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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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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합리·개성,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집 안 꾸미기에 관심 많은 소비자 겨냥한 생활용품 매장
이케아·자주·자라홈 비교 분석
등록 2015-01-23 17:25 수정 2020-05-03 04:27
지난해 12월 문을 연 이케아 광명점에는 평일에도 2만~3만 명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5만9천m²에 이르는 매장 2층에는 실제 살고 있는 집처럼 꾸며놓은 65개의 쇼룸이 있다. 정용일 기자

지난해 12월 문을 연 이케아 광명점에는 평일에도 2만~3만 명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5만9천m²에 이르는 매장 2층에는 실제 살고 있는 집처럼 꾸며놓은 65개의 쇼룸이 있다. 정용일 기자

쇼핑 주문서 저렴한 가격에 우리 집을 센스 있게 꾸미고 싶다.

주문 내역 홈퍼니싱(IKEA·이케아), 홈데코(ZARA HOME·자라홈), 라이프스타일(JAJU·자주) 브랜드 매장. 각자 스스로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다르지만, 엇비슷한 점이 많다. 최근 소비가 침체된 와중에도 고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 저렴한 가격에 집 안을 꾸미는 A부터 Z까지 모든 제품을 판다는 점, 가구 혹은 패션에 뿌리를 두고 생활용품 시장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 등등.

지난해 12월18일 문을 연 이케아 경기도 광명점은 여전히 평일에도 2만~3만 명이 찾고, 지난 연말 국내에 첫 매장을 선보인 자라홈과 H&M홈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이마트 ‘자연주의’를 인수해 ‘자주’로 브랜드명을 바꾼 뒤, 지난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과 삼성동 코엑스몰에 대형 매장을 여는 등 이마트를 넘어서 공격적인 유통망 확보에 나섰다. 롯데상사가 40% 투자한 ‘MUJI’(무지)는 올해 식품, 가전 등으로 제품군을 다양화한다. 생활용품 브랜드인 ‘모던하우스’를 갖고 있던 이랜드그룹도 20~30대가 대상인 ‘버터’라는 새로운 리빙 브랜드를 론칭한 바 있다.

이런 ‘공룡’들이 뛰어들면서 인테리어 전문업체나 작은 편집숍, 온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던 기존 시장이 급속도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현재 10조원가량인 국내 생활용품 시장(가구 제외)은 2023년까지 18조원(2014년 11월 흥국증권 추정)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홈퍼니싱 매장들은 각각 무엇이 다르고, 또 비슷할까.

브랜드의 특성을 좀더 깊이 있게 살펴보기 위해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케아가 가구업체이긴 하지만 스스로 ‘홈퍼니싱 기업’이라 표현하고, 아직까지 국내에선 가구보다는 소품 판매량이 많기 때문에 인테리어 소품(생활용품)을 중심으로 비교해보기로 했다. 인테리어 업계에서 일했고 디자인·문화 트렌드 기획자인 ‘트렌드큐레이터’ 김은영씨, 인테리어 전문 월간지에서 디자인 전문 기자로 일하는 유승주씨가 도움을 줬다. 시간 관계상 이케아 광명점은 각자 둘러본 뒤, 지난 1월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에 입점한 ‘자주’와 ‘자라홈’을 함께 방문했다.

인테리어 전문 월간지에서 디자인 전문 기자로 일하는 유승주씨(왼쪽)와 ‘트렌드큐레이터’ 김은영씨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에 입점한 '자주'(JAJU) 매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인테리어 전문 월간지에서 디자인 전문 기자로 일하는 유승주씨(왼쪽)와 ‘트렌드큐레이터’ 김은영씨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몰에 입점한 '자주'(JAJU) 매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케아, 옷 고르듯 편안하게 고를 수 있어

황예랑(이하 황) 이케아 매장은 어땠나.

유승주(이하 유) 65개의 쇼룸이 기대와 달리 대부분 비슷한 콘셉트더라. 클래식·모던 등의 차이가 아니라, 노랑과 연두를 맞춰놓은 쇼룸, 보라색 위주의 쇼룸 등 색깔만 달리해놓은 식이다.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들은 고급스럽거나 독특하다기보다는, 사람들이 옷을 갈아입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 수 있는 제품들 위주였다.

김은영(이하 김) 쇼룸 구성 측면에선 15~ 55m² 넓이의 한국 중·소형 주거문화를 반영해 실용적인 아이템을 배치해놓은 점이 눈에 띄었다. 젊은 소비자를 겨냥했다는 게 확실히 보이더라. 3~6년 단위로 필요할 때마다 부담 없이 교체할 수 있는 이케아 제품의 재질이나 디자인, 가격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딱 맞다.

이케아의 인기를 싱글족(1인 가구) 확대와 연관지어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케아 홍보팀 관계자는 “쇼룸 전시 제품의 65%가 아이 있는 가족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더라. 키즈 섹션이 전세계 매장 가운데 가장 크다고 한다. 매장이 5만9천m²나 될 정도로 넓고 8600여 개 제품이 널려 있다보니 좀 어지럽다는 느낌도 들던데.

하지만 쇼룸에 전시된 아이템마다 품목번호를 기록해 1층에서 카테고리별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하거나, 대중교통으로 방문해 짐이 많은 고객을 위한 사물함, 간단한 소품 구매 고객의 대기시간을 줄여주는 시스템 등 오랜 글로벌 경험을 갖춘 본사 시스템이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 또 직원의 안내가 아니라 태블릿PC나 컴퓨터를 통해 제품을 찾고, 옆에 놓인 몽당연필로 종이에 구매 목록을 적는 방식인데 영국에서 유학할 때 이용했던 라이프스타일 매장이 떠올랐다. 이런 서비스 디자인이 젊은 세대에게는 재밌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듯하다.

매장 내 동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해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제품마다 붙어 있는 꼬리표의 상세한 설명도 친절하게 느껴졌다. 동행했던 실내건축가는 가구의 경우엔 MDF(중밀도 섬유판)나 PB(나무를 톱밥과 섞어서 압축한 파티클보드) 등 저렴한 소재를 많이 쓰긴 했지만 내구성은 나쁘지 않다고 평가하더라.

개인적으로 아는 나이 든 가구 전문가는 “이케아는 곧 망할 것”이라고 말하더라. 한국 사람들이 직접 조립하는 걸 귀찮아할 것이란 이유였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북유럽풍 디자인에 눈과 귀가 많이 열려 있다. 또 이케아 매장 자체가 구매뿐만 아니라 눈요기 등을 할 수 있는 복합문화체험공간이기 때문에, 이를 원하는 젊은이들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해줄 수 있다고 본다. 망하진 않겠더라. (웃음)

이케아 광명점이 워낙 ‘핫플레이스’이다보니 역시 제품보다는 ‘공간’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다음은 ‘자주’ 매장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자주, 남자가 쇼핑하기에 나쁘지 않아

여기는 ‘무지’랑 상당히 비슷한 분위기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인수해서 힘을 실어준다기에 디자인을 너무 기대했던 것 같다. 매장 전체 분위기도 그렇고, 패브릭 제품의 패턴도 세련미가 좀 떨어진다.

이마트에서 운영하던 ‘자연주의’에서 ‘자주’로 이름을 바꿨는데, 제품만 놓고 보면 ‘다른 게 뭐지?’ 싶다.

브랜드를 업그레이드했지만, 제품의 질적인 면에서는 편차가 고르지 않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인도산 면으로 짠 수건을 써보니 만족도가 높았지만, 의류 제품들은 구색맞추기용으로 어정쩡하게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쇼핑을 목적으로 홈퍼니싱 매장을 방문했을 때 결국 계산은 자주 매장에서 하고 있더라. 자라홈이나 H&M홈은 화려하지만 매일 쓰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선뜻 구매하기 어렵다. 자라홈이 화려한 베르사체진이라면 여기는 편안한 아르마니진?

동의한다. 얼마 전 싱글족 친구의 집들이 선물을 사러 나왔다가, 자주에서 식기와 욕실매트 등을 샀다. 자연스러운 모노톤이라서 선물로 주기에 무난하다. 가로수길에 있는 플래그십스토어는 좀더 쇼룸처럼 꾸며져 있고, 선인장 등의 식물도 판다. 다만 자주 제품에 대한 만족도는 편차가 크다. 클렌징오일 케이스를 사서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오일이 다 새는 바람에 여행가방 속이 엉망이 된 경험이 있다.

자주는 혼자 사는 남자들이 와서 쇼핑하기에 나쁘지 않다. 내구성을 갖추고 합리적인 가격의 제품이 많다. 값싼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50%가량을 국내산 제품으로 채웠다고 한다.

매장 안에 스토리를 넣어 설명해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이케아 매장에서 제품 디자이너 스토리 등을 설명해놓은 것과 비슷하다. 자라홈이나 H&M홈에선 그런 스토리는 보이지 않는다.

스토리텔링을 의도하긴 했지만 그 의도가 공간 전체에 흐른다는 느낌은 안 든다. 좀더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예를 들어 자주 매장의 식기 코너 한쪽 벽에는 ‘어디에나 시리즈’에 대한 설명이 있다. 어느 음식과도 어울린다는 뜻의 ‘어디에나’다. 묵은 스트레스를 날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준비하라는 의미의 ‘스트레스’ 시리즈도 있다. 머그컵, 에코백, 노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자주 매장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자라홈 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주와 자라홈은 매장에 들어서는 순간 첫인상부터가 다르다. 자주의 매장 바닥은 나무, 자라홈은 대리석이다. 특별한 향기나 음악 소리를 느낄 수 없었던 자주 매장과 달리, 자라홈 매장에서는 강렬한 향기와 요란한 음악 소리에 취할 듯했다.

이케아 광명점의 모습. 정용일 기자

이케아 광명점의 모습. 정용일 기자

자라홈, 패션에 뿌리 둔 개성이 강렬

자라홈은 컬러, 향기, 디자인 패턴 등이 강렬하다. 평범함에 싫증을 느끼거나, 집에 포인트를 주고 싶은 고객이라면 좋아할 듯하다. 매장 입구 쪽에 눈길을 끌 만한 아이템을 배치해놓은 게 인상적이다. 이 커튼태슬(커튼에 다는 줄)만 해도 소라와 조개껍데기를 엮어놓은 제품은 한국 사람들이 소화하기 어려운 아이템이다.

갈아끼울 수 있는 화려한 문고리 제품들도 그렇다. 9천원에서 1만5천원까지 가격도 저렴한 편인데, 강한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다.

여자들이 귀걸이를 사도 사도 또 사고 싶은 것처럼 그런 거죠. (웃음) 충동구매를 할 만한 제품이 많이 섞여 있다. 자주와 차별되는 제품이 여기도 있다. (97만9천원짜리를 69만9천원에 할인해 판매한다고 붙어 있는 가죽 러그 제품을 가리키며) 여성들이 명품 가방처럼 갖고 싶어 하는 고급스러움의 상징이 가죽이다. 자주나 이케아에는 이런 제품이 없다.

자라홈 가격은 좀 거품이 끼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강남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봤던 9천원짜리 액자랑 거의 비슷한 액자를 4만9천원에 팔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직접 찍어서 휴대전화에 저장해놓은 9천원짜리 액자 사진을 실제로 보여줬는데 두 제품의 싱크로율은 80% 이상이었다.)

자라홈은 패션에 뿌리를 둔 브랜드다. 자라 매장에서 옷을 다양하게 살 수 있듯이, 꽃을 사는 마음으로 생활소품들을 사서 기분전환을 하라는 의도가 읽힌다. H&M홈은 자라홈보다 가격이 좀더 저렴하고 보기 편안한 패턴의 제품이 많은 편이다. 사실 명품 브랜드들은 이미 몇 년 전에 국내에 라이프스타일숍을 들여왔다. 아르마니까사, 펜디까사, 베르사체홈, 미소니홈 등이 했던 걸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자라와 H&M이 따라한 것이다.

그렇다면 홈데코 혹은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케아·자라홈 등 유명한 외국 브랜드들이 국내에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비자들의 물질적·심리적 조건이 달라진 까닭도 있다. “최근 토론자로 참석했던 한 대학교의 패션 포럼에서 패션 전문가 9명 가운데 3명이 ‘라이프스타일숍’을 언급했다. 패션산업의 전체적인 패러다임이 그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들 입을 모았다. DIY(손수제작) 가구들이 인기를 끄는 것 또한 불과 7~8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이케아나 자라홈이 뿌리를 둔 유럽 국가들이 구현해왔던 라이프스타일을 한국에서도 누릴 만한 배경이 형성됐기 때문에 이케아에 열광하는 것이다.”

집은 사는 ‘것’ 아니라 사는 ‘곳’인 시대

김은영씨는 그 배경의 하나로 건설과 인테리어 시장의 변화를 꼽았다. 아파트 건설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투자를 위해 아파트를 사지 않는다. ‘큰 소비’ 대신 기존 공간을 리모델링하거나 인테리어 소품을 바꾸는 식의 ‘작은 소비’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 소유보다는 향유가 중요해진 시대라는 뜻이다. “집을 소유하겠다는 미련을 버리고 나면 10만원에 얻을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나 행복에 눈을 뜨게 된다.” 우리가 이케아에서 구매하는 것은 단순히 흔들의자, 욕실매트 따위가 아니라 무려(!) ‘라이프스타일’인 것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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