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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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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일한다

등록 2014-03-22 16:15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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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거꾸로 되돌아갈 때도 있다, 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퇴행’인 건 아니다. 자명한 이치,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것이 그 밑바탕부터 흔들리기 시작할 때, 현재의 질서가 만들어지기 이전 상황으로 시간이 잠시 되돌아가는 일도 벌어진다. 전환기, 이행기 또는 그 어떤 이름을 끌어다 붙이건 간에 격변의 시기는 그래서 혼란스런 법이다.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E. P. 톰슨은 ‘도덕경제’란 개념을 끌어와, 시장경제 형성기 서유럽 사회의 역동적 구조를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시장경제가 한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 질서로 자리잡는 과정은, 사실 ‘못 가진 자’(the poor)를 임금노동자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을 뜻했다. 가진 것 없이 도처를 부랑아로 떠돌거나, 전통적인 지역공동체 또는 종교공동체의 ‘구휼’ 대상에 머물던 이들은, 특정 공간(공장)에 구속된 채 ‘제 밥벌이를 하는’ 신인류로 변해갔다. 때론 노동교화소와 같은 채찍이, 때론 ‘자랑스런’ 노동자라는 정체성 확립 따위의 당근이 동시에 던져졌다. 중요한 건, 이처럼 임금노동을 뼈대로 하는 시장경제 체제가 확립되면서 ‘임금=소득=노동’이라는 삼위일체 공식 역시 뿌리를 내렸다는 사실이다.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문구가 노동자들의 파업을 억누르는 자본가의 입과, 노동자들의 가락에 동시에 울려퍼진 비밀이다. 일할 권리, 곧 ‘노동권’이 사회운동의 맨 앞을 차지하게 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런 과정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지도 벌써 10여 년.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현실과 맞닥뜨리고 있다. 비정규직과 불안정 노동자가 확산되고, 전통적인 임노동 관계 안에조차 온전히 포섭되지 못하는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분명한 현실 말이다. 이들의 존재가 기존 임노동 관계의 약화 또는 폐지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임노동 관계 ‘바깥’에 존재하는 광범위한 노동빈곤층은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만 간다.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조직노동의 구심력도 매우 약해진 상태다.
이 대목에서 다시금 관심을 끄는 게 바로 ‘생존권’이다. 생존권이란, 톰슨이 말한 도덕경제, 즉 시장경제 이전 시대를 지탱했던 원리와도 궤를 같이한다. 단지 일을 하느냐 못하느냐와는 무관하게, 누구나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과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좀더 밀고 나간다면, 당연히 ‘임금=소득=노동’이라는 굳건한 정언명제와의 결별 순간에 이를지도 모른다. 인류가 오랜 세월 싸워 쟁취해온 성과물인 노동권이 하루아침에 그 의미를 잃을 리도 없고, 잃어서도 안 된다. 다만, 현실은 새로운 시각과 실험을 분명 요구하고 있다. 노동권의 소중한 성취는 유지하되, 그 열매를 생존권이라는 더 넓은 토양에서 꽃피울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한 시점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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