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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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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입이 즐거운 에일맥주

연구원 60명 3년간 2만6천 시간 연구해 탄생한 에일맥주 ‘퀸’산실 하이트진로 맥주연구소
오감 골고루 자극하며 급성장
등록 2014-01-17 14:38 수정 2020-05-03 04:27
‘퀸즈에일’은 하이트진로 맥주연구원 60명이 3년간 개발에 매달려 2013년 9월에 선보였다. 시음 테스트가 250회가 넘어 연구원이 마신 맥주만 12t에 이른다. 강원도 홍천공장에서 연구원들이 퀸즈에일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하이트진로 제공

‘퀸즈에일’은 하이트진로 맥주연구원 60명이 3년간 개발에 매달려 2013년 9월에 선보였다. 시음 테스트가 250회가 넘어 연구원이 마신 맥주만 12t에 이른다. 강원도 홍천공장에서 연구원들이 퀸즈에일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하이트진로 제공

전북 완주군에 있는 하이트진로 전주공장에선 은근한 단내가 풍겼다. 구릿빛 맥주가 병에 담겨 뚜껑이 닫힌 채 컨테이너 벨트를 타고 흐르자 유럽풍 글씨체로 쓴 ‘Queen’s ALE’이라는 상표가 붙여졌다. 퀸즈에일은 하이트진로가 2013년 9월 국내 대형 맥주업체로는 처음으로 내놓은 에일(Ale)맥주다. 하이트진로 전주공장에선 한 달에 한두 차례씩 라거(Lager)맥주 대신 에일맥주를 만들려고 생산공정을 바꾼다. 1933년 일본 자본으로 우리나라에 맥주공장이 들어선 뒤 8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국내 맥주업체는 라거맥주만 만들어왔다. “국내 에일맥주의 점유율은 1%밖에 안 된다. 대형 제조사가 생산공정을 바꾸며 수요가 적은 맥주를 생산하는 건 모험이다. 하지만 ‘다양성’을 요구하는 소비자에 맞춰 승부를 걸었다.”(신은주 하이트진로 마케팅실장)

상면발효 효모 찾는 게 가장 어려워

에일은 라거와 전혀 다른 맥주다.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된 전통적인 양조 방식을 따른다. 라거맥주는 19세기 중반에 나타난 비교적 근대적인 발명품이다. 라거맥주는 발효통의 밑바닥에서 활동하는 하면발효 효모를 사용하지만 에일맥주는 위쪽에서 활동하는 상면발효 효모를 사용한다. 하면발효는 저온(9~15℃)에서 장시간, 상면발효는 고온(18~25℃)에서 상대적으로 단시간에 이뤄진다. 긴 시간 동안 맥아의 여러 성분이 다 발효되기에 라거는 깔끔하고 상쾌한 맛을 내고, 에일은 짧은 발효 시간 때문에 풍부한 맛과 향을 낸다. 영국과 아일랜드, 벨기에 등에서 인기다.

2010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열린 맥주&브루잉학회(IBD)에 참석한 하이트진로 맥주연구원은 에일맥주에 반했다. 쌉싸름한 맛과 홉의 향, 부드러운 거품, 구릿빛 적갈색 등이 국내 라거맥주와는 확연히 달랐다. 새로운 맥주에 목말랐던 때라 맥주연구소인 덴마크 알렉시아와 기술협약을 맺고 공동개발에 돌입했다. 하이트진로 맥주연구소도 세계 각국에서 70여 종의 에일맥주를 수집했다. “특징을 분석해보니 각 제품마다 좋은 점이 있는 반면 버려아 할 속성도 있었다. 우리는 전통 에일맥주를 만들기로 했다.” 강원도 홍천공장에서 만난 서민교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하면발효 효모만 생산하다가 상면발효 효모를 개발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연구원들은 신제품 발효 실험을 전담하는 ‘파일럿 플랜트’에서 시제품을 제조해 시음하며 가장 맛있는 에일맥주를 만들어낼 효모를 찾아내야 했다. 3600분의 1초까지 촬영할 수 있는 초저속카메라가 효모의 활동을 24시간 관찰했다. 정밀 관찰이 필요했던 이유를 서 연구원이 설명했다. “효모는 발효가 끝나면 서로 뭉쳐 응집한다. 그때 효모를 제거하지 않으면 자가분해해 좋지 않은 향이 맥주에 배게 된다. 효모를 회수할 시점을 정하는 게 기술력이다.”

“유럽 시장에 내놓아도 경쟁력 있다”

맥주연구원 60명이 3년간 2만6천 시간을 연구에 매달렸다. 시음 테스트가 250회를 넘어 연구원이 마신 맥주만 12t에 이른다. 결국 부드럽고 조화로운 맛이 특징인 ‘블론드 타입’과 좀더 강하고 깊은 맛을 내세운 ‘엑스트라비터 타입’의 퀸즈에일이 탄생했다. 신은주 실장은 “일본이나 미국의 에일맥주는 자기 개성을 강조하느라 정통 에일의 맛이 부족한 편이다. 우리는 영국 브랜드를 많이 벤치마킹했다. 전통 에일의 맛과 향을 살리면서 라거에 익숙한 소비자도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전통성에 충실한 맛이라는 의미에서 브랜드명을 ‘퀸’으로 정했다. 게다가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아침 식사 때마다 물 대신 에일맥주를 마실 정도로 에일 애호가였다. 김인규 하이트진로 사장은 퀸즈에일을 “수입 맥주와의 품질 경쟁에서 자존심을 회복하고 국산 에일맥주의 저변을 확대할 신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손봉수 생산총괄 사장도 “오랜 협력관계인 덴마크의 칼스버그 맥주 양조기술자들을 상대로 시제품 품평회를 했는데, ‘유럽 시장에 내놓아도 경쟁력이 있을 만큼 완벽하다’고 얘기했다”고 자랑했다.

퀸즈에일은 오감을 골고루 자극한다. 깊고 짙은 구릿빛 맥주가 튤립 모양의 잔에 따라지면 용솟음치는 기포가 흰색 거품을 만든다. 아로마 홉을 추가한 ‘트리플 호핑 프로세스’를 활용해 꽃과 과실향이 풍부하다. 쌉싸름한 맛과 목으로 넘어갈 때의 시원함, 다 마시고 나면 적당한 포만감이 남는다.

전북 완주군에 있는 하이트진로의 전주공장은 한 달에 한두 차례씩 생산공정을 바꾼다. 라거맥주 대신 에일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다. 지난해 11월20일 전주공장에서 ‘퀸즈에일’이 생산되는 모습.김명진

전북 완주군에 있는 하이트진로의 전주공장은 한 달에 한두 차례씩 생산공정을 바꾼다. 라거맥주 대신 에일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다. 지난해 11월20일 전주공장에서 ‘퀸즈에일’이 생산되는 모습.김명진

오감을 하나씩 뜯어보자. 적갈색은 에일맥주의 전통색이다. 흔히 색이 짙으면 알코올 도수가 높다고 생각하지만 맥주 색깔은 도수와 무관하다. 다만 어떤 맥아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맥주의 원료인 맥아는 맥주보리 낟알을 싹 틔워 볶은 것을 말한다. 많이 볶을수록 짙어진다. 기네스 같은 흑맥주는 태울 정도로 볶은 맥아로 만든다. 영국에서는 흑맥주가 주를 이뤘다. 이보다 옅어서 전통 에일을 ‘페일’(옅은색) 에일이라고 부른다.

적갈색과 시각적 대비 효과를 내는 흰색 거품은 맛에도 영향을 준다. 거품은 맥주의 탄산가스가 날아가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맥주가 공기에 닿아 산화하는 걸 억제하는 뚜껑과 같은 역할을 한다. 또 시원하고 상쾌한 맛과 쌉쌀하고 짜릿한 맛을 제공한다. 입술과 닿을 때는 특유의 부드러운 감촉도 만든다. 따라서 거품이 꺼지기 전에 맥주를 마시는 게 좋다. 튤립 모양의 잔을 추천하는 이유다. 풍부한 거품을 오래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맥주잔을 깨끗이 씻는 게 중요하다. 잔에 기름이나 때가 묻어 있으면 표면장력이 줄어 거품이 잘 생기지 않는다.

거품은 향에도 미묘한 영향을 준다. 퀸즈에일의 풍부한 꽃과 과실향은 홉에서 비롯된다. 홉은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는 덩굴식물의 꽃으로 작은 솔방울처럼 생겼다. 에일맥주에는 라거맥주에 비해 홉이 1.5~2배 정도 더 들어가 있다. 게다가 고온에서 발효돼 그 향이 많이 살아 있다. 퀸즈에일은 신선한 캐스케이드 홉으로 싱그러운 향을 더했다.

생산일자를 확인하는 게 현명한 소비

향의 손실을 막으려면 잔에 따를 때 세심함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잔을 기울여 맥주가 잔의 벽을 타고 흘러내리게 한다. 맥주가 잔 바닥에 세게 부딪히면 거품이 심하게 일고 탄산가스와 향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반잔 이상을 맥주로 채운 뒤 잔을 수직으로 세운다. 그러면 거품이 잔의 20%를 차지하게 된다.

아무리 질 좋은 맥주라도 잘못 보관·유통하면 맛과 향, 색을 모두 잃는다. 맥주도 상하기 쉬운 ‘음료’이기 때문이다. “공장에서 출고할 때 맥주가 최상급이다. 유통기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우유처럼 맥주의 생산일자를 확인하는 게 현명한 소비자다.” 하이트진로 홍보팀의 노은정씨가 말했다. 맥주를 장기간 저장하거나 단기간이라도 고온에 노출시키면 맛의 변화가 상당하다. 6개월 이상 보관하면 아무리 보관 상태가 양호했더라도 맥주 속 단백질 성분이 자연 응고돼 뿌연 혼탁이 발생한다. 특히 태양 직사광선은 몇 분만 쬐어도 치명적인 변질을 낳는다. 영하의 온도도 나쁘긴 마찬가지다. 맥주는 -18~-2℃에서 어는데 그러면 맥주 속 물이 맥주와 분리된다. 나중에 녹여도 김빠진 맥주로 변해버린다. 적당한 보관 온도는 4~10℃다.

맥주를 마시는 온도는 계절마다 다르다. 맥주 속 탄산가스가 바깥 온도에 의해 방출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알맞은 온도에서 탄산가스가 서서히 방출되면 기포가 입안과 목구멍을 적당히 자극해 청량감을 준다. 상쾌한 맥주는 여름에는 6~8℃, 겨울에는 10~12℃, 봄가을에는 8~10℃가 좋다. 차가운 잔에 맥주를 따라놓으면 적당한 온도에서 맥주를 오래 즐길 수 있다. 맥주잔을 냉장고에 넣었두면 꺼낼 때 서리가 생기는데 이를 ‘얼어붙은 잔’이라고 부른다. 여기에 맥주를 따라 마시면 좋다.

에일맥주는 고온에서 상면발효로 만들어져 마실 때도 라거맥주보다 높은 온도에서 마시는 게 일반적이다. 영국에 찬 맥주가 흔치 않은 이유다. 하지만 퀸즈에일은 맥주의 청량감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의 특성에 맞춰 시원할 때도 깊고 진한 맛이 우러나도록 했다. 맥주 비수기인 겨울철인데도 퀸즈에일은 출시 1개월 만에 판매율이 52%나 성장했다.

퀸즈에일의 안주로는 어떤 게 적당할까. 짭짤한 견과류와 신선한 과일, 치즈 등을 서민교 연구원은 추천했다. 맥주의 맛을 잘 살려주고 영양도 좋기 때문이란다. 홍보팀 노은정씨는 “다양한 신제품을 개발하고 국내 맥주시장에서 에일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3%로 확대되도록 마케팅 활동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완주·홍천=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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