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주문서] 프리미엄 김밥은 ‘진짜’ 프리미엄일까?
[주문 내역] 얼마 전부터 김밥천국, 김가네, 충무김밥 등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대신 그 자리를 바르다김선생, 고봉민김밥人(인) 등의 생소한 브랜드들이 채우고 있다. 이른바 프리미엄 김밥 브랜드들은 하나같이 좋은 재료, 건강한 먹거리를 강조한다. 중국산 찐쌀로 만든 1천원짜리 김밥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내산 햅쌀은 당연하고, 100% 현미로만 밥을 짓는 브랜드도 있다. 남해 청정지역 김을 쓰고, 국내산 참기름과 고춧가루만 쓴다고 홍보한다. 그러다보니 김밥 한 줄의 가격도 3천~4천원대가 기본이다.
한 끼니를 가볍게 때우려는 ‘분식’에서 풍성한 식재료를 품은 ‘요리’로, 김밥의 위상이 올라선 셈이다. 서울의 유명하다는 김밥 전문점 앞에는 손님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바르다김선생’의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 매장은 지하 1층 푸드코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매장이다. 과연 맛과 가격도 그 명성에 걸맞을까?
[구매 목록] ‘고봉민김밥인’의 야채김밥(2500원)·매운김밥·돈까스김밥(각 3천원), ‘로봇김밥’의 생와사비참치마요김밥(3800원)·몸에좋은아몬드호두멸치김밥(4200원)·로봇갈비김밥(4300원), ‘리김밥’의 버섯불고기+매콤견과류 리김밥(4천원)·고다+에담치즈 리김밥(5500원), ‘바르다김선생’의 크림치즈김밥·매운제육쌈김밥(각 4500원) 등 총 11종.
좀더 깊이 있게 맛을 감별하기 위해 전문가 2명의 도움을 받았다. 을 쓴 음식문화평론가 강지영씨와 8년간 CJ에 근무하면서 한식사업 개발에 참여했던 레스토랑 컨설턴트 이범준(현재 ‘로즈베이커리’ 운영총괄)씨. 지난 1월27일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이들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과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사온 김밥 11종류를 직접 맛본 뒤, 꼼꼼하게 맛과 가격 대비 만족도를 점수로 매겼다.
김밥을 맛보기에 앞서 ‘프리미엄 김밥’이 인기를 끄는 배경에 대해 물었다.
이범준(이하 이): 작은 사치다. 요즘은 외식뿐만 아니라 모든 소비 분야에서 프리미엄을 지향하는 것 같다. 소비자들이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유기농이나 원산지가 확실한 식재료를 먹으려는 자세가 돼 있다. 프리미엄 김밥은 김밥군에서는 비싸지만 전체 식품군에서는 비싸지 않은 틈새를 잘 노렸다. 그 안에서도 두 갈래 흐름이 보인다. 바르다김선생처럼 건강을 내세우거나, 고봉민김밥인처럼 돈가스 등 안 쓰던 재료를 써서 김밥을 요리처럼 격상시키려는 흐름.
강지영(이하 강): 사실 난 거품이라고 생각한다. 식문화라는 게 나라의 경제·문화 수준과 어울려 천천히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핫한 것만 찾아다닌다. ‘미드’(미국 드라마)니, 각종 요리 프로그램의 영향이다. 대도시 문화의 영향도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간담회를 하면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고급스런 카페가 많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데도 일을 해야 하니까 시간이 촉박한 거다. 빨리 먹되 좋은 걸 먹고 싶으니까, 5천원짜리 길거리 샌드위치가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면 1만5천원이 된다.
이: 가정식 백반도 그런 흐름이 나타난다. 저염식 건강밥상을 지향하는 ‘일호식’ ‘무명식당’ ‘파르크’ 등에서는 1만원이 넘는 백반을 파는데도 항상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삼시세끼를 밖에서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 건강식을 찾는다.
강: 어차피 9천원짜리 설렁탕 먹느니, 2천~3천원 더 내고 유기농에 건강한 밥상을 먹으려는 것 아니겠나. 지금 우리나라 식문화가 정점에 올라 있는 느낌이다. 몇 년 전부터 외식산업에 대한 자본 투자도 늘어났고.
이: 프리미엄 김밥만 해도 대기업들이 눈독 들이는 시장일 거다. CJ 근무할 때 비빔밥보다 김밥이 들고 다니면서 먹는 패스트푸드라 글로벌화에 훨씬 유리하다고 주장했었다.
실제 최근 뜨고 있는 프리미엄 김밥 브랜드들은 직간접적으로 음식계의 ‘큰손’과 연관돼 있다. 바르다김선생은 ‘죠스떡볶이’로 유명한 죠스푸드의 2번째 외식 브랜드다. 2013년 1호점 개장 이후 현재 80여 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고봉민김밥인은 부산에서 유명한 김밥집을 운영하던 고봉민 사장의 이름을 딴 브랜드다. 사모펀드가 투자한 뒤 부산에서 전국으로 뻗어나가면서 가맹점 500호점을 돌파했다. 이 밖에 단풍애김밥, 가마솥김밥 등도 프랜차이즈 전문기업들이 띄운 브랜드다.
그렇다면 이날 비교해본 11종류의 김밥 맛은 어땠을까? 리김밥, 바르다김선생, 로봇김밥, 고봉민김밥인의 차례로 김밥을 모두 먹어본 다음 별점(표 참조)을 매겼다. 4개 브랜드의 김밥 포장 방식도 달랐다. 바르다김선생은 네모반듯한 종이상자 안에 넣었고, 리김밥은 일회용 종이상자로 아래를 받치고 위는 투명한 비닐랩으로 감쌌다. 로봇김밥과 고봉민김밥인은 자체 제작한 종이 포일로 말아줬다.
김밥의 주객전도 그리고 과유불급강: 프리미엄 김밥이라면 포장에서 느껴지는 겉모습도 중요하다. 리김밥의 비닐랩은 뚜껑이 없으니까 김밥이 흐트러지고 안 좋다. 차라리 종이 포일이 낫다.
이: (리김밥의 매콤견과류김밥을 한입 베어문 다음) 너무 사이즈가 커서 먹기 불편하다.
강: 요즘 김밥들이 대체로 크다. 그래야 이슈가 되니까. 이따만한 김밥 먹었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고, 그게 짧게라도 유행을 탈 수 있으니까. 사실 김밥은 김이랑 밥이 맛있으면 다른 재료는 큰 의미 없다. 그런데 요즘은 재료를 많이 넣는 것으로 지나치게 경쟁한다.
이: 밥보다 재료가 많으면 고객들이 더 좋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 리김밥의 고다+에담치즈 김밥은 별로다. 스모크한 향의 치즈는 원래 밥이랑 안 어울린다.
강: (네덜란드에서 온 에담치즈라고 매장에 홍보문구가 붙어 있다고 알려주니) 진짜 에담치즈는 쫀득한 느낌이라 김밥에 쓰기 적합하지 않은데, 가공치즈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 차라리 이 치즈를 매콤견과류김밥에 썼으면 나았을 걸.
이: 바르다김선생은 채소 식감이 아삭아삭하고 맛있다. 매운제육쌈밥은 진짜 제육볶음을 채소랑 섞어넣은 듯한 느낌이다. 한입에 들어가는 크기라 먹기도 편하고.
강: 김밥은 어떻게 마느냐가 중요하다. 밥이랑 재료들이 촘촘하게 말려 있어야 한다. 바르다는 채소를 다른 브랜드보다 훨씬 가늘게 채썰어놨다.
이: 리김밥은 채소가 입안에 굴러다녔는데, 이건 그런 게 없다. 바르다 크림치즈김밥은 맛있긴 한데 달다.
강: 우리나라 유제품의 한계다. 외국은 크림 종류가 다양하니까 당을 첨가하지 않는데, 우린 무조건 가당 유제품들이다.
이: 로봇김밥은 100% 현미만 썼다는 게 분명히 셀링 포인트다. 그런데 밥이 질고 달다.
강: 맞다. 현미의 고소한 맛이 안 느껴진다. 인기 메뉴라는 아몬드호두멸치김밥은 입안에서 뻑뻑하게 퍼진다. 맛있는 음식은 입안에 들어가면 감싸는 느낌인데, 이건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이: 생와사비참치마요김밥은 와사비 맛만 날 뿐이고, 로봇갈비김밥도 갈비 맛이 전혀 안 난다. 오늘 맛본 메뉴 3가지가 별로인 건지, 로봇김밥이 원래 이런 건지 의문이 들 정도다.
강: 김밥을 제일 잘 싼 브랜드는 고봉민김밥인이다. 어느 매장에서 샀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프랜차이즈라면 맛이나 김밥 싸는 기술도 일정해야 한다.
두 사람 다 고봉민김밥인의 야채김밥에 최고 점수를 줬다. “단무지가 너무 달거나 짜지 않고 달걀지단도 보슬보슬하게 잘 부쳐져 있다.”(강지영) “단무지 맛이 탁월하게 좋다. 고봉민이라는 개인 이름을 브랜드로 내걸었다는 것 자체가 보통 내공이 아니라는 뜻이다.”(이범준) 2500원으로 비교적 싼값도 점수를 높인 요인이었다. 바르다김선생의 매운제육쌈김밥은 높은 평가(별점 5점 만점에 강: 4점, 이: 4.5점)를 받은 반면, 크림치즈김밥은 그다지 좋은 평가(강: 2점, 이: 2.5점)를 받지 못했다. 리김밥은 매콤견과류김밥이 그래도 괜찮은 맛(3점)이라고 평가됐지만 가격은 비싼 편이라고 지적됐다. 리김밥의 고다+에담치즈 김밥(5500원)에 대해서는 “차라리 그 값이면 햄버거를 먹겠다”(강지영), 로봇김밥의 로봇갈비김밥에 대해서는 “평가가 불가능할 정도로 별로다”(이범준)라는 혹평이 나왔다.
“프리미엄 김밥이라고 해서 속 재료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먹기 편하게 김밥답게 잘 싸는 기본에도 신경 써야 한다. 당장 시류에 편승해 값만 높여서는 오래 못 간다.”(이범준) 조만간 김밥시장의 옥석이 가려질 것이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았다. “정말 맛있거나 자본력이 뒷받침되는 몇 곳을 빼면, ‘프리미엄’을 어설프게 내세운 후발주자는 본전도 못 건지고 망할 가능성이 높다. 한창 유행했던 찜닭 프랜차이즈들처럼.”(강지영)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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