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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길 닿는 곳 어디나

국내 포털 독보적 1위 네이버의 ‘비밀’… 눈동자나 동공 크기 변화 측정해 사용자 시선 추적하는 ‘아이트래킹’기술의 힘
등록 2013-11-15 14:50 수정 2020-05-03 04:27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본사 20층에 있는 ‘아이트래킹’ 실험실. ‘비밀의 거울’을 사이에 두고 실험실과 모니터실이 붙어 있다. ‘아이트래커’ 앞에서 실험하는 연구원(여자)의 모습이 유리 너머로 보이고, CCTV 화면을 통해 옆방 실험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다른 연구원(남자)의 모습이 유리에 비쳤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본사 20층에 있는 ‘아이트래킹’ 실험실. ‘비밀의 거울’을 사이에 두고 실험실과 모니터실이 붙어 있다. ‘아이트래커’ 앞에서 실험하는 연구원(여자)의 모습이 유리 너머로 보이고, CCTV 화면을 통해 옆방 실험실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다른 연구원(남자)의 모습이 유리에 비쳤다.

휴대폰을 귓바퀴에 대거나 손에 잡을 때, 딱딱하고 차가운 기계 대신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손의 촉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다면 우리의 일상이 조금쯤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시각 촉각 청각이 한 손 안에 쏙 들어오게 구현되는 이 특별한 사물에 후각의 풍미를 더할 수 있어도 좋겠다. 이를테면 갓 지은 밥 냄새, 갓 구운 빵 냄새, 갓 볶은 커피 냄새, 막 머리를 감은 연인의 신선한 머리카락 냄새 같은 것이 풍기는 휴대폰! 나는 상상을 통해 불러일으킨 후각에 이어 다시 미각을 발전시킨다. 오고 간 말들의 질감에 따라 달디달거나 소태같이 쓰거나 닝닝하거나 짜디짠 여러 가지 맛들이 순간 저장되는 휴대폰! ()


정보 어떻게 보나, 광고 어떻게 건너나

하루 종일 만지작거리는 두 녀석이 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 녀석들이 내뿜는 발열작용에 체온까지 더해져 차디찬 금속성 물체들은 어느새 후끈거리고, 나는 손에 쥔 녀석들이 땀으로 끈적거릴 때까지 붙들고 있는다. 기자라는 직업의 숙명이다. 그 녀석들 위에 가장 많이 띄우는 화면이 포털 검색창이다. 관련 기사를 찾고, 사람을 찾고, 아리송한 날짜와 장소를 찾고. 하루에도 수백 번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한다. 이 과정에서 ‘말랑말랑한’ 감각이 끼어들 틈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끼어든다. 내 눈이 어디를, 얼마나 오래 바라보는지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디로 옮겨가는지. ‘시각’이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을 철저하게 분석한다. 그 결과에 맞춰 인터넷 화면 구성 방식을 끊임없이 바꾼다. 국내 포털업체들은 한국인의 눈에 먹음직스럽게 정보를 담아내려고 분투 중이다. 국내 토종 검색엔진의 시장점유율은 95%가 넘는다. 한국은 ‘구글 천하’에 놓이지 않은 세계 몇 안 되는 나라다.

한국 사람 10명 가운데 7명은 ‘초록 검색창’을 이용한다. 네이버는 국내 인터넷 검색서비스 시장의 독보적인 1위(시장점유율 73%)다. ‘독점’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네이버 규제법’까지 들고나왔다. 검색의 공정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초록 검색창’을 연다. 사용자의 시선을 잡아두는 ‘비밀’은 뭘까

지난 11월5일, 그 비밀을 살짝 엿볼 수 있 는 공간을 찾아갔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네이버 본사 20층. 천장까지 빼곡히 책들이 꽂혀 있는 책장 사이에 ‘비밀의 방’이 있다. 방 안에는 기다란 테이블 하나와 컴퓨 터 하나만 덜렁 놓여 있을 뿐. 그런데 컴퓨 터는 컴퓨터이되, 다르다. 토비(Tobii)라는 스웨덴 전문업체가 만든 ‘아이트래킹’ 장치 다. ‘아이트래커’라고 부르는 이 기기는 언뜻 데스크톱 PC와 비슷해 보이지만, 한 대당 가격이 5천만원인 ‘비싼 몸’이다.

아이트래킹이란,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동공의 크기 변화를 측정해서 사용자의 시 선을 추적하는 기술이다. 1950년대 실험심 리학 분야에서 처음 도입됐는데, 지금은 제 품 개발이나 마케팅 등에 다양하게 응용되 고 있다. 네이버는 2005년부터 아이트래커 를 구입해 직접 연구·실험을 해왔다. 사용 자의 ‘눈’으로 직접 검색·광고 등의 서비스 를 톺아보고, 사용자의 패턴에 맞춤한 서 비스를 내놓기 위해서다. 네이버 메인 화면 이 3단에서 2단 레이아웃으로 바뀌고, 블로 그·뉴스·이미지 등으로 구분된 검색 결과 ‘탭’이 상단에서 왼쪽으로 옮겨진 것도 다 아 이트래킹을 반영한 결과였다. 김효정 네이 버 UX(사용자경험)실장은 “중요한 개편을 앞두고는 20~30명의 외부 실험자들을 데 려다가 실험한다. 정보를 어떻게 보는지, 광 고는 얼마나 건너뛰는지 등을 두루 분석해 서 서비스에 바로 반영한다”고 말했다.

다음, 네이트 외 제조업체도 따라나서

직접 실험에 참여해봤다. 아이트래커 앞 에 앉자, 모니터 아래쪽에서 전기레인지 화 구를 축소해놓은 듯한 빨간 동그라미 4개 가 깜박인다. 눈동자를 잡아내려는 근적 외선이다. 내 눈동자가 화면 위를 가로질 러 움직이는 ‘빨간 점’을 좇는 동안, 근적외 선은 내 눈동자의 ‘추적자’가 된다. 라식수 술을 했거나 안경을 낀 사람은 정확한 실 험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실험 대 상은 홈페이지. 지난호 기사들 을 위주로 클릭해서, 5분가량 기사를 훑어 봤다. 아이트래킹 분석 소프트웨어를 이용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그래프 형태로 ‘시 선의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다. 오랫동안 시선이 머문 부분은 빨갛게, 잠시 스쳐지나 간 부분은 연두색 얼룩으로 표시된다. 또 1→2→3→4 등 숫자를 잇는 화살표로 시선 이 움직인 경로를 보여준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였다. 왼쪽 윗부분만 ‘붉은’ 얼룩이 덕지덕지했다. 화면 왼쪽 위부 터 시선이 가고, 알파벳 ‘제트’(Z)의 형태로 왼쪽에서 오른쪽 아래로 시선이 흐른다는 ‘구텐베르크’ 법칙에 충실했던 셈이다. 그러 나 모든 아이트래킹 결과가 ‘판박이’는 아니 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목적이 정보 검색인 지 쇼핑인지에 따라 아이트래킹 양상은 다 르게 나타난다. 또 같은 정보 검색이라고 해 도, 어떤 사람은 맨 아래 검색 결과까지 다 훑어본 다음 원하는 정보를 클릭하고, 어떤 사람은 2~3개 결과만 살펴본 다음 바로 클 릭해서 다른 창으로 넘어간다.” 김현수 네이 버 검색UX팀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보통 아이트래킹 실험을 할 때는 ‘축농증 민간요 법’ ‘신발 냄새 없애는 법’ 따위의 정보를 찾 는 과제를 주고 이용 패턴을 분석한다. 김 책임연구원은 “그래프뿐만 아니라 실험 중 간중간에 나타나는 표정 변화나 마우스의 움직임 등도 중요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함께 분석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트래킹 실험실 한쪽 벽면에는 ‘비밀의 거울’이 붙어 있다. 경찰이나 검찰 취조실에서나 볼 법한, 한쪽에선 거울처럼 보이지만 반대쪽에선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리로 된 거울이다. 실험실과 바로 붙 어 있는 옆방 벽에 모니터 9대가 부착돼 있 다. 실험실에 달려 있는 4대의 폐쇄회로텔레 비전(CCTV)과 연결된 모니터다. 실험 과정 에서 연구원들은 “왜 이때 이 버튼을 클릭 하셨죠” “어떤 점이 불편했나요” 등을 실 험자에게 묻는다. 옆방에선 이런 대화와 실 험자들의 표정 변화 등을 모두 관찰하고 기 록한다. 이 결과들이 모여 서비스 개선에 반 영된다. 인지과학·산업디자인·금속공예 등을 전공한 UX실 연구원 43명이 관련 연 구에 매달리고 있다. 김효정 UX실장은 “최

근엔 모바일 화면 실험을 많이 하고 있다. 몇 가지 샘플을 아이트래킹 해보면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구성이 있고, 여기서 인사이트(통찰)를 얻는다. 이달 중에 모바일 아이트래커도 수입해올 예정”이라고 밝혔다.

네이버 UX실 연구원들이 ‘아이트래킹’ 실험실에 설치된 CCTV 앞에서 저마다 자세를 취했다. 실험실 바로 옆방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나오는 이들의 모습을 다시 카메라로 찍었다.

네이버 UX실 연구원들이 ‘아이트래킹’ 실험실에 설치된 CCTV 앞에서 저마다 자세를 취했다. 실험실 바로 옆방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나오는 이들의 모습을 다시 카메라로 찍었다.

다른 국내외 검색서비스 업체들도 아이트래킹을 도입하고 있다. 다음은 2007년 아이트래커를 구입한 데 이어, 2011년 모바일 아이트래커도 구비해서 서비스 개선에 활용 중이다. ‘네이트’를 운영하는 SK커뮤니케이션즈는 2009년부터 외부 업체에 의뢰해 아이트래킹 분석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구글 본사는 2011년 모바일과 데스크톱을 이용한 인터넷 방문자의 검색 패턴을 비교분석한 아이트래킹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제조업체들도 예외는 아니다. 기아자동차는 K7 출시를 앞두고,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팀과 함께 아이트래킹 실험을 했다. 알파벳과 숫자를 조합한 차 이름을 여러 가지 늘어놓고 소비자 200명에게 ‘어울리는 형용사’를 고르도록 해서, 형용사를 고를 때 소비자들의 시선 이동을 분석해 ‘본심’을 읽어내는 방식이었다.

기사에도 아이트래킹 적용해보면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시선’을 잡아둬야 하는 걸로 치자면, 언론도 포털 못지않게 절박하지 않나. 기사에도 아이트래킹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독자들이 내 기사의 어느 문장쯤에서 시선을 돌리는지, 어떤 재미없는 문장을 건너뛰며 읽는지. 인터넷 ‘클릭’ 수로는 확인되지 않는 반응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김선우의 에세이처럼 다시 미각을 발전시킨다. 기사가 다디단지, 닝닝한지 확인해주는 ‘맛트래킹’은 불가능하려나. 아니, ‘모르는 게 약’이려나.

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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