갔어야 한다.

② 우선순위·신선도 떨어지는 백화점식 정책 나열

여러 경제정책을 다루는 경제정책방향의 특성상 간명하기는 어렵다. 태생적으로 정책 ‘나열’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점은 아쉽다. 최소 3개년 정도 경제정책방향을 읽어온 이라면 딱히 눈에 들어오는 정책은 드물다고 느낄 것이다. 집권 마지막 해 경제정책방향인 터라 신선도 부족은 더하다.

맨 앞머리에 자리잡은 ‘거시정책’ 장에는 재정 조기 집행이 1번 과제로 제시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내외 경제가 저성장 늪에 빠진 이후 경제정책방향에 조기 집행 언급이 빠진 경우는 드물다. 내수 활성화 방안을 다룬 장에선 신용카드 사용액에 대한 소득공제 확대와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가 주요 과제로 나온다. 온누리상품권 확대나 공공자본과 민간자본의 공동 투자도 매년 나오는 단골 메뉴다. 비약하면 숫자와 시기만 다를 뿐 테마는 같다. 개별 부처가 연초 업무계획에만 담아도 될 작은 정책도 많다. 가짓수만 많고 먹고 싶은 반찬은 없는 밥상 같다. ‘국가 데이터 정책을 총괄하는 민관 합동 데이터 거버넌스 구축’처럼 부처 간 협의도 끝나지 않은 설익은 정책과제도 경제정책방향에 담겨 있다.

우선순위가 드러나지 않는 점은 좀더 근본적인 문제다. 소분류 기준으로 제시된 정책과제는 모두 68개다. 무엇에 더 많은 무게를 두는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나열’이다. 경제정책방향이 공급자 중심으로 작성되기 때문이다. 부처별로 정책 아이디어를 제출하고, 기획재정부가 이를 취합조정해서 묶어 낸다. 정부 내에선 민주적 과정(?)일 수는 있어도 정책 수요자가 자료를 받아들면 어리둥절해지는 이유다. 특히 현 정부 들어 큰 그림을 그리고 부처별 자원을 거기에 맞게 끌어내야 할 기획재정부의 위상이 약화하고 역할도 줄어들면서 우선순위 실종 현상은 더 짙어졌다.

경제에서 정부 영향력 약화… 선진국에선 안해
③ 관성에서 벗어나야

이런 경제정책방향을 앞으로도 이어가는 게 바람직한지 의문도 든다. 경제정책방향은 사실 수십 년 전 개발경제 시대 산물이다. 경제의 큰 흐름을 정부가 좌우할 수 있을 때 경제정책방향에도 힘이 실렸다. 한국 경제가 고도화되는 과정에 시장의 힘은 커지고 정부 영향력은 약화했다.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서 한국식 경제정책방향 발표가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정부(혹은 공공부문) 고유 영역인 예산·조세 정책과 통화 정책의 소통, 좀더 정확한 거시경제 전망과 분석에 집중하면 어떨까. 이미 세입·세출 예산안에 대한 관심이 경제정책방향을 압도한 지 오래됐다.

김경락 <한겨레>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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