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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왜 추울 때만…

등록 2008-11-07 11:57 수정 2020-05-03 04:25
갑자기 추워졌어요. 경제도, 날씨도.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건지, 경제가 나빠서 더 춥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왜 경제는 추울 때 나빠지나요.(서울에서 백수가 두려운 졸업준비생)

→ 안녕하세요. 전경제입니다. 제가 추위를 싫어하는 걸 어찌 아셨나요?

전 1년 중 10월이 제일 무서워요.(ㅜ.ㅜ) 코스피 지수가 10% 넘게 빠졌던 10월24일을 기억하시나요. 이날 800선이 무너졌죠. 근데 1929년 10월24일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해요. 사람들은 그날 미국에 ‘대공황’이란 애가 왔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10년간 절 괴롭혔죠. ‘블랙먼데이’도 아시죠? 걔도 1987년 10월19일 월요일 미국에서 태어났죠.

왜 추울 때만… 한겨레 김경호 기자

왜 추울 때만… 한겨레 김경호 기자

근데 증시 대폭락 기록이 올해 10월에 또 깨졌어요. 올 10월29일 기준으로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가 한 달간 284포인트 떨어졌대요. 월간 낙폭으로는 미국 증시가 생긴 이래 최대라네요. S&P의 데이비드 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말했더군요. “10월은 언제나 무서운 달이다. 올 10월에도 대부분 주식시장이 폭락했고 바닥이 드러났다. 명성에 맞게 정말 ‘마(魔)의 10월’이었다.”

‘오일쇼크’도 10월생이에요. 1차 오일쇼크는 1973년 10월6일 제4차 중동전쟁 발발로 시작됐죠. 한 달 만에 국제유가가 약 3.9배로 올랐죠.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도 왠지 으스스하게 생각나네요. 이용의 의 노랫말 ‘10월의 마지막 밤’은 참으로 감미로운데, 정치와 경제한테는 왜 이리 가혹한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는 1997년 11월21일 한국에 왔지요.

이런 경험들이 쌓여 경제위기는 늘 추위와 함께 온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정치·경제적인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정치적인 이유는 대통령 선거가 아닐까 싶네요. 한국은 12월, 미국은 11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러요. 대통령 선거는 현직 대통령에게는 레임덕의 극치죠. 당연히 위기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치게 되고. IMF 위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왔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올해 터졌죠.

경제적인 이유를 따지자면, 기업들의 한 해 실적이 연말에 드러나기 때문일 거예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대우그룹이 부도난 것은 2000년 11월이었죠. ‘미국판 대우 사태’로 불리는 ‘엔론 사태’는 꼭 1년 뒤인 2001년 11월에 터졌죠. 기업은 분기마다 실적을 발표하지만, 연말 결산 시점이 되면 부실이 드러나기 더 쉬워지죠. 은행들도 한 해 결산을 위해 부실채권에 대한 심사를 강화할 테고.

심리적 요인도 있겠네요. 추위로 움츠릴 때 호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지면 더 어렵게 느껴질 테니. 아무튼, 추운 겨울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흑.(ㅜ.ㅜ)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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