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위기가 진행된 몇 년간 세계 어디에서나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 모두 비슷한 견해를 표명하는 일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양대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의 경제정책과 공약이 분명한 수렴을 보이는 깔때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이제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3당이 공유하는 시대정신이 돼버렸고, ‘재벌 개혁’은 이제 박근혜와 이정희 제씨가 서로 선명성 경쟁을 벌이며 추구하는 공통 과제가 되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바로 몇 년 전만 해도 전세계를 풍미, 아니 확고하게 지배하던 주장, 즉 ‘시장의 활력’을 살리려면 ‘탐욕스런 대중’이 기업과 시장에 쏟아놓는 ‘부당한 압력’을 배제하고 ‘과감한 탈규제’와 ‘조세 감면’을 통해 ‘기업 활동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만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주장은 어디로 갔는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몰락을 이렇게 몸으로 느끼게 될 날이 온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과도한 경제력 집중, 재벌뿐인가
그런데 한 가지 유감이 있다. 경제민주화는 곧 재벌 개혁과 동일한 것인가? 물론 현재 한국에서 이뤄지는 바와 같이 다각화된 대형 기업 집단을 철저한 일가족 소유의 아래에 두는 기업 지배·소유 구조를 개혁하지 않을 수는 없고, 어떻게든 그것을 합리화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미룰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제민주화의 요구가 제기된 배경과 의미를 음미해보면, 이것이 지금 이뤄지는 바와 같은 식으로 국한되는 것은 큰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화’라는 말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 제기되는 맥락은 다양한 경제주체들 사이에 권력의 불균등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경제정의는 물론 경제 전체의 효율성 또한 저해당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 논의되는 것과 같은 재벌 개혁이 이런 문제의식을 십분 담아내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금 정치권에서의 논의 수준은 대규모 기업집단으로서의 재벌 덩치와 관련해 재벌 일가의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줄이는 것에만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된다. 첫째, 과도한 경제력이 집중된 부문이 재벌 기업뿐인가? 최소한 두 가지 부문이 더 있다. 하나는 재정 및 공공 부문이요, 또 하나는 은행 및 금융 시스템이다. 두 부문은 그 본성상 특정 집단의 이득에만 복무해서는 아니되고, 국민경제의 모든 주체가 고루 혜택과 이득을 볼 수 있게 운영돼야 하는 ‘공공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두 부문에 집중된 압도적 크기의 경제적 권력은 그것을 통해 정당화된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이들의 공분을 자아낸 것은, 두 부문의 운영에서 최소한의 공공성 원칙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여러 경제주체들의 목소리와 이해관계에 대한 고려는 일방적으로 묵살된 상태에서 소수 집단의 의사와 이해가 중심에 들어앉아버렸다는 것이다. 세수나 지출의 측면에서 재정의 짜임새와 집행은 가장 노골적인 이해관계의 장으로 변해버렸고, 공공부문의 운영 또한 그러했다.
재벌 해체하면 권력 배분되나
수출과 내수가 모두 위축되고 경기 하락이 지속되는 가운데 철저히 영리적 기업으로서 행동해온 대형 은행들은, 한 해에 1조원이 훨씬 넘는 수익을 올리고 있다. 창의적 기업정신과 근면한 노동윤리로 경제를 살찌우려는 대다수 국민은 응당 그들이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든든한 배경인 이 두 부문의 도움을 잃게 되었고, 그 결과 전반적인 양극화는 더욱 가속화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재정·공공 부문과 은행·금융 시스템 전체를 완전히 혁신해 개혁할 수 있는 큰 틀의 방향과 과감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둘째, 지금 같은 방식의 재벌 개혁으로 과연 재벌 이외 경제주체들의 권력이 강화될까? 새누리당은 재벌의 마구잡이 행태에 제동을 걸겠다고 약속한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아예 최대 재벌 그룹 하나를 해체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이런 조처를 통해 중소기업과 중소 상공인,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소비자 등과 같이 수는 많지만 거의 스스로를 명시적 경제주체로서 조직하지 못한 이들의 권력이 저절로 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란 참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토끼굴보다 더 희한한 곳이다. 재벌 일가의 힘이 약해진다고 해서 이것이 곧 권력의 평등한 배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재벌 일가의 손에서 설령 일정한 권력이 풀려나온다고 해도 그 권력이 국내외 기관투자가 등 각종 ‘큰손’에게 통째로 들어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고, 그렇게 된다면 커다랗게 편중된 권력을 휘두르는 이의 이름만 바뀔 뿐 무권력 상태에 처한 다수의 대중은 여전히 똑같이 힘든 처지에 있을 것이다. 1930년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권이 행한 정책을 보면, 이 미조직 무권력 상태의 경제주체들을 명시적으로 조직해내고 그들의 이익과 권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강화될 수 있게 하려는 무수한 정책들이 시행된 바 있다. 이런 ‘뉴딜’ 측면이 경제민주화의 참뜻에 훨씬 가까이 부응하는 바일 것이다.
요컨대, 경제민주화는 재벌 개혁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 응당 그것을 포함할 일이지만, 재벌의 권력 비대화를 가능케 해온 지금까지의 잘못된 경제구조를 포괄적으로 개혁하는 것과, 그 개혁이 다시 뒤로 밀려나지 않도록 새로운 경제주체들의 힘을 키우고 이익을 보호해주는 것이 모두 경제민주화의 과제가 된다. 그래서 경제민주화는 재벌 개혁이 아니라 ‘구조 개혁’이라는 관점으로 전환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선거철의 식상한 ‘재벌 때리기’ 쇼?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다. 포괄적인 ‘구조 개혁’을 회피하는 재벌 개혁이란 사실상 그 자체도 성취할 수 있을지 난망하기에, 선거철마다 요란하게 울려대는 식상한 ‘재벌 때리기’ 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대한민국 경제에 재벌 그룹들의 권력이 얼마나 깊고 속속들이 뿌리를 박고 있는지 몸서리나게 아는 이들은 벌써부터 각 정당과 언론매체에서 경쟁적으로 쏟아져나오는 반재벌의 수사학과 이에 박자 맞춰 몸을 낮추는 재벌 기업들의 익숙한 몸조심에 냉소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 와중에 재벌 3·4세들은 자기들이 하려던 바를 접어야 했지만, 선거철만 끝나면 대한민국의 도심은 모두 ‘대기업표’ 커피집·빵집·순대·떡볶이집으로 뒤덮이리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런 심드렁한 놀이가 반복될수록 이른바 ‘피로’(Fatigue)가 누적되고, 그럴수록 재벌 개혁이라는 요구는 단물 빠진 껌이 되고 말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 개혁이 아니라 구조 개혁이 되어야 한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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