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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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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침이 고이는 빵의 쫄깃 값은?

기계가 감지해낼 수도 객관적인 수치를 만들 수도 없는
오감을 위해, 맛 패널 훈련하는 SPC 센서리랩
등록 2014-02-22 13:47 수정 2020-05-03 04:27
지난 2월10일 서울 서초구 SPC그룹 센서리랩에서 오감이 탁월한 직원들로 구성된 ‘맛표준위원회’가 빵의 외관, 향, 식감을 평가하고 있다. 이 평가를 토대로 빵의 ‘오감 규격서’가 작성된다.

지난 2월10일 서울 서초구 SPC그룹 센서리랩에서 오감이 탁월한 직원들로 구성된 ‘맛표준위원회’가 빵의 외관, 향, 식감을 평가하고 있다. 이 평가를 토대로 빵의 ‘오감 규격서’가 작성된다.

눈은 휘둥그레지고, 코는 벌름거렸다. 입안에 침이 고이고,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빵을 인지한 몸의 반응은 ‘무조건반사’에 가까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월10일 찾아간 서울 서초구 SPC그룹 이노베이션랩 산하 센서리랩(Sensory Lab·관능평가실)의 회의실 탁자 위에는 시중 파리바게뜨에서 판매 중인 빵 20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소금물을 나트륨 함량순으로 늘어놓으시오

겉모습은 까만 모카빵이되 찹쌀 덕에 식감은 떡처럼 쫀득한 ‘우리찹쌀 모카 찰떡빵’부터 고소한 호두와 진한 크림치즈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크림치즈 호두빵’, 먹기 좋게 길쭉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온 추억의 빵 ‘스틱 소보루’, 꽈배기로 꼬아진 페이스트리에 초콜릿칩이 듬뿍 박힌 ‘초코칩트위스트’, 부드럽고 달콤한 연유크림을 가득 넣은 식빵 모양의 ‘후레시크림샌드빵’까지, “나를 집어주세요”라며 매력 경쟁을 벌이는 듯했다.

들뜬 건 혼자였다. 이날 센서리랩에 마련된 갖가지 빵은 ‘맛표준위원회’ 소속 패널의 훈련에 쓰일 ‘교구’이기 때문이다. 맛표준위원회는 SPC 본사에 근무하는 직원 1200여 명 가운데 ‘맛 평가 패널’로 뽑힌 21명으로 구성돼 있다. 선발 기준은 탁월한 오감이다. 국내 1위 제과·제빵 기업인 SPC에서 생산되는 빵과 음료 등 제품의 종합적인 맛을 느끼고 평가할 중대한 임무가 부여되는 까닭이다. 이미 이들은 다양한 테스트를 통과해 SPC의 눈과 입과 코가 될 자질을 인정받았다. ‘미각 테스트’에선 당과 나트륨 함량이 다른 설탕물과 소금물을 각각 농도순으로 정확히 늘어놨고, ‘향 테스트’에선 냄새만 맡고는 제품 원료를 단번에 맞혔다. SPC가 신입사원을 뽑는 실무면접의 하나로 10년째 실시해오고 있는 ‘관능평가’보다는 난이도가 높은 테스트다. 이러한 평가를 넘어 정식 패널이 된 뒤에도 일주일에 한 번 1시간~1시간30분씩 오감을 극대화하고 이를 말로 표현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날 훈련엔 해외법인팀, 협력사관계관리(PRM)팀, 경영기획실, 품질경영팀 소속 4명의 패널이 참여했다. 먼저 시각을 단련하는 외관 훈련 테스트. 센서리랩의 이두원 주임연구원이 ‘후레시크림샌드빵’을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지난번 공유했던 각 빵의 (외관 색상) 척도를 보겠습니다. (가장 밝은) ‘우리 쌀 식빵’이 1, ‘고소한 핑거스틱’이 4, ‘단팥빵’ 7, ‘초코머핀’이 (가장 어두운) 10이었죠. 그러면 이 빵의 수치는 얼마일까요?” 빵을 찬찬히 살펴보던 한 패널이 답했다. “고소한 핑거스틱과 단팥빵 사이니까, 5~6 정도 되겠네요.” 다음은 향 훈련 테스트. 과일, 허브, 고무, 구운 아몬드 등 40개의 냄새가 각각 담긴 작은 병이 패널들에게 지급됐다. “살짝 냄새를 맡은 뒤 슬라이드 화면에 있는 향기의 고유번호와 병 뚜껑에 적힌 고유번호가 일치하는지 확인해주세요.” 이 주임연구원이 요청했다. 잠시 뒤 한 패널이 말했다. “약품 냄새가 나는데요. 35번요.” 정답이었다.

전국 매장과 양산빵 공장의 기준 만들기

훈련이 끝나면 곧바로 제품 평가가 이어진다. 패널들이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있는 책상에 앉았다. 앞에 놓인 컴퓨터에 접속하자, ‘치즈브레드’가 제공됐다. “제품의 짠맛은 어느 정도인가요?” “제품의 탄향은 어느 정도인가요?” “제품의 껍질 두께는 어느 정도인가요?” 패널들은 치즈브레드의 맛, 모양, 향, 식감을 묻는 질문에 대해 ‘매우 약하다’와 ‘매우 강하다’ 사이에서 대답한다. 이들의 답변은 치즈브레드에 대한 객관적인 관능평가 통계로 센서리랩 중앙 서버에 저장됐다. 지난 1년간 센서리랩에서 패널 훈련을 받아온 김정희 BR코리아 품질경영팀 과장은 “평소 맛에 대한 관심은 많았는데 표현하는 기준을 몰랐다. 지금은 어느 정도 짜고 단지, 좀더 객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SPC가 직원의 오감을 개발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는 뭘까. 김정우 센서리랩 수석연구원은 “관능적인 분야에서 제품의 규격을 만들어내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을 풀면 이렇다. 사람이 식품을 먹을 때 느끼는 미각·후각·시각·촉각·청각 등 오감은 기계가 오롯이 감지해낼 수 없다. 자동차나 전자제품의 ‘제원’처럼 객관적인 표준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SPC는 삼립·샤니 제품인 양산빵(공장에서 완제품으로 만들어지는 빵)과 파리바게뜨의 원료·반제품을 만드는 공장을 10개나 보유하고 있다. 파리바게뜨 매장만 3250개에 이른다. 다른 공장, 다른 가맹점에서 만들어지는 빵이 똑같은 맛을 내려면 빵에도 제품별 규격이 필요한 것이다. 1년 전, 객관적으로 자신의 감각을 표현할 줄 아는 직원 패널을 길러낸 뒤 이들을 통해 빵의 기준을 만드는 역할이 센서리랩 소속 연구원 6명에게 주어진 이유다. 김 수석연구원은 “1945년 창립 때부터 이어져온 SPC의 품질 경영 기조가 2010년 ‘맛 경영’으로 강화됐다. 맛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정하기로 한 뒤 센서리랩이 만들어졌다. 그 뒤 마케팅·개발실 등에 나뉘어 있던 관능평가 업무가 센서리랩으로 통합됐다”고 설명했다.

오감을 수치로 전환하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그나마 미각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기계로 당·나트륨 함량이나 산도(pH)를 분석해 단맛·짠맛·신맛 등을 숫자로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빵이 입안에 머물고 씹히는 주관적 느낌인 식감이 문제였다. 센서리랩 연구원과 직원 패널들이 머리를 맞댔다. 일단 빵의 식감을 담아내는 표현으로 쫄깃함, 입안에서 뭉치는 정도, 수분감 등을 정했다. 그리고 다른 식품과의 상대평가를 통해 수치화를 시도했다. 쫄깃함이란 식감을 예로 들어보자. 부드러운 크림치즈의 쫄깃함은 1, 마시멜로는 4, 메추리알은 6, 젤리는 9로 단계별 기준을 정한다. 빵을 먹었는데 마시멜로보다 쫄깃하지만 메추리알보다는 덜하다면, 이 빵의 쫄깃함은 5가 되는 방식이다.

수분감, 바삭함, 입안에서 뭉침, 쫄깃함…

후각은 난이도가 더 높았다. 사실 빵의 냄새는 소비자에게 가장 민감한 자극이다. 길거리를 걷다가 어디선가 고소하고 달큰한 빵 냄새가 풍겨온다면 왠지 마음이 평온해지기까지 한다. 빵 굽는 냄새가 인간의 친절도를 높인다는 한 프랑스 대학의 연구 결과도 있다. 손수건을 옷가게보다 빵가게 앞에 떨어뜨렸을 때, 지나가던 행인이 도움을 더 많이 줬다는 것이다. 그만큼 센서리랩도 빵의 고유한 냄새에 관한 기준을 만드는 데 골몰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빵의 고소한 풍미를 땅콩향·버터향·누룽지향 등으로 세분화하고 그 정도를 수치로 나타내고 있다.

‘맛표준위원회’ 소속 직원들이 센서리랩의 컴퓨터에 빵에 대해 느낀 오감을 입력하고 있다. 센서리랩이 가동된 뒤 6개월 동안 50개의 빵·케익 규격서가 완성됐다.

‘맛표준위원회’ 소속 직원들이 센서리랩의 컴퓨터에 빵에 대해 느낀 오감을 입력하고 있다. 센서리랩이 가동된 뒤 6개월 동안 50개의 빵·케익 규격서가 완성됐다.

이런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한 장의 빵 규격서가 완성된다. ‘정통 크라상’의 경우 0~10으로 수치가 매겨진 ‘관능품질 규격’의 항목은 껍질색의 어두움, 수분감, 바삭함, 입안에서의 뭉침, 쫄깃함, 바닐라향, 캐러멜향 등 15개나 된다. 가로·세로·높이·중량 등 9개의 ‘일반 품질 규격’ 항목만 간단히 적혀 있던 1년 전의 규격서와 비교하면 훨씬 풍부해진 것이다. “이젠 신제품이 출시되려면 센서리랩을 꼭 거쳐야 한다. 마케팅 부서에서 신제품 콘셉트를 잡으면 제빵 기술자로 이뤄진 개발실에서 그에 맞는 가장 맛있는 빵을 만든다. 이때부터 달라졌다. 이제는 출시 전에 센서리랩에 가져온 뒤 맛평가위원회 소속 패널의 입과 눈과 코로 맛 표준을 만든다.” 김 수석연구원의 말이다.

오감의 섬세한 기준을 만든 뒤 매장의 품질이 개선되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바삭한 부추고로케’가 대표적 사례다. 이 빵은 고로케(크로켓)에 소보로를 토핑해 달콤한 맛과 바삭한 식감을 더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센서리랩에서 매장 간 제품을 수거해 관능평가한 결과, 소보로 토핑의 양과 분포된 상태에 따라 바삭한 식감에 차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됐다. 그 뒤 가맹점을 상대로 빵을 튀기는 적절한 온도와 시간, 토핑하는 소보로의 정확한 양을 알려주는 교육이 진행됐다. 덕분에 소비자는 어느 매장을 방문하든 맛있는 부추고로케를 맛볼 수 있게 됐다.

목표는 모든 제품의 ‘오감 규격서’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센서리랩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뒤 6개월 동안 50개의 ‘빵·케익 관능품질 규격서’가 세상에 나왔다. 삼립·샤니와 파리바게뜨가 생산 중인 빵이 총 1400개가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첫 단추를 끼운 정도다. 여기에 커피·음료·아이스크림·도넛 등 다른 제품군도 규격화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SPC그룹에서 나오는 모든 제품의 ‘오감 규격서’를 만들겠다”는 센서리랩의 최종 목표는 언제쯤 이뤄질까.

글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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