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누가 올리거나 내릴까? 아니 어떤 정부가 올리거나 내릴까? 적잖은 사람이 ‘진보 성향’ 정부 때 증세가 이뤄지고 ‘보수 성향’ 정부 때는 감세 조처가 단행된다고 짐작한다. 아마 1980년대 서구사회에서 신자유주의 성향 정부가 들어서면서 취한 공격적 감세 정책이 기억에 깊이 각인돼서일까. 세금을 둘러싼 여론 지형에서도 보수 성향 사람이 감세 필요성을, 진보 성향 사람은 증세를 주장하는 경향성은 뚜렷하다.
7월22일 정부가 내놓은 세법 개정안에 대한 여론 반응도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개정안에는 소득세제 개편도 포함됐는데,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가 주된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장 높은 세율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을 연소득(소득공제액을 제외한 과표 소득 기준) 5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하나 더 만들고, 최고 세율도 42%에서 45%로 3%포인트 끌어올렸다. 이 개정안이 2020년 말 국회에서 확정되면 2021년부터 연소득 10억원 이상인 사람은 올해보다 더 세부담이 늘어난다. 예를 들면 연소득 30억원인 소득자의 세부담은 이번 개편으로 12억2400만원에서 12억8460만원으로 6천만원 남짓 커진다. 이 개편안은 함께 발표된 종합부동산세나 주식 매매 차익 과세 강화 조처와 버무려지며 ‘진보 정부의 부자 증세’ 인식이 좀더 강화됐다.
MB도 최고 세율 3%p 상향, 과표 구간 신설
이번 개편에 현 정부의 이념 성향이 얼마나 반영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하지만 부자 증세는 현 정부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적어도 보수와 진보 성향 정권이 번갈아가며 들어섰던 지난 10년여간은 그랬다.
우선 2008~2012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부터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는 집권 기간인 2008년과 2009년, 2011년 소득세율과 과표를 조정했다. 세 번의 개편 중 마지막 2011년에 부자 증세를 단행했다. 최고 세율을 3%포인트 끌어올리고(35→38%) 해당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구간(3억원 초과)을 신설했다. 문재인 정부가 고소득자 증세를 한 방식과 동일하다. 그렇다고 앞선 두 번의 개편에서 고소득자 감세를 한 것도 아니니, 고소득자 소득세율에 관한 한 이명박 정부를 ‘감세 정부’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중간 과표(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 소득자에 대한 세율은 26→24%로 떨어뜨렸다. 정확한 개념은 아니지만 중산층에만 감세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명박 정부에 앞서 집권한 진보 성향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2007년) 세제 개편에서 과표 상향 조정(8천만원 초과→8800만원 초과)으로 부자 감세를 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 말기의 부자 감세 흐름을 멈추고 임기 말에는 부자 증세로 돌아섰으며, 중산층에만 세부담을 줄이는 소득세 개편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때는 최고 세율 적용 과표 소득 낮춰
박근혜 정부(2013~2016년)는 전 정부 말기에 시작한 부자 증세 흐름을 집권 기간 쭉 이어갔다. 지속한 것만 아니라 더 적극적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첫해 세제 개편에서 최고 세율(38%)이 적용되는 과표 소득을 낮췄다. 종전에는 연소득 3억원이 넘을 때만 38% 세율을 적용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1억5천만원 넘는 소득자까지 해당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1억5천만원~3억원을 버는 소득자의 세부담이 커진 것이다. 탄핵으로 임기를 중도에 마친 터라 마지막 세제 개편이었던 2016년에도 다시 한번 부자 증세를 단행했다. ‘5억원 초과’ 과표 구간을 하나 더 만들어, 해당 소득자에게 40% 세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보다 부자 증세를 적극적으로 한 대신, 중산층과 서민에 해당하는 계층에 감세하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박근혜 정부의 부자 증세는 과표 조정과 세율 인상에만 그친 게 아니었다. 강력한 ‘한 방’을 던졌다. 교육비·의료비에 들어간 비용을 과표 소득에서 빼주던 소득공제 항목을 대거 산출세액에서 세금을 깎아주는 세액공제로 바꾸었다. 교육비나 의료비 소득공제는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많이 받아가던 항목이라, 고소득층 세부담을 크게 높이는 조처였다. 물론 정부는 ‘세제 합리화’라고 표현했지만, 공제제도 개편은 부유층의 실질 세부담을 큰 폭으로 끌어올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소득세에 관한 한 2008년 이후 두 차례 집권한 보수 정부는 강도 차이는 있지만 모두 ‘부자 증세’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첫해 개편에서 5억원 초과 소득자에게 적용한 최고 세율을 2%포인트(40→42%) 끌어올리고 과표 구간도 ‘3억원 초과~5억원 이하’를 새로 만들어 40% 세율을 적용하는 부자 증세를 단행했지만, 이는 진보 성향 정부여서라기보다 지난 10여 년간 이어진 세제 개편 방향의 연장전으로 평가하는 게 사실에 부합한다.
5억원 이상 실효세율은 평균의 5배 증가
전반적인 세제 개편 흐름은 소득자의 실질 세부담, 즉 실효세율을 통해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실효세율은 결정세액을 소득자가 받은 급여 중 비과세소득을 뺀 총급여(과세 대상 근로소득)로 나눈 비율인데, 소득자 입장에선 실질 세부담이라고 할 수 있다. 각 연도 국세통계연보 자료를 토대로 근로소득자의 평균 실효세율 변화를 살펴보면, 2009년(신고연도 기준) 4.65%에서 2011년 3.93%로 낮아진 이후 꾸준히 올라 2019년 현재 5.65%다. 10년 새 실효세율이 1%포인트 뛴 셈이다. 이에 견줘 고소득자의 실효세율은 해당 기간에 가파르게 올랐다. 총급여 5억원이 넘는 소득자들의 평균 실효세율은 2009년 28.72%에서 2013년 29.85%, 2015년 31.83%, 2019년 34.06%로 10년 새 5.34%포인트 뛰어 상승 폭이 전체 평균과 비교해 5배가 넘는다. 결국 진보는 증세, 보수는 감세라는 통설은 말 그대로 ‘설’(이야기)이라는 게 확인된다.
왜 그럴까. 세법 손질이 자주 되는 이유에서 해답의 실마리가 잡힌다. 현실에서 세법은 이념보다 당대의 경제 상황에 많이 영향받는다. 다시 말해, 경기가 나쁠 때와 좋을 때 재정 전략 자체가 바뀐다. 경기가 나쁘면 재정이 구원투수로 나설 필요가 커진다. 나랏빚을 늘려 재정 소요를 충당하는 게 원칙이지만 재정 당국은 납세자들의 담세력을 따져서 세법을 손질한다. 세금 낼 여력이 큰 쪽에 세부담을 늘려 세수를 확보함으로써 재정 적자 폭을 줄이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기가 상시화된 지난 10년의 거시경제 환경은 재정 당국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주된 원인이다. 거시경제 환경은 정권의 이념 성격에 따라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변수가 아니다.
또 다른 실마리는, 고령화 속도가 빨라진 인구구조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인구구조 변화도 정권의 이념적 성격과는 무관한 변수다. 고령인구가 많아지면 그만큼 복지 확대 필요성이 커진다. 또 제도를 바꾸지 않아도 고령인구 증가 자체로만 재정 투입량이 늘어나게 된다. 박근혜 정부 때 기초연금이 강화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런 변화는 장기적으로 이뤄지는 터라, 이른바 ‘재정 고갈’ ‘국가 신인도 하락’을 피하려면 틈틈이 재정을 비축해야 한다. 단기로 적자를 키우거나 줄이더라도, 중장기로는 꾸준한 세수 확보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오늘날 나라 곳간의 숙명이다. 진보·보수 정부 모두가 안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고.
고소득자 세부담 증가는 정부 바뀌어도 ‘지속’
여러 세금 가운데 왜 하필 소득세냐는 의문이 생길 법하다. 일단 세금 종류는 많지만 세수 비중이 큰 세목은 세 개다.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종류가 달라서 성격도 다르다. 부가가치세는 소득수준에 따라 세율이 달라지는 누진세율이 아니라서 역진성 논란에 빠지기 쉽고 조세 저항이 클 수 있다. 1977년 첫 도입 이후 40년 남짓 세율(10%)에 변화가 없는 데는 이런 사정이 있다. 법인세는 국제 조세 측면이 있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세율이 낮은 편이 아니다. 반면 소득세는 실효세율이 주요 선진국 가운데 낮은 편에 속해 인상 여력이 큰 세목이다. 특히 양극화 심화로 나타난 사회 불만과 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고소득자 증세에 우호적인 환경이 돼왔다. 세수를 확보해야 하는 재정 당국으로선, 수억원의 연소득을 올리는 근로·종합소득자를 돈 나올 곳으로 눈독 들이기에 십상이다. 이 세 가지 이유는 앞으로도 유효하기에 소득세제 개편 방향을 짐작할 수 있다. 고소득자 세부담 증가 전략은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유지될 것이다. 오히려 쟁점은 부자 증세에만 머무를지, 아니면 다른 계층에도 세부담을 늘리는 보편증세로 갈지에 있다.
김경락 <한겨레> 기자 sp96@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