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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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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루가는 울고 있을지 몰라요

롯데월드·한화 일산 아쿠아리움 등 치열해진 수족관 간 경쟁…
쇼는 줄었다지만 동물친화적 시설일 수는 없어
등록 2014-11-07 15:18 수정 2020-05-03 04:27

[쇼핑 주문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제2롯데월드가 개장하면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도 문을 열었다. 수족관의 팽창시대, 어디로 가야 할까.
[주문 내역] 롯데와 한화 등 대기업들이 수족관 사업에 뛰어들었다. 롯데는 제2롯데월드를 개장하면서 흰고래 벨루가 세 마리를 데려왔다. 한화는 서울 63빌딩을 인수한 뒤 전남 여수, 제주, 경기도 일산 등으로 수족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6월 리조트 사업 강화 계획을 밝히며 경기도 용인에 대형 수족관을 짓기로 했다. 전세계 유명 아쿠아리움을 연구하는 중이다.
대기업들의 수족관 사업 확장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도 있다. 수족관이 돌고래·흰고래 등 해양 포유류를 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돌고래 쇼는 바다로 돌려보낸 돌고래 ‘제돌이’ 논란 속에 줄어드는 추세지만, 동물보호단체는 고래 수입이 증가하는 등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다.
실내 수족관은 여름보다 추운 겨울에 사람이 더 많이 찾는다. 수족관 나들이를 어디로 하면 좋을지, 가기 전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찾아봤다. ‘카트21’에서 최초로 이뤄지는 ‘시설’ 비교다.

[구매 목록] 롯데월드 아쿠아리움, 한화 아쿠아플라넷 일산, 서울 코엑스 아쿠아리움

신기하고, 황홀하고, 미안했던

흰고래 벨루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북극해에서 온 흰고래를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만났다. ‘너는 어디서 왔니’ 묻고 싶었다. 벨리(수컷·7), 벨라(암컷·3), 벨로(수컷·3). 세 마리는 대답 없이 수조 안에서 부드럽게 헤엄치고 있었다. 심해처럼 보이는 물 색깔, 거기에 흰고래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도심 속에서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관람객들이 흰고래 벨루가를 구경하고 있다. 흰고래 세 마리는 러시아에서 약 6억원을 주고 수입해왔다. 정용일 기자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관람객들이 흰고래 벨루가를 구경하고 있다. 흰고래 세 마리는 러시아에서 약 6억원을 주고 수입해왔다. 정용일 기자

조금 더 보고 있으니 불편한 마음이 스며든다. 벨루가는 수조 안을 계속 돌고 있었다. 위로 아래로 한 바퀴, 두 바퀴. 보는 사람에게는 잠깐이지만, 벨루가에게는 끊임없는 반복 행동이었다. 수조가 좁게 느껴졌다. 벨루가는 처음엔 신기했고, 다음은 황홀했고, 나중에는 미안했다.

함께 있던 이형주 동물자유연대 정책팀장은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해양 포유류를 가둬놓고 전시하는 것이 사라지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전시를 목적으로 고래류의 수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10월29일 이형주 정책팀장과 함께 지난 10월16일 개장한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 가봤다.

“쇼를 하기보다 생태설명회를 하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고 관리하는 모습을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것은 예전보다 좋아졌다.”(이형주 팀장)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은 개장하며 생태설명회를 6개,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8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국내의 다른 수족관에 견줘 2 배 이상 많다는 주장이다. 국내 수족관은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던 제돌이가 여론의 지지 속에 제주도 바다로 돌아간 뒤 쇼보다는 생태설명회에 집중하고 있다. 롯데월드의 강수연 아쿠아리스트도 “롯데월드의 장점은 생태설명회와 체험교육이 많다는 것이다. 설계할 때부터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롯데월드가 가장 많이 신경 쓰고 인기를 끄는 생태설명회는 벨루가 생태설명회다. 대형 해양 포유류는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이어서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벨루가는 북극해에서 태어나 처음에는 회색을 띠다가 흰색으로 색깔이 바뀐다. 흰색은 얼음과 색깔이 비슷해 천적을 피할 수 있다.” 롯데월드 직원은 수조 안 벨루가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한참을 듣던 이형주 팀장은 “벨루가 세 마리가 유영하는 모습을 두고 세 마리가 무리지어 다니는 습성이라고 설명하는데, 왜곡된 설명일 수 있다. 벨루가가 무리지어 다니는 것은 맞는데, 이곳저곳에서 모인 고래들을 함께 살게 한다고 해서 무리를 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열 싸움도 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벨루가 한 마리의 눈 옆에 피부가 찢겨진 상처가 보였다.

수족관 크다고 괜찮은 것 아냐

롯데월드는 국제 기준보다 큰 수조에서 벨루가를 키우며 공존하고 있다고 했다. 벨루가 수조의 경우 유럽동물원수족관협회 기준인 600t보다 2배 이상 큰 1224t 규모라고 했다. 롯데월드는 벨루가뿐만 아니라, 다른 해양동물에게도 큰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5200t의 수조 용량에 650종 5만5천여 마리의 해양생물이 있으며, 가로 25m·세로 7.3m 크기의 주 수조는 국내 최대 규모란다. 주 수조는 물을 안전하게 수용할 수 있게 47cm 두께의 아크릴판으로 만들었다. 큰 수조 앞에 있으면 바다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서울 한가운데 있어서 가끔 눈을 쉬러 오기에 좋다. 이제 막 생긴 수족관이라 수조에 새로 넣은 어린 어류를 보기에도 적합하다.

“수조 크기가 크다고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니다. 벨루가만 해도 다이빙 동물인 것은 맞지만 위아래로만 다니는 게 아니라 옆으로도 움직이는 동물이다. 사육 기준에 적합하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라는 것이지 이 정도면 괜찮다는 것은 아니다.” 이형주 팀장은 수족관을 없애기는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새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을 본 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화 아쿠아플라넷으로 이동했다. 아쿠아플라넷은 국내에서 최초로 대형 수족관 문을 연 63씨월드가 일산에 만든 곳이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해양생물뿐만 아니라 재규어 등 육상생물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이른바 ‘하이브리드형’ 아쿠아리움이라고 소개한다.

올해 문을 연 수족관답게 시설은 관람객을 중심으로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다. 작은 어류와 해파리, 갑각류 등이 있는 작은 수조들을 지나치면 대형 수조와 마주친다. 아쿠아플라넷 일산의 수조 규모는 4300t으로 롯데월드보다는 작다. 대신 롯데월드보다 재미를 주는 요소가 많다. 해양 프로그램으로 바다코끼리와 참물범의 생태설명회 등이 준비돼 있고, 비버와 수달이 움직이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정어리떼와 상위 포식자인 상어가 함께 있는 수조도 눈을 떼기 어렵게 한다. 육상동물인 재규어는 창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근할 수 있고, 새도 만져볼 수 있다.

그래서 이형주 팀장은 아쿠아플라넷의 시설이 더 생태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바다코끼리의 경우 쇼룸을 보면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다. 주말에 관람객이 많을 때는 수조에 빽빽이 달라붙어 보는데, 바다코끼리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국 동물원이나 수족관은 동물과 가까이 접촉할 수 없게 거리를 띄워놓는다.” 수조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달리 도시에 살게 된 해양동물에 대한 예의다.

220여 종의 해양생물이 있는 수족관을 다 보고 나면 재규어와 새 등 육상생물을 만날 수 있다. 실외에 있는 동물원이 아니어서 전체적으로 동물들의 공간은 비좁아 보였다. 홍따오기는 신기하게도 가까이 가도 날아가지 않고 관람객을 맞았다. “아마 날개 밑에 있는 속털을 잘랐기(윙컷) 때문에 날지 않고 있을 것”이라고 이형주 팀장은 귀띔했다.

“동물 못 볼 수도 있다는 의식 있어야”

아쿠아플라넷 일산의 모습은 국내 수족관 업계의 고민을 보여준다. 수족관이 늘어나면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목을 끌 만한 신기한 동물이 필요하다. 웬만한 수입 가능한 어류는 이미 다 들어온 상태다. 돌고래 같은 대형 포유류로 쇼를 하는 것도 여론 때문에 여의치 않다. 그 결과 수족관 업체는 육상생물과 묶는 하이브리드형을 만들거나, 흰고래처럼 쇼를 하지 않지만 화제를 끌 수 있는 대형 포유류를 수입하고 있다.

코엑스 아쿠아리움의 경우 ‘스토리텔링형 수족관’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롯데·한화는 대형마트고 우리는 중소업체다. 위기감에 머무르지 않고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고 코엑스 아쿠아리움 관계자는 말했다. 한때 국내 최대 규모였던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약 3천t 규모의 수조에서 650여 종의 생물을 전시하고 있다.

“돈을 내고 들어가면 쇼를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관람객도 동물을 못 볼 수 있다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지방의 열악한 수족관에서 입장객이 동물을 보지 못했다고 시청에 민원까지 넣은 사례가 있었다. 그러면 동물 복지는 요원해진다.” 이형주 팀장은 한국에서 수족관이 많아지면서 러시아가 더 많은 고래를 포획하는 등 생태계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어느 수족관으로 나들이를 갈지 결정할 때 교통정체나 신기한 동물의 유무보다 저 멀리 푸른 북극해의 고래떼를 고려해보는 것도 필요할 때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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