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주문서] 여름밤, 배달 치킨과 잘 어울릴 편의점 수입 맥주를 찾으시오.
[주문 내역] 치킨은 어쩌면 국내에서 가장 논쟁적인 야식인지 모른다. 수십 년간 쉼없이 자기계발을 꾀해온 치킨은 대한민국 안에서 ‘양념 반, 프라이드 반’처럼 끝없는 취향의 논쟁을 생산한다. 이 야식계의 대논쟁은 ‘치맥’(치킨+맥주)으로 확대하면 더욱 미궁 속에 빠진다. 라거(하면발효)맥주만 고집하던 국내 맥주업계가 에일(Ale·상면발효)맥주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치맥의 다양한 조합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변화는 퇴근길 유혹의 손짓을 하는 편의점 냉장고 속 수입 맥주다. 업체마다 10여 개의 수입 맥주를 내세워 다양한 할인 행사를 하고 있다. 최근 GS25에서는 신용카드 업체와 제휴해 진행한 수입 맥주 반값 할인 행사에 소비자가 과하게 몰려 행사를 취소하는 ‘맥주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시 할인 행사 등으로 수입 맥주들은 2천~3천원대 가격을 형성하며, 편의점 맥주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2천원 미만 국산 캔맥주(500㎖ 기준)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카트21’은 첫 순서로 편의점에서 떠오르는 루키 수입 캔맥주 가운데 야식의 강호를 지키고 있는 치킨과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짝을 찾아보기로 했다.
[구매 목록(원산지)] 기네스·스텔라 아르투아·호가든(벨기에), 기린 이치방·산토리 프리미엄 몰츠·삿포로·아사히 드라이(일본), 버드와이저(미국), 슈테판브로이 헤페바이첸·L바이첸(독일), 칭다오(중국), 필스너 우르켈(체코), 칼스버그(덴마크), 하이네켄(네덜란드) 등 14종
쇼핑의 도움말을 얻고자 전문가 2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즐거운상상)을 쓴 맥주 전문가 이기중 전남대 교수(인류학)와 다양한 치킨+맥주 요리를 내세운 음식 브랜드 ‘치맥’(Chi Mc)에서 메뉴 총괄 업무(브랜드운영팀 과장)를 맡고 있는 박세민 셰프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지난 6월27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옥상정원에서 실제 치킨과 14종의 맥주를 체험하며 깐깐하게 점수를 매겼다. 우선, 이들의 ‘맥주 취향’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기중(이하 이)- 우선 맥주를 한 가지로 안 마시고 서너 가지 마신다. 첫 잔은 홉의 맛이 가장 가벼운 맥주로 시작해 홉의 맛이 강한 쓴 맥주로 가는데, 마지막에는 ‘인디언 페일 에일’을 마신다.
박세민(이하 박)- 처음에 임팩트가 강한, 풍미를 자극하는 맥주를 마신다. 아무것도 안 먹었을 때 미각을 활발하게 하는 맥주다.
구매 목록은 GS25, CU, 세븐일레븐 등 국내 주요 편의점에서 취급하고 있는 수입 캔맥주다. 편의점 냉장고에서 구할 수 있는 수입 맥주는 라거(필스너 계열)와 밀맥주, 흑맥주(스타우트) 종류로 나뉜다. L바이첸과 슈테판브로이 헤페바이첸, 호가든은 밀맥주, 기네스는 흑맥주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라거 수입 맥주의 쓴맛을 기준으로 이른바 ‘줄세우기’를 주문했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버드와이저
이- (편의점 수입 맥주) 대다수가 필스너 계열인데 섬세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아사히, 기린 이치방 등 일본 맥주는 홉의 맛이 강하다. 필스너 계열을 줄 세우려면 약간 쓴맛으로 차별화를 둬야 한다. 또 튀김은 탄산과 잘 어울린다. 같은 필스너라도 탄산과 단맛으로 차이가 날 것이다.
양념치킨은 청량감 있는 맥주와 어울려박- 치맥 신드롬이 일어난 건 2002년 월드컵 때부터다. 업계에서 치맥 문화를 인위적으로 전파하기도 했다. 1980~90년대 프라이드치킨이 나오면서 야유회 때 맥주가 대중음식이 됐다. 이때 맥주는 기름지고 자극적이고 달고 매운 음식을 먹고 난 뒤 입을 헹구는 청량감 있는 음료였다. 그동안 라거 위주의 맥주가 소비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오래전에는 통닭집에서 생맥주를 팔았다. 생맥주를 마시려면 통닭집에 가야 했다. 요새 라거보다 나을 것 같은 크라운 맥주가 있었다. 치맥은 아니지만 예전에도 크라운 맥주와 통닭을 먹었다.
박- 프라이드치킨은 느끼하다는 것을 빼면 순하고 부드러운 요리다. 에일 계열의 맥주를 찾게 된다. 양념치킨은 양념 자체가 입에 강하게 남아 어떤 맥주를 먹더라도 맛을 느낄 수 없다. 목넘김과 청량감이 우수한 것이 낫다. 간장치킨도 마늘 소스 등이 입에서 맛을 북돋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치킨은 라거와 잘 어울린다.
수입 라거맥주 10종 가운데 치킨과 어울릴 법한 후보를 뽑아봤다. 이 교수는 ‘스텔라, 필스너 우르켈, 기린’을, 박 셰프는 ‘삿포로, 하이네켄, 칭다오’를 선택했다. 실제로 6종의 맥주 가운데 스텔라와 필스너 우르켈에 후한 평가가 이어졌다. 박 셰프는 “스텔라는 달달하다. 커피 시장이 처음 달달한 음료로 성장해 커피 본연의 맛을 찾는 것처럼, 맥주도 처음에는 대중적인 맛을 좋아하다 새로운 것을 찾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필스너 우르켈에 대해 이 교수는 “잔미가 없고 깔끔한 맛으로, 어느 정도 홉의 쓴맛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 박 셰프는 “끝맛이 떨떠름한 개성이 있는데 호불호는 많이 갈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 모두 하이네켄에 대해서는 국내 라거맥주와 견줄 때 구분지을 수 있는 큰 특징이 없다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
밀맥주인 L바이첸과 슈테판브로이 헤페바이첸, 호가든의 비교에서는 호가든이 우위를 차지했다. 이 교수는 “원래 밀맥주에서는 바나나 향이 나고 단맛이 강조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L바이첸은 “강하지 않지만 밀맥주 특유의 강한 향이 나는데 많이 시큼하다”(이기중)와 “밀맥주의 특유함을 주려고 했는데 무슨 색깔을 내려 했는지 모르겠다”(박세민)는 평가를 받았다. 슈테판브로이 헤페바이첸은 “꿀맛이 좀 느껴지나 텁텁하다”(이기중)와 “감을 먹을 때의 떫은맛이 난다”(박세민)는 의견이 나왔다. 유일한 흑맥주인 ‘기네스’에 대해 이 교수는 “초콜릿, 커피 향과 어울리는 스타우트의 특징을 생각할 때 프라이드·양념·간장치킨보다 훈제치킨에 어울릴 법하다”고 말했다.
기네스와 치킨, 의외로 궁합 맞는 친구평가를 거쳐 추려진 맥주는 기린, 스텔라, 필스너 우르켈, 호가든, 기네스였다. 이들을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프라이드·양념·간장치킨과의 어울림을 따져봤다.
이- 호가든은 프라이드치킨과 같이 먹으니 맛이 확 산다. 필스너 우르켈도 쓴맛이 더 났지만, 스텔라는 미묘한 차이가 안 났다. 같이 만나면 안 싸울 듯한 남녀 같은 맛이다. 그러나 필스너 우르켈의 더 도드라진 맛이 튀김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것 같다.
박- 기린은 청량감이 느끼함을 상쇄해줬다. 기네스는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이성 친구가 잘 맞는 느낌이었다. 의외로 궁합이 잘 맞았다. 간장치킨은 발효된 소스에서 나오는 묵직한 맛이 좀더 짭조름하다. 필스너 우르켈과 호가든의 달달한 맛이 감싸줘 어울린다. 흑맥주는 되레 간장치킨과 안 어울렸다.
이- 양념치킨에는 호가든이 어울렸다. 약간 달달한 맛이 달콤한 양념 소스와 궁합이 맞는다.
박- 필스너 우르켈의 은은한 맛이 양념치킨에 어울렸다. 양념치킨은 양념 맛으로 먹기 때문에 치킨-맥주 맛의 균형을 안 줘도 된다. 치킨 맛을 너무 잡아두거나 씻어낼 필요가 없다.
이- 프라이드·양념은 개인적인 취향인데, 필스너 우르켈이 튀김의 중립을 잘 지켜주는 것 같다.
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카트21’은 소비자의 관점에서 전문가와 함께 다양한 상품의 정보와 그 특징을 살펴보는 꼭지입니다. 격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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