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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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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불꽃, 우리의 영원한 고민

한화 ‘불꽃디자이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을 컴퓨터로 제어해 밤하늘에 수를 놓다
등록 2013-11-27 14:44 수정 2020-05-03 04:27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비롯한 각종 불꽃축제를 기획하는 (주)한화의 불꽃프로모션팀 직원들이 사무실이 불꽃축제 사진 앞에서 ‘웃음꽃’을 피웠다. 맨 오른쪽 윤두연 매니저는 국내에 몇 안 되는 ‘불꽃디자이너’다.탁기형

서울세계불꽃축제를 비롯한 각종 불꽃축제를 기획하는 (주)한화의 불꽃프로모션팀 직원들이 사무실이 불꽃축제 사진 앞에서 ‘웃음꽃’을 피웠다. 맨 오른쪽 윤두연 매니저는 국내에 몇 안 되는 ‘불꽃디자이너’다.탁기형

1749년 어느 봄날 밤이었다. 영국 런던 그린파크의 하늘에 화려한 불꽃이 흩뿌려졌다. 8년간의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끝난 것을 기념해, 조지 2세는 불꽃으로 ‘평화의 세례’를 내렸다. 헨델이 작곡한 는 호른·트럼펫 등을 타고 울려퍼졌다. 그러나 불꽃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 갑작스런 불이 나면서, 축제는 어그러졌다. 전쟁과 불꽃축제, 화재. 불과 화약을 매개로 한 욕망이 뒤엉키는 순간이었다.

화약으로 벌어 불꽃으로 날린다

264년이 흐른 어느 가을밤이었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펼쳐진 서울세계불꽃축제엔 어김없이 100만여 인파가 몰려들었다. 63빌딩 앞에서 흐르는 로이킴의 , 조용필의 노래에 맞춰 12만 발의 축포가 터졌다. 밤하늘엔 불꽃이 활짝 폈다. 불꽃축제에 처음 가본 이아무개 기자는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환상적이었다”고 감탄한다. 해마다 10월 첫쨋주 토요일이 되면, 여의도 일대는 마비된다. 불꽃이 잘 보이는 ‘명당’을 찾아가기 위한 욕망으로, 아침부터 자리를 지키고, 축제가 끝난 뒤 몇 시간씩 갇혀 있기도 마다하지 않는다. 수많은 인파의 눈과 귀를 황홀하게 하는 그 순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주)한화 불꽃프로모션팀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불꽃만, 그 찰나만을 고민한다. 한화는 2000년부터 서울세계불꽃축제를 열어왔다. 미국 9·11 테러, 북핵 문제, 신종플루 등으로 축제를 건너뛰었던 3년을 빼고는, 서울 가을밤의 가장 큰 축제가 어그러진 적은 없었다. 서울뿐이 아니다. 부산, 충남 당진, 경북 포항, 인천에서도 불꽃축제가 해마다 열린다.

‘왕궁의 불꽃놀이’가 그랬듯이, 화약과 불꽃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한화는 국내 최대 화약 전문 기업이다. 1952년 설립된 한화는 12년 뒤부터 불꽃놀이(연화) 사업을 시작한다. 서울아시안게임, 서울올림픽 개막식 등의 불꽃놀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불꽃놀이가 ‘축제’는 아니었다. “1989년 캐나다 몬트리올의 국제불꽃축제에 참가했는데, 관광객들로 도시가 마비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불꽃이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불꽃축제를 준비했다. 하지만 예산, 스폰서, 사회 분위기 등의 조건이 충족되기까지 10년 넘게 걸렸다.” 불꽃축제 역사의 ‘산증인’인 한화 불꽃프로모션팀 손무열 상무의 회고다.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분위기를 띄우는 차원에서 시작한 2000년 서울세계불꽃축제가 첫 시험대였다. 행사 첫날, 시작이 1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63빌딩 앞엔 1만여 명밖에 모이지 않았다. “행사가 어렵겠다”고 낙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이 몰려들더니, 16만 명이 모였다. 4주간 주말마다 이어진 마지막 행사 때는 100만 명을 넘어섰다.

손 상무는 “하늘에 수많은 돈을 날린다, 환경을 오염시킨다 등의 비판도 있다. 하지만 불꽃으로 새로운 문화공간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자부한다. 불꽃축제는 화약으로 큰 기업이 국민에게 수익의 일부를 돌려준다는 의미에서 사회공헌 사업이다. 또 축제를 통해 관광객을 끌어들여 지역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소리 파형에 맞춰 모양 입력

지난 11월19일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 본사에서 불꽃축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일부 맛봤다. ‘불꽃이야 폭죽처럼 그냥 쏘면 되는 거 아닌가?’ 무지함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불꽃축제는 종합예술이다. 밤하늘이 무대고, 불꽃은 배우였다. 어떤 색깔의, 어떤 형태의 배우를 쓸 것인지, 어떤 배경음악을 깔 것인지를 정하는 사람은 연출가였다. 그 연출가는 ‘불꽃디자이너’ ‘연화사’라고 불린다. 국내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5년째 불꽃디자인을 해온 윤두연 매니저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미술가다.

그렇다고 불꽃을 ‘그리는’ 건 아니다. 모든 과정은 치밀하고도 세세한 컴퓨터 입력 작업으로 진행된다. 우선 공연의 밑그림을 짜는 첫 번째 단계는, 배경음악 선정이다. “충남 대천해수욕장에서 열리는 그린그루브페스티벌엔 젊은 관객이 많다. 그래서 유행하는 클럽 음악의 빠른 비트에 맞춰 아기자기한 불꽃으로 꾸몄다. 서울세계불꽃축제에선 등 서울을 주제로 한 음악을 많이 쓰는 편이다. 올해 포항불꽃축제에선 영화 의 OST를 쓰고 싶었는데, 캐나다팀이 같은 음악을 선정해서 바꿨다. 불꽃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비트의 음악이 있다.” 윤두연 매니저는 설명과 함께, 컴퓨터에 깔린 불꽃놀이용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열어 보여줬다. 이 프로그램에 배경음악을 입력하면, 소리의 파형이 그래프로 표시된다. 여기에 맞춰, 어떤 불꽃을 쏠 것인지를 결정한다.

불꽃의 종류는 다양하다. 둥근 모란꽃, 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국화, 나이아가라 폭포, 곰돌이와 고양이 얼굴, 하트 모양. 각각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발사포 위치에 따라서도 종류가 나뉜다. 지상이나 강·바다에 띄운 바지선에서 쏘아올려 50~60m 높이에서 아기자기하게 터지는 ‘장치연화’와, 80m 이상의 높은 하늘에서 시원하게 터지는 ‘타상연화’가 있다. 윤 매니저는 초 단위로 어떤 불꽃을 넣을지를 하나하나 기호로 입력했다. 그 기호들은 이를테면 ‘공연 시작 뒤 1분28초10프레임에는 노란 국화 모양의 불꽃을 100m 높이에서 10발 연달아 쏘라’는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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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서 꽃이 얼마나 크게, 어떤 형태로 만개하는지는 ‘연화’에 달려 있다. 연화는 화약과 각종 원료들을 공처럼 만든 것이다. 종이를 몇 장 겹쳐서 동그랗게 싼 연화 안에는 검은 화약을 목화씨나 왕겨, 수수 등과 섞은 구슬 모양의 ‘별’이 100~1천 개씩 들어간다. 이 별이 어떤 방향으로 터지느냐에 따라 불꽃 모양이 달라진다. 불꽃의 색을 결정하는 것은, 검은 화약 속에 어떤 금속물질을 섞어 반죽하느냐다. 리튬은 빨강, 나트륨은 노랑으로 표현되는 식이다. 또 숯가루를 섞으면 불꽃이 꼬리를 끌며 올라가고, 알루미늄가루 등을 첨가하면 ‘천둥’과 같은 강력한 폭발음을 더할 수 있다. 연화의 지름이 커질수록 하늘에서 터지는 불꽃의 크기도 커진다. 이제껏 쏘아올린 최대 크기의 불꽃은 축구장 5개를 이어붙인 500m까지 퍼졌다. 연화 제조 작업은 일일이 사람 손길이 미쳐야 하는데다 위험해서, 대부분 중국 사업장에 주문생산하거나 유럽·일본산을 수입해 쓴다. 윤두연 매니저는 “화약 냄새를 바꾸는 연화 개발도 시도하고 있다. 커피·꽃 냄새 등을 아로마로 넣어서 계속 테스트 중”이라고 귀띔했다.

커피향 불꽃, 전통 문양 불꽃…

보기엔 아름다워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을 다뤄야 하는 이들은 늘 초긴장 상태다. 축제 당일엔 화약 전문 기술자들이 총동원된다. 관객과의 안전거리를 생각해, 물 위에 배를 띄우고 땅 위에는 컨테이너를 설치한다. 이곳엔 수백 대의 컴퓨터와 연화를 넣어 쏘는 발사포가 놓인다. 불꽃축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리허설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손무열 상무는 행사를 앞두고 악몽을 많이 꾼다고 했다. “100만 명이 모여 있는데 컴퓨터에 에러가 나서 불꽃을 못 쏘는 거다. 실제로 컴퓨터 에러는 종종 발생한다. 그래서 예비 발사포와 교체 컴퓨터 설치는 필수다.” 요즘 한화는 불꽃축제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 중이다. 문범석 매니저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함께 몇 가지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태극·연꽃 등 우리나라 전통 문양의 불꽃, 지금까지 국내에 없던 발사 시스템과 프로그램 제작 소프트웨어, 불꽃쇼 3D 시뮬레이터 등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불꽃은 완성되는 순간, 소멸하기에 황홀하다. 이제 올해의 축제는 끝났다. 하지만 황홀했던 찰나는 영원으로 기억되고, 기억은 오래 지속된다. ‘왕궁의 불꽃놀이’가 아니라 ‘모두의 축제’라서 다행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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