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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아시아나, 이런 합병은 없었다

통상적 틀 벗어난 구조조정 ‘키메라 딜’, 공적 자금 투입 적고 고용 유지 확약했지만 “총수 일가 지원” 우려
등록 2020-11-21 14:29 수정 2020-11-23 01:15
2020년 11월18일 인천국제공항에 세워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2020년 11월18일 인천국제공항에 세워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연합뉴스

갈수록 부실의 늪에 빨려가는 아시아나항공 처리법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2020년 9월 HDC현대산업개발과의 매각 거래 계약이 무산된 뒤, 새 활로를 모색하던 주채권은행 산업은행이 11월16일 내놓은 해법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다. 시장에선 예측하지 못한 수로 평가받는 이 방안이 발표된 뒤 이해관계자나 시장 참가자, 시민단체는 물론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반발한다. 산업은행이 뽑아든 선택지가 발표 직후부터 후폭풍에 휘말린 모양새다.

“키메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이한 짐승) 같은 딜(Deal·거래).” 자본시장에서 20년 남짓 펀드매니저 일을 해온 한 전문가가 페이스북에 남긴 촌평이다. 긍정과 부정은 둘째 치고 통상적인 방식과는 거리가 있는 괴이한 방안이라는 뜻이다.

산은과 주주가 내는 인수 자금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큰 틀에서 다음 같은 과정을 거친다. ①부실기업에 돈을 빌려준 채권금융기관(채권단)은 해당 기업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MOU)을 맺는다. 일정 기한 내에 재무구조 정상화 계획을 받는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경고장을 준다는 성격이 짙다. 이 경고장이 먹히지 않으면 본격적인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에 들어간다. 이를 위해 ②채권단은 출자전환(대출을 지분과 교환)으로 해당 기업의 주주가 된다. 훈수만 두다 직접 경영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③기존 주주, 특히 대주주 보유 지분 감자와 사재 출연이 병행되기도 한다.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취지다. ④마지막이 투자금 회수 단계다. 구조조정으로 군살을 빼서 경영을 정상화하고 기업 가치를 끌어올린 뒤 보유 지분을 제3자에게 매각한다. 최근 20여 년간 굵직한 구조조정 중 이 틀을 벗어난 사례는 드물다.

또 다른 방식도 있다. ‘출자전환→ 구조조정→ 경영 정상화’ 과정을 건너뛰고 ⑤바로 매각하는 방식이다. 기존 경영진과 대주주의 반발 등 험난한 과정을 돌파해야 하는 구조조정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매각이 되기에 채권단은 힘을 덜 쓰고 채권을 회수할 수 있다. 당연히 이 방식엔 부실기업을 사겠다는 매수자의 존재가 필요조건이다.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처리를 위해 처음 뽑아든 카드도 이 방안이었다. 현재 평가받는 몸값(1조8천억원)보다 1조원 가까이 더 많은 2조5천억원을 주고 아시아나항공을 사겠다는 매수 의향자(HDC현대산업개발 컨소시엄)가 있었다. 9월 이 방안이 최종 무산된 이유는, 매수 의향자가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제표를 의심해서였다. 몸값이 부풀려졌다고 본 것이다.

최근 산업은행이 발표한 방안도 언뜻 ⑤방식에 가까워 보인다. 구조조정 없이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을 넘기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매각 세부 구조를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에 산업은행 참여(8천억원)→대한항공의 주주 배정 유상증자(2조5천억원)→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할 신주와 영구채권의 대한항공 매입(1조8천억원) 순서를 거친다. 복잡해 보이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이 결국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의 일반 주주 지갑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경영권 다툼 조원태 회장 우호지분 획득

한진칼이나 한진칼 대주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으로선 무자본 인수·합병(M&A)에 가깝다. 여기에 조 회장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지분 10%가량을 확보하는 국책은행을 든든한 우호 세력으로 얻는다. 조 회장은 1년 남짓 사모펀드 KCGI와 반도건설 등으로 구성된 주주연합과 경영권을 놓고 치열한 지분 확보 경쟁을 해왔다. 아시아나항공을 품는 데 이어 탄탄한 경영권까지 확보하는 셈이다.

이런 모양새가 나온 이유에 대해 산업은행과 정부의 설명은 세 갈래다. 먼저 가장 적은 비용을 들여 최대 효과를 거두는 방안이라고 말한다. 실제 세금을 종잣돈으로 하는 공공자금은 8천억원(산업은행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참여)만 투입한다. 부실이 누적된 아시아나항공을 산업은행이 계속 떠안을 경우 8천억원 훌쩍 넘는 자금이 들어갈 것은 분명하다.

둘째는 고용 유지다. 산업은행이 독자적으로 아시아나항공 구조조정에 착수했다가 생길 수 있는 인원 감축이나 구조조정 실패에 따른 청산 절차를 밟으면 실업자가 양산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정부는 판단한다. 실제 산업은행은 8천억원을 한진칼에 지원하는 대가로 조원태 회장 쪽에 ‘고용 유지’ 각서를 받았다. 조 회장도 11월18일 기자들과 만나 “모든 (아시아나항공) 직원을 가족으로 맞이해 품고 함께하겠다”고 확언했다. 끝으로 자체 자금으로 인수하기엔 대한항공 재무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말한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부채비율이 1천% 웃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처음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 매각 방안을 가져왔을 때 나 역시 의아한 방안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심각한 고용 위축 상황과 대한항공의 높은 부채비율, 두 회사의 통합에 따른 1국 1국적기 체제에서 기대하는 사업적 효과를 (산업은행의) 설명을 들으니 수긍이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방안에 대한 호응도는 높지 않다. 금융 당국을 감사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의원 여럿이 공동성명을 내어 우려를 드러냈다. 경제 전문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 대목은 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 참여를 통해 총수 일가의 우호 세력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조 회장은 최근 수년간 대한항공 부실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서 경영 능력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낳았다. 이번 거래로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구조조정에서 한발 물러설 수 있지만, 산업은행을 대신해 그 작업을 조 회장이 제대로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뒤따른다. 조 회장이 산업은행 제안을 수락한 이면에 사모펀드 KCGI에 경영권을 넘기지 않아도 되는 데 급급해서가 아니냐는 평가마저 나온다.

첫 단계부터 법정 다툼

기업 구조조정에 밝은 한 여권 의원은 “산업은행이 한진칼이 아닌 (한진그룹 경영권과 관련 없는) 대한항공에 인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여러모로 뒷말 없는 깔끔한 방식이라고 본다”며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곳에 산업은행이 오해받을 수 있는 구조를 짠 건 아쉽다”고 말했다.

이번 방안이 순항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11월18일 KCGI는 법원에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정부 방안의 첫 단계인 제3자 배정 유상증자부터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한진칼 지분 40% 남짓을 보유한 KCGI 등 주주연합이 증자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데도 원천적으로 배제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법원 판단에 따라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시나리오는 곧바로 휘청거릴 수 있다. 정부 당국자는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면 아시아나항공 처리 방향을 새로 써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경락 <한겨레>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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