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통통하게 오른 제철 새우의 머리와 껍질을 깨끗하게 다듬는다. 새우의 물기를 쫙 뺀 뒤 소금과 후추로 밑간한다. 밀가루를 묻힌 새우는 달걀물에 푹 담갔다가 코코넛가루를 살살 뿌려준다. 스마트오븐에 넣어 180℃에서 15분가량 구워준다. 새우가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짬을 이용해 요리 하나 더. 탱글탱글한 옥수수콘에 파프리카와 양파 등 갖은 채소를 깍둑 썰어 비벼준다. 마요네즈·설탕·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치즈를 듬뿍 올린다. 역시 스마트오븐에서 10분간 구워준다. 1시간 남짓 사이 패밀리레스토랑에서나 팔 것 같은 ‘코코넛쉬림프’와 ‘콘치즈’가 완성된다. 기름 한 방울 없이도 바삭바삭해진 코코넛쉬림프는 달큰한 스위트칠리 소스를 꾹 찍어 먹고, 영양 만점인 콘치즈는 고소한 치즈를 쭉쭉 늘려가며 먹는 게 제맛이다.(요리·육아 블로그, ‘햇살 한 스푼의 따뜻한 밥상’ 참고)
요리노동 해방 앞당기는 대표 공신요리가 똑똑해지고 있다. 음식이 식탁에 오를 때까지 불과 기름 앞에서 씨름해야 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다. 간단한 재료와 버튼 하나만 있으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음식이 수두룩하다. 요리노동의 해방을 앞당기고 있는 대표 공신은 ‘스마트오븐’이다. 생김새는 전자레인지와 비슷한데, 메뉴와 분량만 선택하면 케이크·찜·구이·반찬·튀김까지 자동으로 요리해주는 조리기기다. 그중에서도 삼성전자의 스마트오븐은 독보적이다. 국내에 출시된 모델만 13가지나 된다. 자동조리가 가능한 음식은 모델에 따라 60~200개에 이른다. 처음 출시된 2006년만 해도 손으로 ‘자동조리’ 버튼을 눌러야 했지만, 지금은 집 밖에서 와이파이로 음식 레시피를 전송하면 자동요리를 시작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 덕에 국내에서 많이 팔리는 것은 물론, 세계 60개국으로도 수출된다. 전자제품은 편의성도 중요하지만 조리기기의 생명은 역시 맛일 터다. 삼성의 스마트오븐이 전세계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은 비결은 뭘까.
2013년 12월19일 궁금증을 풀기 위해 경기도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개발팀 식문화연구소를 찾았다. 김현숙 수석연구원은 스마트오븐의 개발 목표가 “각 음식마다 최소의 시간으로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최적의 조리 방식을 알아내는 데 있다”고 했다. 바꿔 말하면 짧은 시간 내에 음식의 풍미를 극대화하는 열원을 찾는 게 개발의 핵심이라는 의미다. 스마트오븐에는 오븐과 전자레인지 기능 등이 복합적으로 탑재된 만큼, 열원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오븐 안 뒤쪽에는 빵이나 쿠키 등을 만드는 베이킹 용도의 히터가 있다. 이 히터의 팬에서 나온 열풍은 비교적 낮은 온도로 식재료를 은근하게 익힌다. 반면 오븐 위에 달린 그릴 히터는 고열로 빠른 시간 안에 생선 등을 굽는 데 적합하다. 식재료 속 수분을 진동시켜 짧은 시간 안에 식재료를 가열하는 마이크로웨이브도 있다. 이 다양한 열원들을 식재료의 특성에 맞춰 어떻게 혼합하고, 얼마나 쏘이느냐에 따라 음식의 완성도가 좌우된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스마트오븐으로 고구마 굽기 메뉴를 누르는 순간 자동으로 25분간의 조리가 결정되는데, ‘그릴 히터와 마이크로웨이브 열원으로 25분간 익혔을 때 최고의 고구마 구이가 만들어진다’는 알고리즘이 작동한 결과다.
소비자는 이 복잡한 과정으로 탄생한 음식을 맛으로 간단하게 평가한다. ‘맛있다’거나 ‘맛이 별로’라고 하면 끝이다. 이때 맛이란 음식을 먹을 때 혀의 세포가 느끼는 감각만을 뜻하지 않는다. 눈과 코로도 음식을 먹기 때문이다. 연구소가 다수의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오감을 표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김현숙 수석연구원은 “우리가 찾아낸 최적의 맛에 대한 평가는 전체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외관·온도·맛 등으로 쪼개 따져보기도 한다”고 했다.
일단 소비자의 입을 즐겁게 하려면 음식의 식감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 우리의 ‘미각’은 음식에 따라 기대하는 쫄깃함과 촉촉함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겉은 바삭하면서 안은 수분으로 가득한 전기통닭을 평균적으로 맛있다고 느낀다. 연구원들은 이 식감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열과 스팀의 혼합 방식과 조리 시간을 찾아낸다. 무엇이 한국인이 좋아하는 쫄깃함과 촉촉함인지는 연구원의 입에 달려 있다. 연구소에 소속된 연구원 8명 모두가 식품영양학이나 식품공학 전공자라서 표준적인 맛을 찾는 데는 전문가들이다. 여기에 최고급 호텔 주방장의 입을 빌리기도 하고, 여러 소비자들의 맛 평가를 거치기도 한다.
국가별로 조리 방식·시간 제각각같은 음식이라도 국가별로 최적화된 조리 방식과 시간은 제각각이다. 식문화에 따라 선호하는 식감이 달라서다. 가령 스테이크가 있다. 프랑스 소비자들은 피가 흐를 정도로 덜 익힌 상태를, 이란은 씹기 힘들 정도로 질긴 상태를 맛있다고 느낀다. 이렇게 지역별로 고유한 레시피를 스마트오븐에 최대한 담아내기 위해 삼성전자는 해외 현지에도 연구소를 두고 있다. “수출용도 국내에서 85%는 개발된다. 그러나 현지에서 반드시 검증하는 과정을 거친다. 국가별로 독특한 식습관이 있고 식재료도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산 닭은 날씬하지만, 유럽산 닭은 통통하다. 조리를 다르게 해야 한다. 현지에서 보내준 데이터를 반영하면 최종 제품이 나온다.” 김현숙 수석연구원의 말이다.
‘시각’적인 요소들도 맛을 더하거나 뺀다. 음식이 먹음직스럽지 않으면 맛에도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육즙이 가득한 돈가스가 있다 해도, 표면의 색이 하얗다면 손이 가지 않게 마련이다. 시각은 미각과 달리, 맛깔스러운 색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음식 색의 기준이 되는 색상표(NCS Shade chart) 덕분이다. 빵·쿠키 등 베이킹 요리에 흔히 쓰이는 갈색은 채도에 따라 4~16구간으로 나뉜다. 토스트를 예로 들면, 전혀 구워지지 않은 상태가 4가 되고, 까맣게 탄 상태가 16이 된다. 이 중 ‘골든 브라운’이라고 불리는 8~10 구간이 소비자가 가장 맛있다고 느끼는 색감이다. 조리된 음식이 골든 브라운을 띠고 있는지는 디지털 이미지 시스템을 통해 확인한다. 윤민지 선임연구원의 설명은 이렇다. “컵케이크의 색이 맛있게 나왔는지를 테스트한다면, 윗부분을 13개로 나눈다. 각 구역의 값을 넣었는데 평균 9.5가 나왔다. 13등분이 모두 8~10 안에 들었다는 의미다. 그러면 합격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리 시간을 줄이거나 늘려 색을 조절한다.”
스마트오븐에 튀김 기능 최초 추가음식의 온도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 온도에 따라 잘 익는 영양소가 다르기 때문이다. 56℃부터 변성되기 시작해 4℃씩 올라갈 때마다 식감이 단단해지는 단백질이 대표적이다. 온도를 높이거나 낮춰서도 식감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위생에도 온도는 중요하다. 정진호 선임연구원은 “온도는 미생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닭다리는 온도가 낮으면 식중독 미생물이 생겨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재료에 따라 특정 온도 이상으로 가열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마트오븐의 ‘웰빙 튀김’ 기능에는 지금까지 연구소가 쌓아온 개발 노하우가 집약돼 있다. 소비자의 오감 만족은 물론 건강까지 챙긴 작품이다. 복잡한 튀김 기구와 부담스러운 기름 없이도 노릇노릇한 튀김을 만들 수 있는 덕분이다. 고유의 기름을 간직한 식재료를 강한 열풍에 노출시켜 바삭하게 익히는 방식이다. 2012년 말 처음 선보인 뒤 2013년에 성능을 또 개선했다. 다른 회사에도 웰빙 튀김이 가능한 에어프라이어(공기튀김기)가 있지만, 스마트오븐에 튀김 기능을 추가한 건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김현숙 수석연구원은 기름을 쓰지 않은 덕에, 웰빙 튀김을 먹으면 지방 섭취가 일반 튀김보다 20~80% 감소하는 것으로 나왔다”고 했다.
최적의 맛을 살린 조리기기를 개발하는 연구원들이 겪는 고충도 적지 않다. 조리 실험 결과로 나온 수많은 음식을 씹고 뜯고 맛봐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소에서는 1년에 쇠고기·돼지고기 1t, 닭 1천 마리, 달걀 7천 개, 감자 2천 개는 거뜬히 쓴다고 하니, 연구원들의 입과 눈과 손을 거쳐야 하는 음식의 양도 어머어마할 수밖에 없다. 구선희 책임연구원은 “처음에는 멋모르고 다 먹었다가 체중이 많이 불었다.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식감이나 육즙 테스트를 한 뒤 뱉기도 한다”고 했다. 김현정 선임연구원의 처지도 비슷하다. “먹는 데도 한계가 있다. 가끔은 실험을 한 뒤 폐기하거나, 씹기만 하고 삼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의 수고는 덜어주고 오감은 만족시켜준 똑똑한 조리기구의 비결이 연구원들의 우직한 노력은 아닐까.
수원=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