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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이 로봇?

<가디언> 기사를 ‘로봇 알고리즘’이 골라 만든 종이 월간지

<#오픈001> 창간, 증권·스포츠 데이터 입력하면 30초 만에 스트레이트 쏟아내는 ‘자판기 기자’도 활약 중
등록 2014-04-24 17:28 수정 2020-05-03 04:27
〈가디언〉과 ‘뉴스페이퍼클럽’이 로봇 알고리즘을 써서 만든 주간지 〈더롱굿리드〉.대니얼캣 제공. CC BY-SA

〈가디언〉과 ‘뉴스페이퍼클럽’이 로봇 알고리즘을 써서 만든 주간지 〈더롱굿리드〉.대니얼캣 제공. CC BY-SA

10년도 더 지난 얘기다. 기자 생활 3·4년차 무렵이던가. 동료들과 술잔을 부딪치며 마감의 사선을 넘나들 때면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어디, 기사 대신 써주는 소프트웨어 없나?” 마감에 쫓겨 술잔을 허겁지겁 비우던 동료도 능숙하게 받아쳤다. “그러게 말이야. 우선 팩트 몇 개를 입력해. 그런 다음 조건을 선택하는 거야. 전개 방식은 두괄식으로 할지 미괄식으로 할지, 평어체로 쓸지 경어체로 쓸지, 논조는 ‘까는’ 걸로 갈지 ‘빠는’ 걸로 갈지…. 아아, 생각할수록 현실감 돋는데. 이참에 우리가 확 만들어봐?”

코드 한 줄 짤 줄 모르는 지리멸렬한 마감 인생들도 뒷걸음질치다 쥐 잡는 재주는 있었던 걸까. 로봇이 기사를 고르고 직접 쓰기까지 하는 시대가 정말로 왔다. 이러다가 밥그릇 뺏길 판인걸.

돈 많은 언론사의 무모한 실험으로 치부하기엔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찮다. 요즘 영국 을 보면 그렇다. 이 미국에서 새로운 월간지를 내놓았다. 모양새가 뜻밖이다. 고색창연한 종이신문이다. 첫 발행일은 미국 현지 시각으로 4월16일이다. 제호도 독특하다. (#Open001)이다.

이 타블로이드 신문의 편집장은 로봇이다. 볼트와 너트, 전자회로를 가진 로봇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보의 입출력과 분석, 조합과 동작의 집결체인 ‘알고리즘’이다. 뭐야, 멍청한 데스크 대신 똘똘한 로봇에게 편집장을 맡기겠다는 거잖아.

그동안 을 유심히 지켜본 사람에겐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은 지난해 12월부터 신문 제작을 로봇에게 맡기는 실험을 해왔다. 맞춤형 신문을 제작하는 벤처기업 ‘뉴스페이퍼클럽’이 과 손을 잡았다. 이들은 , ‘긴 읽을거리’란 뜻을 지닌 타블로이드판 주간지를 찍었다. 이 공개한 인기 기사를 취사선택해 24쪽 분량의 타블로이드판으로 만들었다.

기사를 고르고 배치하는 일은 로봇 몫이다. 이 개발한 알고리즘 덩어리인 이 로봇은 전체 기사 가운데 길이, 주제, 댓글, 소셜미디어 공유 횟수, 독자 반응 등을 분석해 상위 1% 기사만 솎아낸다. 이렇게 뽑은 기사는 뉴스페이퍼클럽이 제공하는 신문 자동편집 도구를 거쳐 종이신문으로 제작된다. 신문은 500부 정도 인쇄해 의 또 다른 미디어 실험실인 ‘#가디언커피’(#GuardianCoffee)에서 매주 월요일에 무료로 배포된다.

도 여러모로 와 닮았다. 똑같은 로봇 알고리즘을 썼고, 뉴스페이퍼클럽이 파트너로 참여했다. 둘 다 무료로 배포되며, 광고도 없다. 다른 점도 있다. 주간지가 아니라 월간지로, 영국이 아니라 미국에서 배포되는 점이 그렇다. 발행 부수도 의 10배인 5천 부에 이른다. 배포는 과 손잡은 주요 광고대행사가 맡았다.

어디 뿐이던가. ‘로봇 기자’ 스태츠멍키 사례는 우리에게도 낯익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학생들이 만든 이 알고리즘은 스포츠 경기 데이터를 받아 기사를 척척 써냈다. 내러티브사이언스는 10여 년 전 상상이 정말로 현실이 된 사례다. 증권이나 스포츠 경기 결과 같은 데이터를 넣으면 30초 만에 스트레이트 기사를 쏟아내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내러티브사이언스 ‘기자’는 미국 에서 실제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 3월 중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지진 소식을 가장 먼저 <la>로 보도한 이도 로봇이었다. <la> 서버에 상주하는 이 영특한 로봇 기자 ‘퀘이크봇’은 지질연구소에서 받은 정보를 정해진 알고리즘에 맞춰 기사로 작성한다. 지진 발생 지역을 알려주는 지도를 첨부하거나 제목을 다는 일도 퀘이크봇 몫이다.
이런 일련의 ‘알고리즘 저널리즘’은 아직까진 메마르다. 데이터는 객관화할 수 있지만, 미묘한 감정까지 전달하기엔 서투르다. 9회말 역전 홈런을 날렸을 때의 짜릿함,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수영선수의 긴장감, 비판보다는 격려로 상대를 설득하는 현자의 여유 등을 알고리즘이 담을 수 있을까.
중요한 건 도전 그 자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다.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수밖에.
를 내놓으며 제미마 키스 기술담당 책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건 수익을 노린 시도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실험적 성격의 프로젝트예요. 그냥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는 겁니다. 미디어 조직들이 실험적 프로젝트를 할 때 좀더 가볍게 시도해보면 좋겠어요.”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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