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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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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나의 권리를 찾아주진 않는다

5인 미만 사업장, 퇴직금 안 주려고 꼼수 쓰는 사업주들
노동자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문제 해결 못해
등록 2013-02-15 18:23 수정 2020-05-03 04:27

민주노총에서 노동 상담을 시작한 지 올 해로 6년째다. 6년이란 시간 동안 각양각색 의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들의 이야기 를 들었다. 말이 노동 상담이지, 별의별 이야 기와 사연이 많았다. 30년 전에 돌아가신 남 편의 죽음을 밝혀달라고 찾아오신 할머니부 터 일자리 좀 구해달라는 사람, 부부싸움으 로 찾아온 사람, 신용회복을 해달라는 사람, 빨갱이라고 욕하는 사람….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직원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법적으로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받기가 쉽지는 않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직원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들도 법적으로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받기가 쉽지는 않다. 한겨레 류우종 기자

상담을 통해 배운 사람과 사회

황당하거나 난처한 순간도 있었지만 대개 는 값진 경험이었다. 그들은 나의 활동이 좀 더 낮은 곳으로 향할 수 있게 했고, 또 인간 에 대해 어떤 시선과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는 선생과도 같은 존재였다. 물론 대 다수는 임금체불이나 해고, 산재와 같은 노 동 상담이 주였지만, 임금 문제로 찾아오는 사람도 해고 문제로 찾아오는 사람도 너나 할 것 없이 가장 먼저, 또 가장 많이 얘기하 는 것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였다.

자신이 이 일터에 어떻게 들어왔고, 무슨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있을 법한 이런저런 일까지 시시콜콜 얘기했다. 대부분은 자신이 이 일터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그럼에 도 자신에게 회사가 보상이나 인정은커녕 부 당한 대우를 한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과 억 울함을 토로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같이 웃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함께 슬 퍼하기도 했다. 그렇게 노동은 곧 삶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의 일부분이었던 어느 한 순간이 불명예와 부당함으로 얼룩지는 것을 못 견뎌하기도 했다. 그래서 더러는 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이야기 를 들어주고 공감받고 이해받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고 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 역시 덩달아 신이 났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지난 6년 동안 그들 과 완전하게 소통하고, 그들의 고통과 어려 움에 공감한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 로는 너무나 순진하고 가끔은 미련하기까지 한 사람들에게 답답했고, 해보지도 않고 포 기부터 하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나기도 했 다. 어렵사리 노동조합을 만들어놓고는, 임 금 같은 당면한 문제만 해결되면 너무나 쉽 게 노동조합을 해산시켜버리는 사람들에게 는 배신감마저 들기도 했다.

물론 상담을 통해서 그들의 문제를 해결 하거나, 해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 는 역할을 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한다. 하지 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 스스로 주 체로서 변화하고, 또 그 변화가 그들의 문제, 나아가 그들의 삶에 다시금 조그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이런 바 람이 내 욕심이나 자기만족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해고당할 것 같아” 무섭다는 이들

얼마 전 직원 5명 미만 사업장의 퇴직금 적용과 관련한 상담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5명 미만 사업장에서 는 퇴직금을 주지 않아도 무방했다. 그러던 것이 2010년 12월부터 5명 미만 사업장에서 도 퇴직금이 일부 적용되기 시작했다. 2010 년 12월1일부터 1년간 계속 근로하고 퇴직하 면 퇴직금의 50%를 지급하도록 법에 규정 돼 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5명 미만 사업 장에도 퇴직금이 전면 적용된다. 그러다 보 니 최근에 사업주들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각종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6개월 또는 3개월씩 단기 근로계약을 체결하거나, 이마저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성싶으면 아예 개인 사업주로 전환해버리는 경우가 생겨났다.

자신을 조선 기자재 업체에 일하는 노동 자로 밝힌 상담자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 동자는 자신을 포함해 3명이라고 했다. 그런 데 최근에 사업주가 새로운 계약서라며 서명을 하라고 해서 그 내용을 살펴보니 그것은 ‘근로계약서’가 아닌 ‘도급계약서’였다. 어쩌면 좋으냐는 물음에 나는 “일단 거부하셔야 합니다”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사실 도급계약서를 체결하게 되면 노동자에서 사업주로 위치가 바뀌게 되고, 그렇게 되면 퇴직금뿐만 아니라 아예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설명하면 대부분이 “일을 계속하려면 그렇게라도 계약을 해야지, 아니면 아예 해고를 당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계속 거부하면 끝내는 해고당할지 모른다. 해고에 대해 법적 다툼이나마 해볼 수 있는 것도 노동자성이 인정될 때만 가능한 일이다. “개인사업자 전환을 거부한 것을 이유로 해고하면, 그때 해고의 법적 구제 절차는 저희 상담소에서 도와드릴 테니 우선 개인사업자 전환에 동의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상담해주지만, 사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결국 사용주가 요구하는 대로 계약서를 체결하게 된다.

말과 현실의 간극이 참 크다는 것은 알지만, 그럼에도 우선은 스스로가 부당함에 대해 거부하고, 내 권리를 정당하게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까지 우리가 대신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민주노총에서 그런 것도 안 해주면 어쩌냐고 도리어 역정을 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졸지에 모범 사업장이 된 이유

일전에 어떤 노동자는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이 최저임금도 안 지키고, 안전 장비를 미지급하고,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연장 근무 등 불법을 일삼는다며 우리 상담소를 찾았다. 그러면서 일하는 사람 처지에서는 신고를 할 수 없으니 우리 상담소가 대신 노동부에 신고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노동부에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몇 가지 불법적인 사실에 대해 고발했고, 노동부에서는 해당 사업장으로 직접 조사를 나가기까지 했다.

노동부는 현장에서 사업주와 노동자들을 만나고, 사업장 내 비치된 서류 등을 통해 불법적인 요소가 있는지 조사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사업주는 없던 서류까지 만들어가며 자신을 적극 변호하는 반면, 현장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 잘 지켜지고 있다”거나 “임금도 제대로 잘 지급되고 있다”고 말해버렸다. 당연히 그 사업장은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근로기준법을 잘 준수하는 업체로 뒤바뀌어버렸다. 옆집 사람이 아무리 “저 집 사람이 매일 두들겨 맞고 있어요” 해도, 막상 그 옆집 사람은 “우리 집엔 아무 일 없어요” 하고 문도 열어주지 않는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권리를 소중히 다루지 못하면 타인의 권리도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 사소한 것일지라도 내 권리를 지킴으로써 타인의 권리까지 지켜지는 것이다. 그렇게 작은 변화들이 모여 우리가 원하는 사회에 점점 다가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눈 감고 귀 막는다고 없는 일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순간을 모면한다고 고통이 피해지지 않는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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