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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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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명당’ 돼버린 비트코인

뻔한 결말에도 불평등 시대 불확실성에 지갑 바치는 불나방들
등록 2017-12-15 10:15 수정 2020-05-03 04:28
비트코인 이미지. 이희욱 제공

비트코인 이미지. 이희욱 제공

대학 4학년 때 자취하던 집 앞 상가에 조그만 24시 편의점이 있었다. 늦은 밤 귀갓길, 취기에 흥이 오르면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을 사곤 했다. 몇 년 뒤, 근처를 우연히 지나다 깜짝 놀랐다. 그 작고 평범한 편의점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 돼 있었다. 로또의 등장과 더불어 모락모락 피어난 일확천금의 꿈 때문이었다. 로또 열풍은 사그라들었지만, 그 복권방은 지금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전국에서 온 차량들로 주말이면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다.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른바 ‘로또 명당’은 없다. 전국망으로 연결된 기계가 무작위로 숫자를 실시간 뽑아주는 것이니, 물리적 공간이 당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불나방처럼 복권값보다 비싼 기름값을 쓰며 로또 명당으로 몰려가는 것일까. 이 비합리성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확천금의 꿈이 크고 달콤하기 때문이리라.

지금은 비트코인이 로또가 됐다. 2017년 말, 비트코인으로 대변되는 암호화폐의 거래는 투기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암호화폐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주식시장처럼 호재나 악재에 따라 출렁이지도 않고, 경기 전망과 연동해 기업 가치를 내다보며 거래되지도 않는다. 막연한 기대심리와 ‘감’에 의존하는 투자다. 둘째, 암호화폐 거래소는 가격 제한폭이 없다. 국내 주식시장은 당일 주가의 최대 30%로 등락폭을 제한해 지나친 가격 변동에 따른 완충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암호화폐는 하루 동안 300~400% 뛰었다 곤두박질하기를 예사로이 반복한다. 초 단위로 등락이 거듭되고, 거래 시장도 24시간 쉬지 않고 열려 있다.

암호화폐 거래엔 세금도 없다. 국내에서 아파트나 토지를 사거나 상속받으면 부동산 가격에 따라 1~4% 취득세, 0.1~0.4% 지방교육세, 0.2% 농어촌특별세를 낸다. 하지만 국내에선 암호화폐의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다. 암호화폐를 유가증권으로 볼지, 파생상품으로 볼지의 기준도 없다. 지난 9월 말 금융위원회 주재 회의에서 가상통화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행위(ICO)를 금지하겠다는 방침만 발표했을 뿐이다. 국내에서 재화를 살 때 붙는 간접세인 부가가치세(10%)도 암호화폐를 살 때는 적용되지 않는다. 암호화폐 투자자는 0.1~0.5%의 거래 수수료만 내면 나머지를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고스란히 수익으로 가져간다.

이 모든 조건은 암호화폐를 단타 매매 중심의 거대한 투기시장으로 만든다. ‘가치투자’란 말 자체가 적용될 수 없는 ‘깜깜이 투자’ 판에선 초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세판이 곧 전망이요, 시간과 직감이 곧 적기다. 2017년 1월1일 110만원 안팎이던 1비트코인 가격은 같은 해 12월5일 오전 기준으로 1400만원을 넘어섰다. 2017년 거래 기준으로 상위 10대 암호화폐의 연평균 수익률은 1500%가 넘는 반면, 한국거래소(KOSPI)의 향후 10년간 기대수익률은 7~10%다.

요즘 비트코인을 보면 옛 자취집 앞 로또 명당이 자꾸 떠오른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이나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 골드러시의 교훈을 굳이 꺼내들지 않아도 된다. 황금의 꿈을 좇던 이들이 황무지에서 죽어갈 때도 청바지 장수들은 돈을 벌었고, 15년 전 로또 광풍이 불었을 때도 대박을 맞은 이들은 일부 로또 판매상들이었다.

우리는 결말을 뻔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거대한 불확실성에 지갑을 연다. 마지막 침몰 직전에 나는 빠져나올 수 있을 거란 막연한 믿음 때문에. 그렇지만 누가 손가락질할 수 있으랴. 경제성장률이 자본수익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신 불평등’ 시대, 암호화폐란 혁명의 부산물이 유일한 황금동아줄로 보이는 시대를 통과하는 우리네 ‘흙수저’들이 거쳐가야 할 터널이기에.

이희욱 편집장 asadal@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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