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범위를 놓고 집권여당과 이견을 보이다 여당 지지층의 반발을 샀다. 행정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이 부각되며 자칫 ‘적폐’로 경제 선임 부처가 몰릴 뻔도 했다. 홍 부총리와 그가 이끄는 재정 당국은 부당한 여론몰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반발의 근저에는 수년 동안 재정 당국이 보인 재정 건전성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그에 따른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과도한 집착’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그간 한국의 재정 운용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재정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달라진 눈높이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어서다. 또 국내 경기 흐름과 조응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흔적이 도처에 널려 있다. 다만 필자는 기재부와 다를 바 없이 건전성 집착을 보이던 집권여당이 갑자기 돌변한 배경과 변화된 입장의 지속성에 의구심이 있다. 이 글은 재정의 또 다른 축인 세수를 다루지만, 글을 쓰는 동기는 이런 의문과 맞닿아 있다.
여당의 돌변은 지속될까
예산과 조세를 아울러 가리키는 재정은 대체로 한 해를 주기로 움직인다. 그 시작은 매년 5월 열리는 국가재정전략회의다. 올해도 곧 열릴 이 회의에서 전반적인 재정 전략을 점검하고 넉 달 뒤 국회에 제출할 다음 연도 세입·세출 예산안과 5년 시계의 중기 재정계획의 밑그림을 그린다. 참여정부 때 도입된 이 회의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자리이며, 각 부처 장관과 청와대 주요 참모는 물론 여당 인사와 외부 전문가들까지 두루 참여한다. 자리의 무게감이 그만큼 크다.
올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주제는 조세 수입 등 세수 기반 확충이 되어야 할 듯싶다. 매년 이 주제는 포함되지만 올해에는 좀더 무게를 두고 현실성 있는 토론과 전략 수립을 해야 할 상황이다. 올해 예산을 편성하고 확정했던 지난해 말에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코로나19 충격이 일어난 터라,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 예기치 못한 재정지출이 크게 늘었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사회안전망을 두껍게 하고 경제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재정 지원 같은 오래된 숙제도 풀어야 한다. 중기적 시계 아래 세수 확충 고민이 절실한 이유다. 당면 현실을 요약하면 이렇다.
① 세입 경정을 더는 미루기 어렵다. 경정은 ‘고쳐쓴다’는 의미다. 예산은 세수 전망을 토대로 지출 계획을 담은 것이다. 만약 세수 전망이 경제 상황 변화로 달라진다면 이를 반영해 그 전망을 바꾸고 국채 발행 한도를 늘리고 지출 계획도 고쳐야 한다. 세입 경정을 하지 않으면 연말 세수 부족으로 예정된 지출 자체를 줄여야 한다. 정부는 올해 들어 두 번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하지만 세출 경정에만 무게를 둔 터라 세입 고쳐쓰기는 3조원 수준에 머물렀다.(이마저 국회 통과 과정에서 8천억원으로 줄었다.) 경기 상황에 따라 세수 실적은 요동치기 마련인데 재정 당국은 코로나19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 추경을 하면서도 정작 세입 부문은 건드리지 않았다. 연간 세수 실적을 가늠하기 어려운 연초라는 이유를 들었으나 ‘추계’가 어렵다고 해서 없던 세수가 생겨나지는 않는다.
두 번의 추경이 메우지 않은 것
3월까지 세수 실적을 보면 세입 경정의 필요성은 뚜렷하다. 3월 1차 추경을 하면서 정부는 올해 총수입을 481조6천억원으로 추산했다. 1~3월 들어온 수입은 119조5천억원이었다. 세수진도율(실적을 총수입 전망으로 나눈 백분율)을 따져보면 24.8%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6%포인트 낮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1~3월 수입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121조원)보다 1조5천억원 적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총수입(481조6천억원)이 지난해(476조4천억원)보다 5조2천억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는데, 3월 현재 실적치는 오히려 줄었다. 세금과 보험료가 애초 예상은 물론 지난해보다 안 걷힌다는 뜻이다. 이런 부진은 코로나19로 법인과 개인의 소득과 함께 소비도 급감한 데 따른 결과다. 코로나19 파장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에서 연간 기준 예산 대비 세수 부족액은 수십조원에 이를 수 있고, 그것은 세입 경정용 추경 규모로 이어지게 된다. 경정을 하지 않으면 연말께 돈이 없어서 정해진 예산 사업을 못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박근혜 정부 첫해(2013년)에 딱 그랬다.
② 정부가 3차 추경을 내며 세출을 20조~30조원 증액할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실업자 급증으로 바닥을 드러내는 고용보험기금을 메워야 하며, 개인과 기업의 줄어든 소득을 채우고 파산을 막으려는 보조금 지급 수요가 크다고 봐서다. 여기에 얹어 ‘한국판 뉴딜’로 불리는 경기부양을 위한 재원도 필요하다. 소요 재원 규모가 얼마일지는 현재 판단하기 이르지만, 여하튼 상당한 규모의 재원 조달이 연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①세입 경정까지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의 ‘세출 구조조정’(기존 예산 삭감)을 한다고 해도 3차 추경 규모는 40조원을 훌쩍 넘을 수 있다.
③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내년 세수 사정도 무척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3대 국세 세목 중 하나인 법인세는 통상 한 해 전 소득을 기준으로 과세된다. 올해 주요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크게 줄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총수입 실적치는 정부 전망치를 크게 밑돌 공산이 높다.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정부의 ‘2019~2023 국가재정운용계획’상 내년 총수입 전망은 505조6천억원이었다. 이 중 국세수입 전망은 304조9천억원. 올해 경기 대응을 위한 추가 재정지출에 따른 필요 재원(①+②)과 내년 세수 전망 부족분(③)을 더하면, 확충해야 할 세수 규모는 더 불어난다.
사회연대 앞세운 ‘임시 세제’
단기적으로 필요한 재원은 국채를 팔아 조달할 수 있다. 외려 지금 당장 세금과 보험료를 더 걷게 되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경제가 얼어붙을 때는 ‘감세와 예산 확대’가 좀더 바람직한 재정 운용이기도 하다. 다른 나라에 견줘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상당히 낮다는 점도, 우리의 추가 재정 여력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중기 세수 기반 확충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특히 코로나19 충격은 특정 계층과 업종에 집중 타격을 주는 위기라는 점에서 이전 경제 위기와는 양상이 다르다. 그런 점에서 세수 확충의 또 다른 기회가 엿보인다. 이와 관련해 4월 국제통화기금(IMF)의 세수와 관련한 제안인 ‘사회연대적 세수 전략’은 참고할 만하다. 코로나19로 특정 계층과 업종에 몰아친 충격을 줄이는 데 필요한 재원을 상대적으로 충격이 덜했던 계층과 업종에서 조달하자는 게 핵심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를 추가로 걷고 종합부동산세나 재산세 같은 자산세에 대한 증세를 제시한다. 기존 소득세율이나 공제를 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코로나19용 ‘임시 세제’를 만들어 이들 계층에 추가 세수(Surcharge)를 확보하라는 것이다.
정부는 물론 원내 177석을 확보한 집권여당도 세수 기반 확충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에 참여하길 바란다.
김경락 <한겨레>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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